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밑도, 하늘도 연보랏빛 파도”… 1년을 기다린 시드니의 봄, 자카란다가 온다

한국이 쌀쌀해지는 10~11월 남반구는 찬란한 봄… 키리빌리 꽃터널·시드니대 캠퍼스부터 92회 맞은 그래프턴 축제까지

한국이 쌀쌀해지는 10~11월 남반구는 찬란한 봄… 키리빌리 꽃터널·시드니대 캠퍼스부터 92회 맞은 그래프턴 축제까지

계절이 거꾸로 흐르는 남반구의 10월, 호주 시드니는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보랏빛으로 잠에서 깬다.

한국의 가을 하늘이 차츰 서늘한 잿빛을 띨 때, 태평양 너머 뉴사우스웨일즈주(NSW)는 봄의 절정을 맞이한다. 이 계절 시드니를 지배하는 것은 단연 ‘자카란다(Jacaranda)’다. 벚꽃처럼 흐드러지게 피어났다가 허공에서 흩날려 발밑에 보라색 양단을 깔아버리는 이 나무는, 10월 중순부터 11월 초까지 도시의 하늘과 길, 고풍스러운 캠퍼스와 포구를 완전히 점령한다.

고개를 들면 보랏빛 꽃잎 사이로 푸른 남태평양의 햇살이 부서지고, 발을 디딜 때마다 바닥에 내려앉은 연보랏빛 융단이 바스락거린다. 1년에 단 한 번, 한 달 남짓 허락되는 이 짧고 찬란한 보랏빛 계절을 누리기 위해 전 세계 여행자들이 시드니로 향한다.

시드니 키리빌리 맥두걸 스트리트의 자카란다 꽃터널
시드니 북부 키리빌리의 맥두걸 스트리트. 양옆으로 늘어선 자카란다 고목들이 허공에서 맞닿으며 동화 같은 연보랏빛 꽃터널을 연출한다.

하버 브리지와 어우러진 도심 산책, 서큘러 키에서 더 록스까지

시드니의 자카란다 여행은 도심의 빌딩 숲과 바다가 만나는 경계에서 출발한다. 가장 클래식한 동선은 시드니 왕립식물원(Royal Botanic Garden)에서 시작해 서큘러 키(Circular Quay)를 거쳐 식민지 시대의 석조 건물이 보존된 더 록스(The Rocks)로 이어지는 바닷길이다.

특히 호주현대미술관(MCA) 뒤편 언덕에 자리한 퍼스트 플리트 파크(First Fleet Park)는 자카란다 시즌의 백미다. 짙푸른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하얀 페리와 웅장한 하버 브리지, 그리고 세계적인 랜드마크 오페라 하우스를 화사한 연보랏빛 꽃가지 사이로 한 프레임에 담아낼 수 있다. 차가운 유리 외벽의 현대식 고층 빌딩과 수령 수십 년의 유려한 자카란다 고목이 빚어내는 색채 대비는 오직 10월의 시드니 항구에서만 목격할 수 있는 풍경이다.

시드니대학교 사암 건축물과 만개한 자카란다
웅장한 사암 고딕 건축을 자랑하는 시드니대학교 앤더슨 스튜어트 빌딩 앞. 고풍스러운 석조 외벽과 만개한 보랏빛 자카란다가 어우러진다.

하늘을 가린 꽃터널 키리빌리, 트렌디한 골목 패딩턴

SNS를 뜨겁게 달구는 자카란다의 상징적인 장소를 찾는다면 북쪽 해안의 주택가 키리빌리(Kirribilli)로 발길을 돌려야 한다. 밀슨스 포인트 역 인근의 ‘맥두걸 스트리트(McDougall Street)’는 봄마다 도로 양옆의 자카란다 가지들이 머리 위에서 맞닿아 거대한 천연 꽃터널을 만들어낸다. 아침 햇살이 가지 사이로 쏟아져 내릴 때 완만한 언덕길을 따라 보랏빛 꽃잎이 비처럼 흩날리는 풍경은 마치 동화 속의 한 장면을 걷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보다 세련된 도시의 일상 속에서 꽃을 즐기고 싶다면 동부의 패딩턴(Paddington)이 제격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유서 깊은 군영인 빅토리아 배럭스(Victoria Barracks) 앞 잔디밭은 사암 담장을 따라 늘어선 자카란다 덕분에 온통 보라색 카펫이 깔린다. 꽃잎이 흩뿌려진 잔디밭에서 반려견과 산책하는 로컬들의 여유를 엿본 뒤, 감각적인 갤러리와 부티크 숍이 모인 글렌모어 로드(Glenmore Road)와 파이브 웨이스(Five Ways) 노천카페로 이어지는 골목 여행은 여행자의 오후를 더없이 풍요롭게 만든다.

