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딘에서 러윅까지 매일 밤 출항…에샤네스 화산 절벽과 4천년 유적, 홍합·양고기, 어둠 대신 노을이 머무는 ‘시머 딤’까지

강정호 기자 ㅣ 여행레저신문

해가 기울 무렵 스코틀랜드 에버딘항을 떠난 배는 북쪽으로 뱃머리를 돌린다.

육지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창밖에는 짙은 북해와 낮게 내려앉은 구름만 남는다. 바람이 거세지는 날에는 갑판 난간으로 흰 물보라가 튀고, 선체는 긴 파도를 타며 천천히 흔들린다.

밤새 바다를 건넌 뒤 아침 7시30분, 창밖에 회색 돌집과 작은 어선들이 나타난다. 영국 최북단 군도 셰틀랜드의 중심 도시 러윅이다.

2026년 에버딘과 러윅 사이에는 매일 밤 페리가 오간다. 직항편은 오후 7시에 출발해 다음 날 오전 7시30분 도착하며 약 12시간30분 걸린다. 오크니 제도의 커크월을 거치는 날에는 오후 5시에 출발해 약 14시간30분 뒤 러윅에 닿는다. 운항시간은 요일과 계절, 기상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

셰틀랜드 여행은 목적지에 도착한 뒤가 아니라, 이 밤배에 오르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에버딘에서 셰틀랜드로 향하는 페리에서 바라본 거친 북해
에버딘을 출발한 페리는 밤새 북해를 건너 셰틀랜드 러윅으로 향한다. 바람이 강한 날에는 선체 옆으로 거센 파도와 물보라가 이어진다. 북해 항해 장면을 재구성한 이미지. 여행레저신문

잠들면 도착하는 북해의 밤배

에버딘 페리터미널은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에서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 있다. 배에는 일반 좌석과 뒤로 젖혀지는 좌석, 수면용 포드, 객실이 마련돼 있다. 밤을 꼬박 새울 생각이 아니라면 객실이나 수면 좌석을 미리 잡는 편이 낫다. 여름 성수기에는 객실부터 빠르게 찬다.

저녁을 먹고 갑판으로 나가면 에버딘의 불빛이 조금씩 멀어진다. 날씨가 잔잔한 밤에는 수평선과 하늘의 경계가 사라지고, 바람이 부는 날에는 북해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페리 여행의 묘미는 속도보다 시간에 있다. 비행기로 한 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섬을 밤새 바다로 건너면서, 여행자는 도시의 시간을 내려놓고 섬의 시간으로 들어간다.

다음 날 아침, 러윅항으로 들어서는 순간이 그 긴 항해의 보상이다. 잔잔한 항구와 회색 석조 건물, 작은 어선과 정박한 요트가 창밖을 채운다.

스코틀랜드 셰틀랜드 제도의 거친 해안 절벽과 초원에서 풀을 뜯는 양
셰틀랜드의 해안에는 바람과 파도가 깎아낸 절벽과 바위섬, 완만한 초원이 이어진다. 초원에서는 셰틀랜드의 거친 기후에 적응한 양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셰틀랜드 자연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미지. 여행레저신문

러윅, 바다를 등지고 살 수 없는 도시

셰틀랜드는 약 100개의 섬으로 이뤄졌고, 이 가운데 16개 섬에 사람이 산다. 전체 인구는 2만3000여 명이다. 러윅은 셰틀랜드에서 유일하게 도시라 부를 만한 곳으로, 약 7500명이 살고 있다.

러윅의 옛 시가지는 항구를 따라 길게 이어진다. 중심 거리인 커머셜 스트리트에는 낮은 석조 건물과 독립 상점, 카페, 펍이 모여 있다. 좁은 골목을 따라 언덕으로 올라가면 항구와 바다, 지붕 위로 솟은 굴뚝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현재의 러윅은 조용한 어촌만은 아니다. 어선과 해양 작업선, 페리와 크루즈선이 드나들고, 해양산업과 문화시설이 옛 항구 풍경 속에 함께 자리 잡고 있다. 항구에서 멀지 않은 셰틀랜드 박물관에서는 바이킹 이전의 유물부터 어업과 직물, 섬사람들의 생활사를 볼 수 있다.

