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부드럽고 낭만적이라 하여 산세마저 순할 것이라 지레짐작했다간 호된 대가를 치른다.
경기도 가평에 우뚝 솟은 연인산(戀情人山)은 해발 1,068m에 달하는 당당한 고봉이다. 사방이 깎아지른 벼랑과 거친 암릉으로 둘러싸여 있어, 웬만큼 산을 탄다는 베테랑 등산동호인들조차 가파른 된비알 앞에서 연신 거친 숨을 몰아쉬며 혀를 내두르는 옹골찬 악산(岳山)이다.
그러나 거친 바위 능선을 뒤로하고 산의 깊은 품속으로 한 발짝 파고들면, 험준한 바깥세상과는 완전히 단절된 전혀 다른 태고의 세계가 펼쳐진다. 수천 년 동안 사람의 손길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던 천연 요새, 가평 8경 중 하나로 손꼽히는 ‘용추계곡’이다.
지난해 7월,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쏟아부은 기록적인 집중호우는 이 청정한 골짜기를 무참히 할퀴고 지나갔다. 탐방로 사면이 무너져 내리고 석축이 뜯겨 나가며 안타깝게 빗장을 굳게 걸어 잠갔던 용추계곡이, 1년여간의 정밀 복구공사를 마침내 끝내고 오는 9월 11일 온전한 품을 다시 연다. 소릿길과 4.7km 명품계곡길을 잇는 용추계곡 탐방로 전체 9.2km의 전면 개방이다.
산림청이 공인한 ‘전국에서 가장 걷기 좋은 길 1위’. 늦여름의 잔열이 가라앉고 투명한 가을바람이 협곡을 가득 채우기 시작하는 9월, 우리는 왜 이 거친 연인산의 심장부로 걸어 들어가야 하는가.

시멘트 대신 돌 하나하나… 전통 ‘꽂아쌓기’로 되살린 원시림의 호흡
이번 복구 현장은 자연을 훼손하며 회색 시멘트를 무자비하게 덧바르는 일반적인 토목공사와는 시작부터 궤를 달리했다. 훼손된 사면의 경사를 자연스럽게 완화한 뒤, 주변의 자연석을 일일이 엇물려 틈새를 단단히 메우는 전통 석축 기법인 ‘꽂아쌓기’를 전격 도입했다.
계곡의 물길을 보호하는 호안 시설 역시 와이어로 자연석을 정교하게 엮고 배면에만 최소한의 콘크리트를 채워 넣는 친환경 특수 공법을 적용했다. 거센 폭우에도 끄떡없는 내구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수마가 할퀴고 간 상처에 이끼와 들풀이 다시 돋아날 수 있도록 자연의 자생력을 그대로 살려낸 것이다. 사람이 낸 상처를 사람이 지혜롭게 보듬고, 자연이 스스로 치유해 낸 상생의 현장이다.
계곡 깊숙이 발을 들여놓는 순간, 길은 145년 전 구한말 화전민들이 거친 산세를 일구며 넘나들던 아련한 시간 속으로 탐방객을 안내한다. 숯을 굽던 숯가마터와 옛 화전민의 집터, 화전민 자녀들이 꿈을 키우다 폐교된 내곡분교터가 숲 그늘 사이로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낸다. 화려하게 치장된 테마파크가 아니라, 척박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온 민초들의 애환과 세월의 더께가 켜켜이 내려앉은 진짜 숲의 서사다.

11개 징검다리와 출렁다리… 본격적으로 터져 나오는 용추구곡의 절경
연인산 명품계곡길의 진정한 백미는 물길을 지그재그로 넘나드는 ‘11개의 자연석 징검다리’에 있다. 계곡을 건널 때마다 만나는 널찍하고 묵직한 화강암 바위는 인공 구조물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걸음의 리듬감을 선물한다. 발밑으로 투명한 유리알 같은 계류가 찰랑거리며 귓전을 때리고, 바위를 건널 때마다 골짜기에서 피어오르는 서늘한 물안개가 늦더위로 지친 온몸을 단번에 식혀준다.
숲이 깊어질수록 계곡은 점차 웅장한 기암괴석 협곡으로 표정을 바꾼다. 용이 승천하며 아홉 굽이의 비경을 남겼다는 ‘용추구곡(龍湫九曲)’의 진면목이 본격적으로 눈앞에 펼쳐진다. 협곡 바위틈으로 눈부신 아침 햇살이 부서져 내리는 제7곡 청풍협, 짙푸른 옥빛 소(沼)가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신비로운 물웅덩이를 이루는 제8곡 귀유연, 그리고 협곡을 가로지르는 흔들 출렁다리 아래로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쏟아져 내리는 제9곡 농원계까지, 굽이마다 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천연 수묵화가 이어진다.
길 중간중간 마련된 ‘3색 멍존’은 오직 이 길을 걷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바위에 걸터앉아 맑은 여울물에 발을 담그고 물소리에 젖어드는 ‘물멍존’, 우거진 활엽수 틈새로 부드럽게 쏟아지는 초가을 햇살을 받으며 숲을 바라보는 ‘숲멍존’, 그리고 협곡을 타고 내려오는 선선한 산들바람에 땀방울을 씻어내는 ‘바람멍존’에서 배낭을 내려놓는 순간, 가슴을 짓누르던 도심의 피로는 눈 녹듯 사라진다.