뉴사우스웨일즈 그래프턴 중심가의 자카란다와 축제 거리
2,000여 그루의 자카란다가 도시 전체를 뒤덮는 뉴사우스웨일즈주 북부 그래프턴. 92회째를 맞은 자카란다 페스티벌 기간에는 퍼레이드와 마켓이 열린다.

88년 역사의 기억을 잇다, 시드니대학교의 낭만

학문과 청춘의 공간에도 보랏빛 낭만이 내려앉는다. 시드니대학교(The University of Sydney) 캠퍼스는 고딕 양식의 사암 건물과 자카란다가 빚어내는 고전적인 아름다움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곳의 상징이던 안마당(Quadrangle)의 88년 된 자카란다 고목은 지난 2016년 쓰러졌으나, 이듬해 원목의 유전자를 그대로 복제한 묘목이 제자리에 심기며 전통을 잇고 있다.

원주민 가디갈(Gadigal) 족을 기리는 토종 플레임트리의 붉은 꽃과 복제 자카란다의 보랏빛이 나란히 피어나는 쿼드랭글 안마당, 그리고 앤더슨 스튜어트 빌딩(Anderson Stuart Building) 앞 웅장한 자카란다 고목 아래는 여행자와 학생들이 벤치에 앉아 봄날의 사색을 즐기는 명소다.

2,000그루 보랏빛 성지, 92회 맞은 ‘그래프턴 축제’

시드니 도심의 도보 여행을 넘어 진정한 자카란다의 바다에 빠져들고 싶다면 뉴사우스웨일즈주 북부의 유서 깊은 도시 그래프턴(Grafton)으로 향해야 한다. ‘자카란다의 수도’라 불리는 이곳에는 무려 2,000여 그루의 고목이 시가지 전체를 감싸 안고 있다.

올해로 92회째를 맞이하는 ‘그래프턴 자카란다 페스티벌(Grafton Jacaranda Festival)’은 호주에서 가장 유서 깊은 꽃 축제다. 올해는 오는 10월 30일부터 11월 8일까지 열린다. 축제 기간에는 보랏빛 가로수 아래로 화려한 플로트 카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로컬 아티스트들의 플리마켓, 야간 불꽃놀이가 이어지며 도시 전체가 축제의 열기로 들썩인다.

뉴사우스웨일즈주의 봄은 자카란다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보랏빛 꽃물결이 계절의 시작을 알리면 서던 하이랜드의 튤립, 와라타와 야생화가 블루마운틴과 헌터밸리 전역으로 번져나간다. 다가오는 10월, 쌀쌀해진 일상을 벗어나 남반구로 날아간다면 그곳에는 1년을 기다려온 눈부신 연보랏빛 봄이 기다리고 있다.

TRAVEL GUIDE: 시드니 자카란다 핵심 요약

개화 시즌: 10월 중순 ~ 11월 중순 (10월 하순 만개 절정)

시드니 도심 1일 워킹 코스: 시드니 왕립식물원 → 서큘러 키 & 퍼스트 플리트 파크(오페라하우스 조망) → 더 록스(사암 거리 산책) → (페리 이동 10분) → 키리빌리 맥두걸 스트리트(꽃터널 인생샷)

카페 & 컬처 반일 코스: 시드니대학교 쿼드랭글 & 앤더슨 스튜어트 빌딩 → 패딩턴 옥스퍼드 스트리트(빅토리아 배럭스 잔디밭) → 파이브 웨이스 골목 카페

축제 정보 (그래프턴): 제92회 그래프턴 자카란다 페스티벌 / 2026년 10월 30일~11월 8일 / 뉴사우스웨일즈주 북부 그래프턴 시내 일원

촬영 팁: 키리빌리 맥두걸 스트리트는 주택가 도로이므로 오전 8~9시 이른 시간대에 방문해야 주차 차량과 인파를 피해 깨끗한 꽃터널 앵글을 확보할 수 있다. 하늘만 담기보다 떨어진 보라색 꽃잎이 바닥을 채운 구도로 로우 앵글을 잡으면 입체감이 배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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