[여행레저신문 대기획] 사이판 관광의 사선(死線)과 부활의 조건 2부

사이판 관광의 위기는 단순한 관광객 감소가 아니다. 1부에서 확인한 ‘낙원’ 이미지의 붕괴 뒤에는 더 깊은 산업 기반 약화가 있었다. 봉제 산업은 사라졌고, 하얏트와 DFS 같은 상징 자본은 떠났다. 이웃 섬 테니안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군사 전략 속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낙원 이후의 사이판을 산업과 지정학의 시선으로 짚었다.

사이판 가라판 관광지구의 쇠퇴한 거리와 멀리 보이는 군사적 긴장감을 상징하는 풍경
한때 프리미엄 휴양지였던 사이판은 브랜드 가치 하락과 관광 인프라 약화, 인도·태평양 군사 전략의 변화가 겹치며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1부에서 우리는 사이판 관광의 ‘낙원’ 이미지가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보았다. 문제는 단순한 관광객 감소가 아니었다. 이국적 정체성의 상실, 과잉 현지화, 홈쇼핑 덤핑, 브랜드 가치 훼손, 폐쇄적 마케팅 구조가 사이판을 스스로 낮은 가격의 휴양지로 밀어 넣었다.

그러나 사이판의 위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브랜드가 약해지는 동안 섬의 산업 기반도 함께 빠져나갔다. 한때 북마리아나제도 경제를 떠받쳤던 봉제 산업은 사라졌고, 국제 호텔과 면세 자본은 물러났으며, 이웃 섬 테니안은 다시 미국의 군사 전략 안에서 호출되고 있다.

사이판 봉제 산업 붕괴 이후 방치된 공장 지대를 연상시키는 풍경
북마리아나제도 경제를 떠받쳤던 봉제 산업은 2005년 이후 급격히 약해졌고, 사이판은 관광업 의존도가 더 높아졌다.

사이판을 여전히 “예쁜 바다의 휴양지”로만 설명하는 것은 이제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일이다. 바다는 남아 있지만, 그 바다를 둘러싼 경제와 시장, 자본과 군사 환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봉제 산업의 퇴장, 사이판 경제의 첫 번째 붕괴

1990년대 사이판 경제를 이해하려면 관광보다 먼저 봉제 산업을 봐야 한다. 북마리아나제도는 미국령이라는 지위를 바탕으로 미국 본토 시장에 접근할 수 있었고, 의류 제품은 한동안 관세와 쿼터에서 유리한 조건을 누렸다. 미국 회계감사원은 2000년 보고서에서 북마리아나제도의 의류 산업이 미국 수출에서 쿼터와 관세 조건을 활용했고, 일부 제품은 ‘Made in USA’ 표시와 연결됐다고 지적했다.

이 구조는 2005년 이후 빠르게 약해졌다. 다자간섬유협정 종료와 세계 섬유 교역 환경 변화로 보호막이 사라지자, 생산 기지는 더 낮은 비용을 가진 지역으로 이동했다. 현지 보도 역시 2005년 이후 북마리아나제도 봉제 산업의 주문이 급감했고, 사이판의 공장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전했다.

봉제 산업은 단순한 제조업이 아니었다. 고용, 임금, 임대, 물류, 소비, 세수를 동시에 움직이던 경제의 한 축이었다. 그 축이 빠진 뒤 사이판은 관광에 더 깊이 기대야 했다. 관광은 보조 산업이 아니라 생존 산업이 됐다. 그런데 사이판의 관광 전략은 그만큼 절박하게 바뀌지 않았다.

테니안 북부 비행장 재정비와 인도·태평양 군사 전략을 상징하는 항공 이미지
테니안 북부 비행장 재정비는 괌에 집중된 미군 전력을 분산하려는 인도·태평양 전략과 연결된다.

하얏트와 DFS의 퇴장, 관광 인프라가 보낸 경고

관광지의 체력은 호텔과 리테일에서 먼저 드러난다. 사이판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하얏트 리전시 사이판의 폐업이었다. 하얏트 리전시 사이판은 2024년 6월 30일 영업을 종료했고, 더 이상 하얏트 브랜드 호텔로 운영되지 않게 됐다.

이것은 호텔 하나가 문을 닫은 사건에 그치지 않는다. 하얏트는 오랫동안 사이판의 고급 휴양 이미지를 지탱해온 국제 브랜드였다. 국제 브랜드 호텔은 객실만 파는 시설이 아니다. 항공 수요, 웨딩, 레스토랑, MICE, 고용, 외부 투자 심리를 함께 움직인다. 그런 브랜드가 빠졌다는 것은 사이판 시장의 재투자 매력이 약해졌다는 신호로 읽힌다.

2025년에는 DFS도 사이판에서 철수했다. 가라판 관광지구의 T 갤러리아를 운영하던 DFS는 2025년 4월 30일까지 영업을 종료한다고 알려졌고, 이는 거의 반세기 가까이 이어진 사이판 면세 상권의 상징적 퇴장이었다.