러윅에 도착한 첫날에는 멀리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 항구를 걷고 박물관에 들른 뒤, 바다를 바라보는 카페나 펍에 앉아 여행의 속도를 늦추는 편이 셰틀랜드답다.

4천년의 시간이 겹쳐 있는 남쪽 해안

셰틀랜드 남부는 자연과 유적을 하루에 함께 볼 수 있는 지역이다.

러윅에서 남쪽으로 달리면 바다가 도로 양쪽으로 나타났다 사라진다. 초원에는 양이 흩어져 있고, 바람이 거센 날에는 풀 전체가 한 방향으로 눕는다.

가장 먼저 들를 곳은 세인트니니언스섬이다. 본섬과 작은 섬 사이를 길이 약 500m의 모래톱이 연결한다. 양쪽에서 파도가 밀려드는 흰 모래길을 걸으면 바다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곳은 영국에서 가장 큰 현역 모래톱 지형으로 꼽힌다.

더 남쪽에는 야를쇼프 유적이 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부터 철기시대 구조물, 바이킹 정착촌과 중세 건물까지 여러 시대의 흔적이 한 장소에 겹쳐 있다. 폭풍에 모래가 씻겨 나가면서 유적이 드러났고, 현재는 약 4000년에 걸친 셰틀랜드의 생활사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남쪽 끝 섬버러 헤드에 서면 분위기가 다시 달라진다. 등대 아래 절벽에는 바닷새가 둥지를 튼다. 퍼핀은 대체로 5월부터 8월 사이에 볼 가능성이 높으며, 바다오리와 세가락갈매기, 가마우지류도 절벽을 오간다. 바다에서는 물개가 모습을 드러내고 운이 좋으면 고래류도 만날 수 있다.

퍼핀을 보기 위해 절벽 끝으로 다가가서는 안 된다. 새를 좇기보다 잠시 가만히 기다리는 편이 낫다. 어느 순간 풀밭 사이에서 주황색 부리를 내민 작은 새가 나타난다.

바람과 파도가 만든 에샤네스 절벽

셰틀랜드 북서부의 에샤네스는 섬의 자연이 가장 거칠게 드러나는 곳이다.

등대 주변 절벽은 오래전 화산 활동으로 쌓인 용암과 화산재 층으로 이뤄졌다. 약 3억5000만∼4억 년 된 바위가 북대서양의 파도에 깎이면서 깊은 협곡과 해식동굴, 바위기둥을 만들었다.

바람이 센 날에는 파도가 절벽 아래에서 폭발하듯 부서진다. 바닷물이 수직으로 솟구치고, 절벽 위까지 낮은 굉음이 올라온다. 셰틀랜드가 아름답기만 한 섬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등대에서 출발하는 순환 산책로는 약 6km, 3시간 정도 걸린다. 길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절벽 끝에는 난간이 없는 구간이 많다. 강풍이 부는 날에는 가장자리에서 충분히 떨어져 걸어야 한다.

에샤네스까지 가는 버스는 제한적이며 등대 앞까지 바로 들어가는 정규 노선도 없다. 일정이 짧다면 렌터카나 현지 투어를 이용하는 편이 현실적이다.

러윅 앞바다에서 만나는 새들의 절벽

육지에서 보는 셰틀랜드와 배에서 보는 셰틀랜드는 다르다.

러윅항에서 배를 타고 브레세이와 노스섬 쪽으로 나가면 절벽의 높이와 바닷새 무리의 규모가 비로소 보인다. 노스의 절벽은 높이가 180m에 이르며, 여름에는 가넷과 바다오리, 풀마갈매기, 퍼핀이 벽을 가득 채운다.

배가 절벽에 가까워질수록 새 울음이 파도 소리를 덮는다. 수천 마리의 새가 바다로 떨어지듯 날아내리고, 물고기를 물고 다시 절벽으로 돌아간다.

