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레저신문 ㅣ 김미래기자
전북 고창의 논 사이를 흐르는 작은 물길 하나가 있다. 삼태천이다. 평범한 농촌 하천처럼 보이지만 물길을 따라 걷기 시작하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굵은 나무줄기가 양쪽 둑에 줄지어 서 있고 오래된 가지는 물 위까지 길게 뻗어 서로 겹친다. 한여름에는 햇빛이 거의 닿지 않을 만큼 짙은 초록 지붕이 만들어진다.
고창 하고리 삼태마을숲이다. 이 숲은 2025년 9월 25일 국가지정 자연유산인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관광객을 위해 최근 만든 산책공원이 아니라 200년 넘게 자연재해로부터 마을을 보호해온 전통 마을숲이다.

800m 숲 전체가 하나의 자연유산이다
삼태마을숲은 삼태천을 따라 약 800m에 걸쳐 이어진다. 왕버들 몇 그루가 한 지점에 모여 있는 형태가 아니라 하천 양쪽을 따라 긴 띠처럼 연결된다.
높은 곳에서 보면 논과 마을 사이로 삼태천이 흐르고 그 물길을 따라 큰 나무들이 하나의 녹색 벽을 만드는 구조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천연기념물 지정 대상도 특정 나무 한두 그루가 아니라 마을숲 전체다. 오래된 노거수 한 그루를 보호하는 방식과 성격이 다른 이유다.
고창군 지정유산 현황에도 성송면 하고리 일원의 삼태마을숲이 천연기념물로 등재돼 있다.

왕버들 노거수 95주가 숲의 중심을 만든다
삼태마을숲에는 왕버들 노거수 95주가 남아 있다. 일부는 높이 10m, 줄기 둘레 3m가 넘는다.
줄기는 곧게 올라가기보다 비틀리고 갈라진 경우가 많다. 어떤 가지는 삼태천 위로 거의 수평으로 뻗고 다른 나무는 여러 갈래 줄기가 위로 솟는다.
왕버들뿐 아니라 버드나무, 팽나무, 곰솔, 상수리나무, 벽오동 등 여러 수종을 합쳐 큰 나무 224주가 숲을 이룬다.
국가유산청은 이곳을 국내 최대 규모의 왕버들 군락지로 평가했다.

홍수와 바람을 막던 마을의 방풍림과 호안림
삼태마을숲은 경치를 만들기 위해 심은 나무가 아니다. 주민들이 자연재해에서 마을을 지키기 위해 삼태천 양쪽 둑에 나무를 심고 가꿨다.
나무들은 강한 바람을 막는 방풍림이 됐고 하천물이 불어날 때는 제방과 농경지를 보호하는 호안림 역할을 했다.
현재는 여름 그늘길이지만 오랜 세월 주민에게는 생활 기반을 지키는 자연 방재시설이었다.
국가유산청 역시 숲의 생태 가치뿐 아니라 주민 공동체가 숲을 조성하고 보호해온 역사까지 지정 가치로 평가했다.
배 모양 마을을 붙잡은 나무라는 설화가 전한다
삼태마을에는 마을 지형을 배에 비유하는 이야기가 전한다. 큰비가 내리면 마을이 떠내려갈 수 있다고 여겨 삼태천 양쪽에 나무를 심어 배를 묶는 말뚝처럼 삼았다는 내용이다.
숲이 훼손되면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고 여겨 나무를 신성하게 보호했다는 전승도 남아 있다.
오늘날에는 풍수와 민속 설화로 읽히지만 주민이 이 숲을 단순한 목재나 경관으로 보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자연환경과 공동체 신앙이 함께 숲을 보전한 셈이다.

19세기 지도에도 남아 있는 숲이다
삼태마을숲은 1835년 이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전라도무장현도에도 표현돼 있다.
적어도 19세기 전반 이전부터 이 숲이 존재했다는 기록이다. 현재 남아 있는 200년 이상 노거수와도 시간대가 맞물린다.
관광지에서 흔히 사용하는 수백 년 역사의 표현과 달리 실제 고지도에서 숲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당시에도 마을과 지역을 설명하는 상징적인 숲으로 인식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여름에는 왕버들이 만든 깊은 그늘을 걷는다
여름의 삼태마을숲은 숲의 구조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계절이다. 왕버들 가지가 삼태천 양쪽에서 서로 겹쳐지면서 하천 위까지 그늘이 이어진다.
계곡처럼 차가운 물이 세게 흐르는 장소는 아니지만 직사광선을 피하며 천천히 걷기 좋은 숲길이다.
사진은 굵은 나무줄기를 화면 앞쪽에 두고 삼태천이나 숲길을 뒤로 연결하면 노거수의 규모가 잘 드러난다.
반대로 항공 시점에서는 숲이 농경지와 마을 사이에서 어떻게 800m가량 이어지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관광지보다 실제 마을에 가깝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삼태마을숲에는 대형 상업시설이나 화려한 관광시설이 중심이 되지 않는다. 마을길과 농경지, 삼태천과 왕버들이 그대로 이어진다.
그래서 노거수 그늘을 걷는 경험이 핵심이다. 반대로 놀이시설이나 체험 프로그램을 기대하면 성격이 맞지 않는다.
노거수 가지에 올라가거나 나무를 훼손해서는 안 되고 사진을 찍기 위해 농경지나 개인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도 피해야 한다.
비가 온 뒤에는 하천 가장자리와 흙길이 미끄러울 수 있고 여름에는 모기와 벌레 대비도 필요하다.
천연기념물이 된 이유는 나무 크기보다 200년의 관계에 있다
삼태마을숲을 설명하는 숫자는 800m, 왕버들 노거수 95주, 큰 나무 224주다.
그러나 국가유산의 핵심 가치는 숫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주민이 나무를 심어 바람과 홍수를 막았고 다시 숲을 신성하게 여기며 보호했다.
그 흔적은 19세기 지도에도 남아 있고 현재도 마을과 농경지 사이에서 숲의 구조가 유지된다.
왕버들 한두 그루가 아니라 나무와 하천, 마을 공동체가 함께 만든 800m 생활경관 전체가 천연기념물이 된 이유다.
방문 전 핵심정보
명칭 고창 하고리 삼태마을숲
위치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성송면 하고리 1238번지 일원
지정 천연기념물, 2025년 9월 25일
길이 삼태천 따라 약 800m
왕버들 노거수 95주
전체 큰 나무 224주
주요 수종 왕버들, 버드나무, 팽나무, 곰솔, 상수리나무, 벽오동 등
성격 방풍림·호안림·전통 마을숲
주의 노거수 훼손 금지, 농경지·개인 공간 출입 자제, 우천 뒤 미끄럼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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