면세점이 없는 휴양지는 단순히 쇼핑 선택지가 줄어든 곳이 아니다. 중상위 소비층을 붙잡는 장치가 사라진 곳이다. 항공권과 숙박만으로는 관광객의 체류 소비를 키울 수 없다. 고급 리테일, 레스토랑, 야간 콘텐츠, 문화 체험, 안정된 거리 상권이 함께 있어야 목적지는 다시 팔린다.

가라판 중심부에 남은 임페리얼 퍼시픽 카지노 건물 역시 사이판 관광의 어두운 상징이다. 한때 대형 투자의 약속처럼 등장했지만, 지금은 미완의 구조물로 남아 있다. 이 건물은 단순히 실패한 카지노가 아니다. 관광산업을 장기 전략이 아니라 단기 자본과 허황된 기대에 맡겼을 때 어떤 결과가 남는지를 보여준다.

테니안의 귀환, 휴양지 옆에 다시 세워지는 군사 지도

사이판의 위기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이웃 섬 테니안의 변화다. 테니안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주요 작전 기지였고, 북부 비행장 노스필드는 전후 오랫동안 방치돼 있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은 이곳을 다시 정비하고 있다.

미 공군은 2025년 8월 테니안 북부 비행장 재정비 기공식을 진행했다고 발표했다. 이 사업은 기존 활주로와 관련 시설을 되살려 인도·태평양 지역의 작전 유연성을 높이려는 흐름과 연결된다.

이 작업은 미국 공군의 ACE, 즉 신속 전투 전개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대형 기지 한두 곳에 전력을 집중하는 방식은 장거리 미사일 시대에 취약하다. 그래서 미군은 괌에 집중된 전력을 여러 섬과 활주로로 나눠 운용하려 한다. 테니안 노스필드 복원은 이 분산 운용 전략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거론된다.

이 흐름은 사이판 관광에 직접적인 질문을 던진다. 외부 세계는 이 지역을 인도·태평양 군사 전략의 일부로 읽기 시작했는데, 사이판의 관광 마케팅은 여전히 “푸른 바다와 가족 휴양”에 머물러 있다. 물론 사이판은 여전히 아름답다. 그러나 아름다움만으로 시장을 설득하기에는 섬을 둘러싼 현실이 너무 많이 바뀌었다.

낙원 이후의 사이판, 문제는 풍경이 아니라 설계다

사이판의 실패는 바다가 사라졌기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니다. 자연은 아직 남아 있다. 마나가하섬, 그로토, 만세절벽, 새섬, 라우라우비치, 오비안비치 같은 여행 자산은 여전히 강하다. 문제는 그 자산을 오늘의 시장에 맞게 다시 묶어내지 못했다는 데 있다.

봉제 산업이 무너졌을 때 사이판은 관광의 질을 다시 설계했어야 했다. 일본 시장이 약해지고 한국 시장 의존도가 커졌을 때는 가족여행, 골프, 해양 액티비티, 전쟁사 관광, 교육여행, 장기체류, 실버 여행, MICE를 나눠 정교하게 접근했어야 했다.

하얏트와 DFS가 떠나기 전에는 고급 이미지 회복 전략을 세웠어야 했다. 가라판 상권이 약해질 때는 야간 관광, 식음 콘텐츠, 로컬 문화, 거리 환경 정비를 함께 추진했어야 했다. 테니안 군사기지 재정비가 본격화될 때는 군사 전략과 휴양 관광이 공존하는 새로운 목적지 언어를 준비했어야 했다.

그러나 사이판은 오랫동안 ‘이미 알려진 휴양지’라는 안일함에 기대왔다. 오래된 사진, 비슷한 보도자료, 반복되는 팸투어, 익숙한 여행사 판매 문법이 시장을 대신했다. 섬의 산업 구조가 바뀌고, 소비자의 여행 방식이 바뀌고, 미국의 군사 지도가 바뀌는 동안 마케팅 언어는 거의 바뀌지 않았다.

이제 사이판은 과거의 낙원으로 돌아갈 수 없다. 돌아가려 해서도 안 된다. 필요한 것은 복고가 아니라 재설계다. 낡은 허니문 섬이 아니라, 태평양 역사와 해양 액티비티, 가족 휴양과 골프, 전쟁 유산과 지정학, 로컬 문화와 장기체류를 다시 조합한 목적지로 바꿔야 한다.

사이판 관광의 문제는 아름다움의 부족이 아니다. 아름다움만 믿고 산업의 변화를 읽지 않은 데 있다. 1부에서 본 낙원의 죽음은 브랜드의 실패였고, 2부에서 확인한 현실은 산업 기반의 약화다. 이 두 가지를 인정하지 않는 한, 사이판 부활은 홍보 문구에 머물 수밖에 없다.

낙원이 죽은 뒤 그 자리에 무엇이 들어섰는가. 지금 사이판의 답은 냉정하다. 빠져나간 산업, 떠난 자본, 약해진 상권, 그리고 다시 돌아온 군사 지도다. 사이판이 다시 살아나려면 먼저 이 현실을 정면으로 봐야 한다.

[여행레저신문 대기획] 사이판 관광의 사선(死線)과 부활의 조건 1부: 사이판 관광, 우리가 알던 ‘낙원’은 죽었다 — 오만이 부른 브랜드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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