해안에서는 회색물개와 참물범을 자주 볼 수 있다. 범고래와 밍크고래, 돌고래류도 지나가지만 야생동물 관찰에는 보장이 없다. 날씨와 파도에 따라 배가 뜨지 못하는 날도 있으므로 일정 초반에 예약해 두는 편이 안전하다.

스코틀랜드 셰틀랜드 앞바다의 양식장에서 작업하는 어선과 어민
셰틀랜드 앞바다에서는 홍합과 연어 양식, 어업이 주민들의 주요 생업을 이룬다. 작업선에서는 어민들이 양식용 줄과 해양시설을 손질한다. 셰틀랜드 양식 현장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미지. 여행레저신문

양식장과 목장에서 만나는 셰틀랜드의 생활

셰틀랜드 풍경에는 관광객을 위해 꾸며진 장면과 실제 생업의 경계가 거의 없다.

만 안쪽에는 홍합을 키우는 긴 밧줄과 연어 양식장이 떠 있고, 작은 작업선이 양식 시설 사이를 오간다. 주변 바다는 대구와 고등어, 넙치류를 비롯한 수산자원이 풍부하며, 연어와 홍합 양식도 섬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홍합은 바닷속에 드리운 줄에 자연스럽게 붙어 자란다.

육지로 눈을 돌리면 양이 보이지 않는 곳을 찾기 어렵다. 셰틀랜드 토종 양은 일반적인 양보다 체구가 작고 거친 기후에 잘 적응했다. 바닷바람이 지나는 초원과 헤더 지대에서 자란 양고기는 섬의 대표 식재료로 쓰인다.

바다와 목장은 아름다운 배경인 동시에 주민들의 일터다. 셰틀랜드 여행의 깊이는 이 풍경을 단순한 사진 명소가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환경으로 바라볼 때 생긴다.

스코틀랜드 셰틀랜드 해안 초원에서 풀을 뜯는 토종 양
셰틀랜드 토종 양은 작은 체구와 두꺼운 털로 차갑고 거센 바닷바람을 견딘다. 해안 초원과 바위지대에서 풀을 뜯는 양은 셰틀랜드를 대표하는 풍경 가운데 하나다. 셰틀랜드 목초지 풍경을 재구성한 이미지. 여행레저신문

홍합과 양고기, 추운 섬의 따뜻한 식탁

러윅의 식당이나 펍에서는 셰틀랜드 홍합과 연어, 흰살생선, 양고기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홍합은 크고 살이 두툼하다. 와인이나 맥주를 넣어 익힌 홍합 한 냄비와 빵만 있어도 훌륭한 한 끼가 된다. 현지 에일이나 진, 위스키를 곁들이면 북쪽 섬의 저녁이 완성된다.

오래된 향토음식인 ‘리스티트 머튼’은 양고기를 소금물에 절인 뒤 말려 보관한 음식이다. 감자수프에 넣어 끓인 뒤 납작한 전통 빵인 배넉과 함께 먹는다. 훈제 해덕과 감자를 넣은 걸쭉한 수프 컬런 스킹크도 추운 날 잘 어울린다.

섬 음식은 화려한 장식보다 재료의 힘이 앞선다. 거센 바다에서 난 홍합과 생선, 바닷바람 속에서 자란 양, 따뜻한 수프와 빵이 여행자의 몸을 다시 데운다.

셰틀랜드의 홍합과 양고기 요리, 빵과 현지 맥주가 놓인 식탁
홍합과 양고기, 빵과 따뜻한 수프는 셰틀랜드 식탁을 이루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은 뒤 현지 맥주와 함께 먹는 따뜻한 음식은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셰틀랜드 식문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미지. 여행레저신문

밤 10시가 지나도 해가 남아 있는 여름

셰틀랜드의 여름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빛이다.

위도 60도 부근에 자리한 셰틀랜드는 한여름에 하루 약 19시간 동안 햇빛을 볼 수 있다. 해가 밤 10시 이후에 내려가도 완전한 어둠이 오지 않고, 희미한 빛이 수평선에 남았다가 다시 새벽으로 이어진다. 이 긴 여름의 황혼을 현지에서는 ‘시머 딤’이라고 부른다.

