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빌던 솟대, 현대 조형예술로 되살아난 공동체의 기억
옛적 우리 농어촌 마을 어귀에는 긴 장대 하나가 서 있었다. 장대 끝에는 오리나 기러기를 닮은 나무 새가 하늘을 향해 앉아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장식도, 우연히 세운 나무기둥도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솟대는 마을의 경계이자 수호의 표지였고, 한 해 농사와 고기잡이, 집집마다의 평안을 함께 비는 공동체의 상징이었다.
솟대는 지역에 따라 짐대, 솔대, 소줏대, 수살목, 서낭대 등으로 불렸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마을 바깥에서 들어오는 액운을 막고, 하늘에 풍요를 빌며, 보이지 않는 불안을 하나의 상징으로 세워 올렸다. 솟대 위의 새는 단순한 형상이 아니라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이 하늘을 향해 띄운 오래된 기원의 언어였다.

왜 사람들은 마을 어귀에 솟대를 세웠을까
솟대가 주로 세워진 곳은 마을 입구와 경계 지점이었다. 바깥과 안쪽이 갈라지는 자리이자 낯선 기운이 드나든다고 여겨진 곳이었다. 사람들은 그 자리에 솟대를 세워 외부의 액운을 막고, 마을 안으로는 평안과 복이 깃들기를 바랐다. 농경사회에서는 풍년이 곧 삶의 안정이었고, 어촌에서는 풍어가 생존과 직결됐다. 솟대는 이 같은 현실적 염원을 공동체 차원에서 한데 모아 세운 상징물이었다.
솟대 위에 새가 놓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새는 하늘과 땅을 오가는 존재로 받아들여졌고, 계절과 자연의 흐름을 먼저 감지하는 생명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솟대의 새는 인간의 바람을 하늘에 전하고, 하늘의 좋은 기운을 다시 마을로 불러오는 매개로 인식됐다. 말없는 나무 새 한 마리가 장대 위에 올라 있었지만, 그 안에는 마을 전체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이정엽 솟대 명인이 다시 세우는 한국의 상징
서울전통문화협회를 이끌고 있는 이정엽 솟대 명인은 이 사라져 가는 상징을 오랜 시간 다시 세워온 인물이다. 그는 솟대를 단순히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하는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전통의 형식과 상징성을 존중하되, 오늘의 공간과 생활 양식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호흡할 수 있는 조형예술로 재해석해왔다.
이정엽 솟대 명인의 작업은 고증과 재해석 사이에 서 있다. 장대와 새, 비례와 곡선, 나무의 결을 살피는 일은 전통을 향한 존중에서 출발하지만, 완성된 작품은 현대의 전시장과 생활공간 안에서도 낯설지 않게 놓인다. 그에게 솟대는 과거를 흉내 내는 민속 소품이 아니라, 한국적 정신을 오늘의 감각으로 다시 세우는 조형예술이다.
최근 열린 서울전통문화예술대전에서도 이정엽 솟대 명인의 작품은 전통문화가 오늘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받았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나무 새의 곡선, 하늘을 향한 장대의 긴장감, 장식보다 절제에 가까운 형태는 오래된 민속신앙을 과장 없이 현재의 언어로 옮겨 놓았다.
사라진 것은 형식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의미였다
그러나 산업화와 도시화는 농어촌의 풍경을 급격히 바꾸어 놓았다. 초가집이 사라지고 콘크리트 건물이 들어섰으며, 마을 단위의 제의와 공동체 문화도 빠르게 해체됐다. 솟대 역시 그 흐름 속에서 생활 현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오늘날 솟대는 일부 민속마을이나 박물관, 지역 축제에서나 간신히 만날 수 있는 전통 상징이 됐다.
문제는 단지 솟대의 수가 줄었다는 데 있지 않다. 오늘날 남아 있는 솟대조차 종종 옛 풍경이나 전통 장식 정도로 소비된다. 사람들이 왜 그것을 세웠고, 그 앞에서 무엇을 빌었으며, 공동체가 어떤 마음으로 그것을 함께 세워 왔는지는 충분히 이야기되지 않는다. 형태는 간혹 남아 있지만, 솟대를 세우고 함께 공경하며 기원을 모으던 의미는 쇠락해진 셈이다.
K-컬처 시대, 우리가 다시 봐야 할 오래된 상징
지금 한국 문화는 세계 시장에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한복과 한글, 한식, K-팝과 드라마는 이미 한국을 대표하는 콘텐츠가 됐다. 그러나 그 화려한 외연 아래에는 오랜 세월 생활 현장에서 축적된 상징과 문화의 뿌리가 있다. 솟대는 그중 하나다. 그것은 특정 계층만의 문화가 아니라 평범한 마을 사람들이 함께 세운 생활문화였고, 공동체의 불안과 희망을 동시에 담아낸 상징이었다.
이정엽 솟대 명인이 지금도 묵묵히 솟대를 세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통은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살아남지 않는다. 누군가 다시 읽고, 다시 만들고, 다시 현재의 언어로 옮겨야 이어질 수 있다. 솟대를 다시 세우는 일은 단순히 전통 형식을 보존하는 차원을 넘어, 한국 문화의 오래된 뿌리를 오늘의 감각으로 복원하는 작업이다.

나무 새가 다시 하늘을 향할 때
하늘을 향한 나무 새는 여전히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는 한때 마을 사람들이 함께 품었던 바람, 사라져 가는 한국의 상징을 다시 살려내려는 한 사람의 집념, 그리고 오래된 전통을 미래의 언어로 바꾸려는 문화적 과제가 함께 담겨 있다.
이정엽 솟대 명인의 작업은 그래서 한 작가의 개인 작업을 넘어선다. 그것은 사라진 전통을 오늘의 문화 자산으로 돌려놓는 일이고, 민속신앙의 기억을 현대 조형예술의 언어로 다시 읽어내는 일이다. 솟대가 다시 세워진다는 것은 단지 나무 장대가 하나 더 만들어진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잊고 있던 공동체의 감각, 하늘을 향해 마을 공동체모두가 간절히 함께 빌던 그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는 뜻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