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통역안내사가 여행상품을 만든다?…관광공사 공모전이 놓친 ‘상품의 기본’

현장 경험을 관광콘텐츠로 살리는 취지는 타당하지만 여행상품은 원가·수배·모객·유통까지 맞아야…우수작 선정 뒤 누가 팔 것인가

한국관광공사가 관광통역안내사의 현장 경험을 활용해 새로운 여행콘텐츠를 발굴하는 공모전을 진행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만나온 관광통역안내사의 시선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과 새로운 관광 동선, 체험거리와 이야기를 찾아보자는 취지다.

관광통역안내사는 관광객이 어느 장소에서 좋은 반응을 보이는지, 어떤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지, 기존 여행코스에서 무엇을 불편해하는지를 현장에서 직접 접한다. 한국인에게는 평범한 시장이나 골목, 음식과 생활문화가 외국인에게 특별한 관광콘텐츠가 되는 장면도 먼저 확인한다. 이런 현장 경험을 새로운 관광콘텐츠 발굴에 활용하는 것은 공모전의 강점이 될 수 있다.

다만 좋은 관광콘텐츠와 시장에서 판매되는 여행상품은 같은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여행상품 공모전’이었다

한국관광공사가 8월 18일 관광전문인력포털에 처음 게시한 공고의 명칭은 ‘2026 관광통역안내사 여행상품 공모전’이었다.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 소지자를 대상으로 했고, 참가자에게는 ‘여행상품 기획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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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최초 공고를 보면 기획서에는 상품의 목적과 주제, 일정과 장소, 관광지 구성뿐 아니라 ‘판매를 위해 필요한 예산 산정’, 필요 인력과 장비, 상품 대상, 대상별 마케팅 전략, 온·오프라인 홍보방안까지 담도록 했다. 제출 분량도 표지를 포함해 15~20쪽의 PPT로 정했다.

관광통역안내사가 상품을 제안하고 관광공사가 우수작을 선정했다고 하자. 실제 시장에서 그 상품을 판매하는 주체는 결국 여행사다. 여행사는 공모전 수상 여부보다 판매가격과 원가, 최소 모객 인원, 수배 가능성, 판매채널을 먼저 따진다.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하면 판매하지 않는다. 공모전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기획도 실제 판매 단계까지 이어지지 못하면 상품이 아니라 아이디어로 남는다.

여행상품의 원가와 수익 구조, 모객과 판매 계획을 검토하는 업무 장면
여행상품은 일정 구성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숙박·교통·식사·가이드 비용과 최소 모객 인원, 수배 가능성, 판매가격과 적정 이윤까지 맞아야 실제 시장에서 판매할 수 있다.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 여행레저신문 제작.

여행상품은 좋은 관광지만 묶은 일정표가 아니다

여행상품을 만드는 일은 관광지를 몇 곳 고르고 호텔과 식당을 연결하는 작업과 다르다. 숙박비와 식비, 차량비, 입장료와 체험비, 관광통역안내사 비용을 계산해야 하고 관광지 사이의 실제 이동시간과 차량 운행 조건도 따져야 한다. 식당이 정해진 시간에 단체를 받을 수 있는지, 호텔이 필요한 객실을 약속한 가격에 공급할 수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모객 규모에 따라서도 원가는 달라진다. 최소 몇 명을 모집해야 손실 없이 출발할 수 있는지 계산해야 하고, 해외 여행사나 판매채널을 거친다면 유통비용도 반영해야 한다. 성수기와 비수기의 가격 차이, 환율 변동, 예약 취소에 따른 손실도 상품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이 모든 비용을 지불한 뒤에도 여행사가 회사를 유지할 수 있는 적정 이윤이 남아야 시장에서 지속할 수 있는 상품이 된다.

한국관광공사 역시 자사의 관광교육 과정에서 여행상품 개발을 단순한 일정 구성으로 다루지 않는다. 관광e배움터의 여행상품 기획 교육은 고객과 시장을 조사하고 사업 타당성을 분석한 뒤 상품을 구체화하고 출시해 마케팅하는 전 과정을 다룬다. 상품기획과 마케팅을 수익구조와 연결해 교육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사 자체도 여행상품이 단순한 관광코스 제안과 다른 사업영역이라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 기준에 비춰보면 최초 공모전이 관광통역안내사에게 판매예산과 마케팅 전략까지 요구한 설계는 여행상품이 만들어지고 판매되는 구조를 충분히 반영했는지 따져볼 대목이 있다. 이에 대한 한국관광공사의 공식 설명은 확인되지 않았다.

관광통역안내사의 현장 전문성과 여행사의 상품 전문성은 다르다

이 문제는 관광통역안내사의 전문성을 낮게 평가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관광통역안내사의 경험은 좋은 여행상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중요한 자산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유명 관광지보다 뜻밖의 장소에 더 큰 관심을 보일 수 있고, 한국인에게는 익숙한 일상이 외국인에게 새로운 관광 경험이 되기도 한다. 잘못 짜인 일정도 현장에서 먼저 드러난다. 관광객이 지쳐 있는데 다음 일정을 강행해야 하는지, 한 장소에 머무는 시간이 지나치게 짧은지, 이동시간에 비해 볼거리가 부족한지도 가이드가 먼저 확인한다.

이 경험은 상품기획에 적극적으로 반영돼야 한다. 그러나 관광통역안내사의 아이디어를 상품에 반영하는 것과 관광통역안내사가 여행상품 자체를 개발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관광통역안내사가 관광객과 콘텐츠의 접점을 잘 아는 현장 전문가라면, 여행사는 원가와 수배, 모객과 유통, 판매 가능성을 계산하는 사업 전문가다. 두 전문성을 연결하는 구조가 필요하지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대신할 일은 아니다.

