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스위스 사이에 펼쳐진 레만호. 호수 남쪽 프랑스 에비앙 레뱅의 언덕길을 오르면 물빛 너머로 스위스 로잔 방향의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여름 휴양객이 빠져나간 뒤 숲이 주황색과 금빛으로 물드는 계절, 이곳에서는 버섯을 찾아 숲을 걷고 어둠이 내려앉은 산에서 사슴의 울음소리를 기다리는 조금 특별한 가을이 시작된다.
프랑스 오트사부아 에비앙 리조트 안에 자리한 4성급 호텔 에르미타주(Hôtel Ermitage)가 2026년 가을 가족 여행 프로그램을 공개했다. 호텔 숙박만을 앞세운 상품이 아니다. 알프스 숲과 레만호, 지역 음식과 어린이 체험을 하나의 체류 일정으로 엮었다.
호텔은 에비앙 레뱅 도심보다 높은 뇌브셀 언덕에 자리한다. 객실 밖으로 나서면 리조트의 넓은 공원과 산책로가 이어지고, 아래로는 레만호가 펼쳐진다. 도심 호텔에 머물며 관광지를 오가는 방식보다 숲과 호수 사이에서 하루를 천천히 보내려는 여행자에게 어울리는 위치다.

버섯을 찾아 숲으로… 어둠 속에서는 사슴 울음 기다린다
가을 프로그램의 중심에는 에비앙 리조트 소속 전문 가이드들이 있다. 프랑스 국가공인 가이드와 함께 산과 호수, 강을 걷는 하이킹부터 라랭주 숲의 버섯을 관찰하는 균류 탐방까지 마련했다.
균류 탐방은 바구니를 채우는 단순한 버섯 채취 체험과 다르다. 숲에 자라는 버섯의 형태와 서식 환경을 살펴보고 종을 구별하는 자연 관찰 프로그램에 가깝다. 식용 여부를 개인 판단에 맡기지 않고 전문 가이드의 설명을 따라야 한다.
산악 코스를 전기 산악자전거로 달리는 E-MTB 투어도 운영한다. 오르막에서는 전기모터의 도움을 받고 전망이 트인 구간에서는 레만호와 알프스 산맥을 함께 조망한다. 호흡과 몸의 감각에 집중하는 요가·프리다이빙 프로그램과 개인 승마 강습도 선택할 수 있다.
가장 이색적인 일정은 사슴의 번식기 울음인 ‘브람(Brame)’을 관찰하는 체험이다. 가을철 수사슴은 경쟁 상대를 경계하고 암컷을 부르기 위해 숲속에서 길고 낮은 울음소리를 낸다. 참가자는 해가 진 산에 들어가 인기척을 줄인 채 사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동물을 가까이 쫓는 체험이 아니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야생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프로그램이다.

아이들은 줄 베른의 소설 속으로 들어간다
가족 여행객을 위한 Kid’s Resort는 10월 17일부터 11월 1일까지 가을방학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주제는 프랑스 작가 줄 베른의 모험소설이다.
아이들은 《해저 2만리》와 《지구 속 여행》, 《80일간의 세계일주》를 바탕으로 구성한 게임과 탐험, 임무 수행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호텔의 어린이 시설은 생후 4개월부터 17세까지 이용할 수 있으며, 전체 공간은 1,000㎡가 넘는다. 영유아를 위한 베이비클럽과 어린이·청소년 공간을 연령별로 나눠 운영한다.
10월 31일에는 리조트 전체가 핼러윈 놀이터로 바뀐다. 사탕 찾기와 미스터리 모험, 가장무도회가 이어진다.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이라면 레만호 건너 스위스 브베의 ‘채플린스 월드’ 야간 행사와 연계할 수도 있다.
객실에도 어린이를 위한 장치를 넣었다. 천연 목재로 만든 오두막 형태의 침대를 설치한 ‘Mon Lit Cabane’ 객실은 잠자리에 드는 시간까지 하나의 모험처럼 구성했다.

알프스 산장 음식과 케이블카 속 퐁뒤
숲에서 돌아온 뒤에는 가을과 겨울의 알프스 음식이 기다린다. 호텔 에르미타주는 11월 20일부터 2027년 3월 8일까지 팝업 레스토랑 ‘휘틀리(Hüttli)’를 운영한다.
산악지대의 대피소를 본뜬 공간에서 뢰스티와 양파수프 그라탱을 비롯해 프랑스 샤블레 지역의 음식을 선보인다. 인근 라 베르니아의 ‘셰 오귀스트’에서는 대형 장작 벽난로를 이용한 라클레트와 소갈비 구이를 맛볼 수 있다.
호텔 테라스에 설치한 케이블카 객실 세 대도 작은 식당으로 변한다. 2명에서 6명까지 들어가는 객실 안에서 퐁뒤를 나눠 먹으며 산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매일 정오부터 오후 9시까지 운영하며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
숲길 뒤에는 스파… 레만호를 바라보며 하루를 닫는다
스파 콰트르 테르는 가을빛에서 착안한 오렌지·골드·실버 색상과 향을 활용한 계절 트리트먼트를 준비했다. 숲길과 산악자전거로 몸을 움직인 뒤 사우나와 스팀룸, 휴식 공간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흐름이다.
에비앙의 가을은 유명 관광지를 바쁘게 확인하는 여행과 거리가 있다. 아침에는 호수를 보고, 낮에는 버섯을 찾아 숲으로 들어가며, 밤에는 사슴 울음에 귀를 기울인다. 16년 동안 한결같이 한국 언론의 문을 두드려온 호텔이 이번에 내놓은 것은 객실 할인표가 아니라 프랑스 알프스의 가을을 천천히 살아보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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