밤 10시에 해안도로를 달려도 초원과 바다가 또렷하게 보인다. 언덕의 양들은 여전히 풀을 뜯고, 바닷새는 절벽과 물 위를 오간다.

잠들 시간을 놓치기 쉽다. 숙소에는 두꺼운 커튼이 흔하고, 빛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안대를 챙기는 편이 좋다.

긴 낮은 여행자에게 하루를 하나 더 선물한다. 저녁을 먹은 뒤에도 산책을 할 수 있고, 늦은 시간까지 해안을 달리며 노을을 기다릴 수 있다. 셰틀랜드에서 여름밤은 하루의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여행시간이다.

셰틀랜드는 며칠이 적당할까

처음 가는 여행이라면 최소 4일은 잡는 편이 좋다.

첫날은 러윅과 노스 해상투어, 둘째 날은 세인트니니언스섬·야를쇼프·섬버러 헤드, 셋째 날은 에샤네스, 넷째 날은 날씨 때문에 놓친 일정을 보완하는 방식이 안정적이다.

영국 최북단의 유인도 언스트와 허머니스 절벽까지 가려면 5∼6일 이상이 낫다. 셰틀랜드는 약 100개의 섬이 흩어진 군도이므로 지도에서 보이는 거리보다 이동시간이 길다.

러윅 시내는 걸어서 돌아볼 수 있지만 주요 절벽과 해변, 유적은 곳곳에 흩어져 있다. 대중교통만으로도 여행은 가능하나 배차가 적고, 에샤네스 같은 지역은 이동이 쉽지 않다. 일정이 짧다면 렌터카가 유리하다.

여름에도 방수 재킷은 반드시 챙겨야

셰틀랜드의 7∼8월 평균기온은 대체로 14∼18도다. 햇볕이 나면 따뜻하지만 바람이 불거나 비가 내리면 체감온도가 빠르게 떨어진다. 하루 동안 맑음과 비, 강풍이 번갈아 나타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얇은 옷을 여러 겹 입고 방수·방풍 재킷을 챙기는 것이 기본이다. 절벽과 초원을 걸을 계획이라면 미끄럼을 견딜 수 있는 신발도 필요하다.

페리와 섬 관광선은 강풍과 높은 파도로 지연되거나 취소될 수 있다. 귀국 항공편이나 장거리 열차와 바로 연결하기보다 일정에 여유를 두고, 교통 차질을 보장하는 여행자보험을 준비하는 편이 안전하다.

밤늦게까지 햇빛이 남아 있는 셰틀랜드 여름 해안과 마을길
한여름 셰틀랜드에서는 밤 10시가 지나도 해안과 초원이 밝게 보인다. 해가 완전히 지지 않고 황혼이 길게 이어지는 여름밤은 셰틀랜드 여행에서 빼놓기 어려운 장면이다. 셰틀랜드 여름 풍경을 재구성한 이미지. 여행레저신문

끝까지 가야 만날 수 있는 풍경

셰틀랜드는 쉽게 도착하는 여행지가 아니다.

런던이나 에든버러에서 다시 에버딘으로 가고, 저녁 배에 올라 밤새 북해를 건너야 한다. 섬에 도착한 뒤에도 절벽과 해변, 작은 마을을 찾아 바람 부는 길을 오래 달려야 한다.

그 수고 때문에 여행은 더 선명해진다.

러윅항으로 들어오는 아침빛, 절벽 아래에서 부서지는 파도, 초원에서 바람을 견디는 양, 펍 창밖으로 보이는 작은 어선, 밤 10시가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노을은 가까운 도시에서는 좀처럼 만날 수 없는 장면들이다.

셰틀랜드, 북해를 건너온 시간과 바람, 사람들의 생업과 긴 여름빛이 함께 기억에 남는 곳이다.

 

여행레저신문 Copyrights ⓒ The Travel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