[산꾼의 실전 가이드] 만만치 않은 9.2km, 내 체력에 맞게 걷는 법
연인산은 이름이 주는 달콤함과 달리 1,068m 험봉의 기운을 품고 있다. 계곡길 역시 평탄한 흙길과 나무 데크가 주를 이루지만, 징검다리와 거친 자연석 너덜지대가 불쑥불쑥 나타나므로 가벼운 슬리퍼나 미끄러운 일반 운동화 차림으로 나섰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 초심자 및 가족 힐링 코스 (명품계곡길 4.7km 구간 / 왕복 약 2시간 소요):
중산리 입구에서 출발해 징검다리 구간과 출렁다리를 지나 멍존 족욕 쉼터와 내곡분교터를 둘러본 뒤 돌아 나오는 코스다. 경사도가 완만하고 길목마다 그늘이 짙어 어린이나 어르신을 동반한 가족 나들이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 트레커 풀코스 (용추계곡 탐방로 전체 9.2km / 편도 약 2시간 30분, 왕복 4~5시간 소요):
연인산도립공원 탐방안내소에 차를 대고 소릿길 초입에서 시작해 계곡마중길과 용추구곡 전 구간을 관통해 종점까지 밟는 코스다. 왕복 18km에 달하는 만만치 않은 거리이므로, 반드시 발목을 단단히 지지해 주는 트레킹화나 경등산화를 착용하고 식수와 행동식을 넉넉히 챙겨야 한다.

[연계 코스] 자라섬 남도 가을꽃 페스타와의 환상적인 하루
용추계곡에서 깊은 숲과 맑은 물의 기운을 가득 충전했다면, 차로 15~20분 거리에 있는 ‘자라섬 남도’로 발길을 이어보자. 9월 중순부터 자라섬은 백일홍, 구절초, 핑크뮬리, 버베나 등 수천만 송이의 가을꽃이 북한강 물결과 어우러지는 화려한 꽃 페스티벌의 장으로 탈바꿈한다.
거칠고 깊은 연인산 원시림 트레킹으로 땀을 흘린 뒤, 강바람 살랑이는 꽃길을 산책하며 감성적인 사진을 남기는 여정은 하루를 꽉 채우는 가평 최고의 당일치기 힐링 여행이 된다.
- 위치: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용추로 229-41 (연인산도립공원 탐방안내소)
- 재개통 일정: 2026년 9월 11일부터 용추계곡 탐방로 전체 9.2km 전면 개방
- 이용료 및 주차: 입장료 무료 / 용추계곡 공영주차장 무료 완비
- 대중교통: 경춘선 가평역 하차 ➔ 용추 방면 시내버스 탑승 ➔ 용추 버스 종점 하차 (도보 5분)
- 주의사항: 계곡 생태 보전을 위해 반려견 동반 입산 전면 금지. 징검다리 이끼 구간 미끄럼 주의, 바위 단차로 인해 휠체어 및 유모차 진입 불가.
연인산 용추계곡
2026년 9월 11일부터 집중호우 피해 복구를 마친 용추계곡 탐방로 전체 9.2km가 다시 열린다. 이 가운데 명품계곡길은 4.7km이며, 소릿길과 연결해 전 구간을 걸을 수 있다.
여행레저신문 Copyrights ⓒ The Travel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데스크 시각] 관광객 넘쳐 빗장 거는 그리스, 세금 사진에 빗장 치는 한국관광공사 하늘의 밝은 부분이 날아가고 우측 하단에 강원관광 표기가 들어간 송지호 관망타워 사진](https://img.thetravelnews.co.kr/2026/09/05_songjiho_observatory_tower-100x70.webp)







![[기자수첩] 외국인 203만 머문 나고야의 착각…천혜의 유적 품고도 왜 ‘노잼’에 갇혔나 도심 스카이라인과 함께 보이는 나고야성 전경](https://img.thetravelnews.co.kr/2026/09/nagoya-castle-skyline-featured-100x70.web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