여행사는 상품을 잘못 만들면 손실을 직접 부담한다. 객실과 차량을 확보해 놓고 모객에 실패할 수도 있고, 예상보다 적은 인원이 들어오면 관광객 한 사람에게 배분되는 차량비와 가이드 비용이 올라간다. 해외 거래처와 이미 판매가격을 정했다면 원가가 상승했다고 해서 가격을 마음대로 바꾸기도 어렵다. 상품기획의 실패는 공모전 점수의 문제가 아니라 곧바로 회사의 손실로 돌아온다.

그래서 여행사가 판단하는 상품성에는 관광지의 매력만 들어가지 않는다. 팔 수 있는 가격인가, 그 가격에 관광객이 실제로 사는가, 안정적으로 수배할 수 있는가, 적정한 이윤이 남는가를 함께 본다. 공공기관의 우수작 선정과 시장의 판매 가능성 판단이 같을 수 없는 이유다.

인바운드 사업 환경은 이미 달라졌다

과거 일부 저가 단체관광에서는 낮은 지상비로 관광객을 유치한 뒤 쇼핑 수수료로 부족한 수익을 보전하는 방식이 활용됐다. 개별여행이 확대되고 관광객의 소비처와 여행 방식이 분산되면서 이런 구조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문화체육관광부도 성과관리 전략계획에서 인바운드 관광의 질적 개선과 지역관광 콘텐츠 확충을 별도 성과목표로 명시하고 있다.

이제는 관광지를 잘 고르는 것만으로 상품성을 확보할 수 없다. 숙박·교통·식사·가이드 비용을 정상적으로 반영하고도 소비자가 살 수 있는 가격과 여행사의 적정 수익을 맞춰야 한다.

여행상품 공모는 판매 주체와 연결돼 있어야 한다

실제 여행상품 지원사업은 상품을 만들고 판매할 수 있는 여행사를 참가 주체로 삼는 경우가 많다. 한국여행업협회가 올해 진행한 ‘2026년도 중국전담여행사 우수여행상품 공모전’은 중국 단체관광객 유치 전담여행사를 대상으로 했다. 선정된 상품에는 홍보·판촉비를 지원하고, 실제 모객이 이뤄지면 행사 차량비 일부를 지원하며, 한국관광공사 중국센터를 통한 현지 홍보·판촉도 연계하도록 설계했다.

협회는 이 공모를 통해 36개 상품을 선정하고 8월 25일 해당 여행사에 인증서를 수여했다. 협회는 이 사업을 중국 단체관광시장의 질적 성장과 양질의 상품을 판매하는 전담여행사 지원을 위한 사업으로 설명하고 있다.

차이는 분명하다. 여행상품을 공모한다면 상품을 실제로 만들고 판매하는 주체가 참가하고, 선정 이후 홍보와 모객까지 이어져야 한다. 좋은 아이디어를 고르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상품으로 만들고, 누가 판매하며, 판매에 따른 위험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까지 설계해야 한다.

공모전은 ‘여행콘텐츠 아이디어’로 바뀌었다

이후 관광전문인력포털에 게시된 공모전 명칭은 ‘2026 관광통역안내사 여행콘텐츠 아이디어 공모전’으로 바뀌어 있다. 수정 공고에는 이 공모전이 관광통역안내사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여행콘텐츠 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위한 것이며 ‘여행상품의 직접 개발·판매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공사가 어떤 계기로, 어떤 내부 논의를 거쳐 공고를 수정했는지는 별도로 확인되지 않았다.

제출물도 ‘여행상품 기획서’에서 ‘여행콘텐츠 아이디어 기획서’로 바뀌었다. 최초 공고에 있던 ‘판매를 위해 필요한 예산 산정’과 상품별 마케팅 전략 대신 지역·관광자원의 매력, 추천 동선과 일정, 해설·체험 포인트, 콘텐츠 구현에 필요한 자원과 협력사항, 콘텐츠 확산 방안을 제안하도록 조정됐다.

수정된 공모 방식은 관광통역안내사의 현장 전문성을 활용한다는 당초 목적에 더 부합한다. 관광통역안내사가 현장에서 발견한 장소와 이야기, 관광객의 반응과 새로운 동선을 제안하고 가능성이 있는 아이디어를 여행사와 연결할 수 있다. 이후 여행사가 시장조사와 원가계산, 수배 가능성 검토와 실제 동선 검증을 맡고, 필요하다면 아이디어를 낸 관광통역안내사가 다시 참여해 해설과 체험 요소를 보완하면 된다. 샘플투어와 가격 조정을 거쳐 시장성이 확인된 뒤 판매하는 구조라야 현장의 아이디어가 실제 상품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아진다.

관광통역안내사의 경험은 한국 관광이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자산이다. 그럴수록 역할을 정확하게 나눠야 한다. 좋은 콘텐츠를 발견하는 사람과 그것을 판매 가능한 상품으로 만드는 사람의 전문성을 연결해야 한다.

여행상품 정책은 우수한 아이디어를 선정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누가 상품으로 만들 것인지, 얼마에 팔 것인지, 누가 실제 판매를 맡을 것인지, 그 과정에서 여행사와 관광통역안내사가 지속 가능한 수익과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지까지 설계해야 한다.

관광공사가 좋은 아이디어를 뽑는 것과 시장에서 팔리는 여행상품을 만드는 것은 다른 일이다. 이번 공모전의 수정 과정이 보여준 것도 바로 그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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