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레저신문 ㅣ 김정호기자
평창 오대산의 숲길은 빠르게 걷기보다 천천히 멈춰 서기 좋은 길이다. 전나무가 만든 그늘,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 흙길 위에 놓이는 발걸음이 도시의 속도를 조금씩 낮춘다. 6월 7일 월정사 일원에서 열린 제21회 오대산 천년숲 선재길 걷기행사는 이 숲길의 의미를 다시 보여준 자리였다. 행사는 단순한 걷기 대회가 아니라, 걷고 비우고 자신을 돌아보는 평창 웰니스 여행의 한 장면으로 읽을 만했다.
이번 행사는 월정사와 강원도민일보, 법보신문, 국립공원공단이 공동 주최한 행사로, 오대산자연명상마을 잔디광장을 출발해 비밀의 숲, 선재길, 월정사 전나무숲길을 거쳐 돌아오는 약 5km 순환형 코스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비밀의 숲에서 말을 줄이고 호흡에 집중하는 묵언 걷기를 경험했고, 선재길에서는 계곡 소리를 따라 명상을 이어갔다. 전나무숲길에서는 신발을 벗고 흙의 감촉을 느끼는 맨발 걷기가 더해졌다.
오대천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선재길
오대산 선재길이 특별한 이유는 풍경이 크거나 코스가 길어서만은 아니다. 이 길은 월정사에서 상원사 방향으로 오대천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숲길이다. 전체를 걸으면 깊은 산행에 가깝지만, 월정사 전나무숲길과 일부 구간만 걸어도 오대산 숲의 결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여름에도 그늘이 깊고, 물소리가 걷는 속도를 자연스럽게 늦춘다.

선재길이라는 이름에는 불교적 의미도 담겨 있다. 선재는 화엄경의 선재동자에서 온 이름으로, 지혜와 깨달음을 찾아 나아가는 구도자의 길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오대산은 예로부터 문수보살의 성지로 알려진 산이다. 그래서 이 길은 단순한 산책로가 아니라 사찰과 계곡, 숲과 수행의 기억이 함께 남아 있는 길이다. 종교적 배경을 알지 못해도, 이 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왜 비우는 길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월정사 전나무숲길에서 시작되는 평창 숲길 여행
월정사 전나무숲길은 오대산 여행의 첫 장면이자 가장 널리 알려진 숲길이다. 곧게 뻗은 전나무 사이로 길이 이어지고, 숲길 주변에는 계곡과 사찰의 고요한 분위기가 함께 놓인다. 계절마다 다른 표정을 보이지만, 여름에는 숲의 그늘과 물소리가 가장 선명하다. 월정사로 향하는 길에서 만나는 전나무숲은 평창 여행의 속도를 바꾸는 공간이다.
이번 행사가 의미 있었던 지점도 여기에 있다. 걷기 행사는 속도를 겨루지 않았다. 비밀의 숲에서는 침묵을 통해 내면의 소리를 듣게 했고, 선재길에서는 계곡과 바람의 소리에 집중하도록 했다. 전나무숲길에서는 맨발 걷기를 통해 발바닥의 감각을 다시 깨우게 했다. 빠르게 목적지에 닿는 여행이 아니라, 걸음을 줄이며 몸과 마음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여행이었다.
묵언 걷기와 명상, 맨발 걷기로 완성된 5km 코스
참가자들이 숲길에서 경험한 것은 거창한 치유가 아니었다. 길 아래를 흐르는 오대천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평소 지나쳤던 풀과 나무를 바라보며, 흙길 위에서 발걸음을 천천히 옮기는 시간이었다. 걷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행위지만, 제대로 걷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휴대전화와 일정표, 다음 목적지에 대한 생각을 잠시 내려놓아야 비로소 숲길이 보이기 때문이다.

오대산 선재길은 가족 여행자에게도 부담이 적은 편이다. 전체 구간을 완주하려면 시간과 체력이 필요하지만, 월정사 전나무숲길과 선재길 일부 구간은 비교적 완만하게 걸을 수 있다. 아이와 함께라면 짧은 구간을 왕복하는 방식이 좋고, 부모 세대와 동행한다면 월정사 경내와 전나무숲길 중심으로 동선을 잡는 편이 낫다. 계곡 주변은 습한 날 미끄러울 수 있어 운동화나 트레킹화를 준비하는 것이 안전하다.
걷기와 음악이 만난 오대산 에코 콘서트
행사 후 열린 에코 콘서트도 숲길 걷기의 의미를 넓혔다. 자연명상마을 잔디광장에 마련된 친환경 무대에서는 음악 공연이 이어졌고, 참가자들은 자연과 공존, 생명 존중의 메시지를 함께 나눴다. 걷기와 공연이 결합된 형식은 젊은 여행자에게도 오대산을 새롭게 인식하게 했다. 산사와 국립공원, 명상과 음악이 한 흐름 안에서 만난 셈이다.
오대산 여행을 계획한다면 선재길은 하루를 전부 써도 아깝지 않은 코스다. 월정사 전나무숲길을 천천히 걷고, 월정사 경내를 둘러본 뒤, 체력과 시간에 맞춰 선재길 일부 구간을 더하면 된다. 걷기를 좋아한다면 상원사 방향으로 길게 이어지는 코스를 계획할 수 있고, 짧은 숲길 산책을 원한다면 전나무숲길만으로도 충분하다. 평창의 여름 여행에서 산과 계곡, 사찰의 고요함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드문 길이다.
평창에서 만나는 가장 조용한 치유 여행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더 많이 보는 일이 아닐 때가 있다. 오히려 한 길을 천천히 걷고, 한 번 숨을 고르고, 물소리와 바람 소리를 듣는 시간이 오래 남는다. 오대산 선재길은 그런 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길이다. 천년 숲이라는 이름이 과장이 아닌 이유는 숲의 나이만이 아니라,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 각자의 마음을 내려놓고 다시 걸어 나오는 시간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제21회 오대산 천년숲 선재길 걷기행사는 하루의 행사로 끝났지만, 선재길 자체는 계속 남아 있다. 월정사 전나무숲길과 오대천 계곡, 상원사로 이어지는 숲길은 언제든 다시 걸을 수 있다. 초여름의 평창에서 복잡한 마음을 잠시 비우고 싶다면, 오대산 선재길은 조용하지만 분명한 답을 주는 여행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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