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찬 기자 ㅣ 여행레저신문
가마쿠라를 둘러싼 최근 보도를 읽다 보면, 한국 언론이 얼마나 손쉽게 유행어 하나로 사안의 본질을 덮어버리는지 다시 확인하게 된다.
제목은 대개 비슷하다. “슬램덩크도 버거운데 K-드라마까지”, “한국 드라마 때문에 주민 폭발”, “오버투어리즘 심화”. 자극은 쉽고 클릭은 잘 나온다.
그러나 이런 문장들은 정작 가장 중요한 문제를 비켜간다. 가마쿠라 사태의 본질은 ‘한국드라마’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것은 단순한 오버투어리즘 일반론조차 아니다. 핵심은 주민의 생활공간에 외부 관광 동선이 무단으로 파고든 생활권 침범이다.
오버투어리즘이라는 말은 원래 관광지 전체가 수용 한계를 넘어서면서 교통, 환경, 쓰레기, 공공서비스, 물가, 지역 공동체 전반에 구조적 부담을 일으키는 현상을 뜻한다.
그런데 한국 기사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수는 이 개념을 거의 만능 딱지처럼 쓴다. 관광객이 많으면 오버투어리즘, 외국인이 몰리면 오버투어리즘, 드라마 촬영지면 오버투어리즘.
이런 식이면 개념은 분석 도구가 아니라 장식용 표제어로 전락한다. 가마쿠라 사례에서 주민들이 실제로 호소한 것은 “관광객이 많아 도시가 피곤하다”는 수준이 아니라, 좁은 주택가 인근 철도 건널목과 골목에 사람들이 몰려들며 소음, 교통 혼잡, 무단 촬영, 통행 방해가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더 황당한 것은 일부 보도가 이 사안을 마치 “한국드라마가 가마쿠라를 망가뜨렸다”는 구조로 몰아간다는 점이다. 하지만 공개 보도들을 차분히 읽어보면, 가마쿠라는 이미 오래전부터 ‘슬램덩크’ 배경지로 알려진 철길 일대에서 심각한 혼잡과 주민 불편을 겪어왔다.
도로 점거, 소음, 쓰레기, 무단 촬영 같은 문제가 누적됐고, 일본 현지에서는 이를 단순한 인기 관광지가 아니라 주민 삶을 해치는 수준의 문제로 받아들여 왔다. 즉 원래 병목은 이미 존재했다.
이번 넷플릭스 드라마 ‘이 사랑 통역 되나요?’는 그 위에 뒤늦게 얹힌 추가 재료에 가깝다. 말하자면 더 퍼스트 슬램덩크로 이미 복잡해질 대로 복잡해진 공간에 새 콘텐츠 이름 하나가 덧씌워진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기사는 왜 굳이 ‘한국드라마’를 전면에 내세우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쉬우니까. 한류, 넷플릭스, 성지순례, 일본 주민 분노. 이 조합은 클릭을 부른다.
그러나 언론이 쉬운 문장에 기대는 순간, 사안의 뼈대는 무너진다. 주민이 왜 화가 났는가. 한류가 싫어서가 아니다. 집 앞 골목이 관광 인증샷 무대로 바뀌고, 조용한 동네가 외부인의 카메라 동선으로 점령되고, 일상의 경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걸 “한국드라마발 오버투어리즘”으로만 쓰는 건, 문제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더 싸구려로 소비하는 일이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단순한 표현 실수가 아니다. 기자의 개념 부실과 현장 감각 부재다. 생활권 침범과 관광 과밀은 닮았지만 다르다. 전자는 주민의 정주권, 사생활, 통행권, 지역 질서의 문제이고, 후자는 도시·지역 차원의 수용 능력과 관리 체계 문제다. 물론 두 현상은 겹칠 수 있다. 그러나 겹친다고 해서 같은 것은 아니다. 이를 구분하지 못하면 처방도 엉뚱해진다. 사람 수만 줄이면 해결된다고 착각하게 되고, 정작 중요한 주거지 보호, 촬영지 관리, 생활도로 통제, 사유지 경계, 주민 우선 원칙은 기사에서 사라진다.
이 점에서 가마쿠라는 북촌과도 닮아 있다. 북촌의 본질 역시 “서울에 관광객이 너무 많다”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문제는 사람이 사는 동네를 관광상품처럼 소비해온 구조에 있다. 골목은 구경거리가 되고, 대문 앞은 포토존이 되며, 주민의 삶은 배경이 된다.
이 구조를 외면한 채 “관광객 증가의 부작용” 정도로 두루뭉술하게 쓰는 것은 현실을 지나치게 순화하는 것이다. 언론은 편한 개념어 뒤에 숨지 말고, 더 정확한 말을 써야 한다. 이번 가마쿠라 사안의 정확한 이름은 오버투어리즘이 아니라 생활권 침범, 더 노골적으로는 주거지의 관광지화다.
결국 이번 보도가 보여준 것은 가마쿠라의 위기만이 아니다. 한국 언론의 고질병이다. 현상을 깊이 보지 않고, 맥락을 따지지 않고, 유행하는 용어 하나로 모든 사건을 봉합하려는 습성 말이다. 그러니 드라마는 본질이 아닌데도 원인이 되고, 오래된 구조 문제는 사라지고, 주민의 분노는 ‘한류 부작용’이라는 자극적 표제로 소비된다. 언론이 개념을 틀리게 쓰면 현실도 틀리게 보인다. 그리고 현실을 틀리게 본 기사는 결국 독자까지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 간다.
가마쿠라 보도를 계기로 기자들은 먼저 오버투어리즘이 무엇인지부터 다시 공부해야 한다. 관광객이 많다고 다 같은 문제가 아니다. 특히 사람이 사는 동네, 실제 주민이 매일 걷고 차를 빼고 문을 여닫는 생활공간이 무단으로 관광지화되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인기 명소 현상이 아니라 권리 침해의 문제로 넘어간다.
개념도 모르고 유행어만 끌어다 붙인 기사는 분석이 아니라 오보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더 해로운 것은, 일부 사실은 맞는 듯 보이지만 정작 사안의 핵심을 비켜가며 독자의 판단을 흐리는 기사다. 틀린 말이 아니라는 점에서 오히려 더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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