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봉은사, 봉은사역 135m 걸었더니 23m 미륵대불과 1200년 숲이 나온다

서울 강남 봉은사는 지하철 9호선 봉은사역 1번 출구에서 약 135m만 걸으면 들어가는 1200년 천년고찰이다. 대웅전에서 추사 김정희의 마지막 글씨로 알려진 판전을 지나면 높이 23m 미륵대불이 나타나고, 뒤편에는 대나무와 숲길이 이어진다. 코엑스와 고층빌딩 바로 맞은편인데도 경내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도시 소음이 옅어져 1시간 안팎의 서울 산책지로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서울 강남 봉은사와 코엑스 일대 도심 전경
서울 강남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봉은사. 전각과 숲 뒤로 빌딩이 이어져 천년고찰과 현대도시가 한 화면에 겹친다. 이미지=여행레저신문

여행레저신문  ㅣ 김미래기자

횡단보도 건너편에는 코엑스가 있다. 유리벽을 두른 빌딩과 호텔, 전시장, 쇼핑몰이 줄지어 선 서울 강남의 중심이다.

그런데 봉은사 쪽으로 몇 걸음만 옮기면 풍경이 끊긴다. 기와지붕이 나오고 나무가 건물을 가린다. 더 안으로 들어가면 대웅전이 보이고 그 뒤 언덕에는 대나무와 숲이 이어진다. 마지막에는 높이 23m의 미륵대불이 서 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다. 지하철 9호선 봉은사역 1번 출구에서 약 135m다. 산을 오르거나 버스를 갈아탈 필요가 없다.

이 짧은 접근거리 뒤에 1200년이 넘는 시간이 붙는다. 봉은사는 794년 신라 원성왕 때 연회국사가 견성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며 조선시대 선릉의 능침사가 된 뒤 봉은사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됐다.

서울 봉은사 23m 미륵대불과 숲
봉은사 뒤편에 자리한 높이 23m 미륵대불. 대웅전에서 판전을 지나 올라가면 넓은 광장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다. 이미지=여행레저신문

봉은사역에서 3분인데 들어가면 강남이 잘 보이지 않는다

봉은사의 첫 번째 재미는 역사보다 공간의 반전이다. 출발점은 서울에서도 가장 도시적인 장소다. 봉은사로를 사이에 두고 코엑스와 무역센터가 있고 주변에는 고층 업무시설과 호텔이 빽빽하다.

하지만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가면 건물 사이가 나무로 채워진다. 도로 소음도 차츰 줄고 기와와 숲이 먼저 시야를 차지한다.

봉은사는 강남 개발 이전까지 수도산 자락의 산사였다. 주변 도시가 커지면서 사찰만 그 자리에 남았고 지금의 독특한 풍경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이곳은 산속의 고찰을 찾아가는 여행과 다르다. 대도시를 걷다가 문 하나를 지나 갑자기 산사에 들어가는 경험에 가깝다.

서울 봉은사 대웅전과 석탑
봉은사 중심 전각인 대웅전.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사찰다운 공간감을 느끼게 되는 곳이다. 이미지=여행레저신문

대웅전까지 가면 천년고찰이라는 말이 조금씩 실감난다

경내 중심에는 대웅전이 자리한다. 일주문과 진여문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전각 사이로 마당이 열리고 전통적인 사찰 풍경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현재 봉은사의 모든 건물이 창건 당시부터 남은 것은 아니다. 1939년 화재와 6·25전쟁으로 많은 전각이 소실돼 판전 등 일부를 제외한 상당수 건물은 이후 다시 지어졌다.

하지만 봉은사의 역사는 건축물의 연대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조선시대에는 선릉을 지키는 능침사였고 1551년에는 선종의 수사찰이 되면서 불교 중흥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로 기능했다.

대웅전 마당에서 주변을 보면 오래된 사찰의 흔적과 재건된 전각이 자연스럽게 겹쳐 있다.

봉은사 미륵대불 광장과 전각 전경
미륵대불 광장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불상과 전각, 숲이 하나의 공간으로 이어진다. 이미지=여행레저신문

화려한 전각보다 판전 앞에서는 글씨부터 봐야 한다

대웅전에서 미륵대불 방향으로 올라가면 판전이 나온다. 건물 규모만 보면 크게 눈에 띄지 않지만 봉은사의 역사적 밀도가 가장 높은 장소 가운데 하나다.

정면 처마 아래 걸린 판전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말년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현판에는 칠십일과병중작이라는 내용이 남아 있으며 추사의 마지막 글씨로 널리 소개된다.

판전과 현판은 각각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대웅전의 화려한 단청을 본 뒤 판전에서는 시선을 조금 위로 올려 두 글자의 힘을 보는 편이 좋다.

봉은사를 단순한 도심 포토존이 아니라 역사여행지로 만들어주는 지점도 바로 이곳이다.

서울 봉은사 미륵대불과 강남 야경
해가 지면 미륵대불 뒤로 강남 고층빌딩의 불빛이 올라온다. 봉은사에서 가장 강한 천년고찰과 현대도시의 대비가 만들어지는 시간이다. 이미지=여행레저신문

판전을 지나면 23m 미륵대불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다

판전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숲이 벌어지고 넓은 광장이 나온다. 그 끝에 높이 23m의 미륵대불이 서 있다.

미륵대불은 1986년 조성 불사가 시작돼 약 10년에 걸쳐 완성됐다. 지금은 봉은사를 대표하는 상징 가운데 하나다.

불상 바로 아래에 서면 사진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크게 느껴진다. 뒤쪽 숲과 앞의 넓은 공간이 함께 열려 있어 종교적 의미와 별개로 강한 공간감을 만든다.

미륵대불 광장에서 뒤를 돌아보면 봉은사의 또 다른 얼굴도 나타난다. 나무 사이로 강남의 고층건물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봉은사에서 가장 서울다운 장면은 해 질 무렵 나온다

낮의 미륵대불 뒤에는 숲이 먼저 들어온다. 해가 내려가고 주변 고층건물에 불이 켜지면 풍경의 중심이 달라진다.

불상과 기와지붕 뒤로 유리 외벽의 빌딩이 솟고 도시의 불빛이 켜진다. 천년고찰과 현대 강남이 가장 선명하게 한 화면에 겹치는 시간이다.

전통과 현대를 연출해서 만든 관광공간이 아니라 오래된 사찰 주변으로 도시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풍경이다.

사진을 목적으로 찾는다면 낮 풍경만 보고 나가기보다 해 질 무렵까지 시간을 잡아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울 봉은사 대나무 숲길
봉은사 뒤편에는 전각 사이를 잇는 숲길과 대나무가 이어진다. 코엑스 맞은편이라는 사실이 잠시 잊힐 만큼 분위기가 달라진다. 이미지=여행레저신문

대불만 보고 내려오면 봉은사의 숲을 놓친다

미륵대불 뒤편과 전각 사이에는 대나무와 나무그늘이 이어지는 숲길이 있다. 큰 등산로는 아니지만 봉은사가 본래 수도산의 산사였다는 흔적을 체감하기에 충분하다.

여름에는 이 구간의 가치가 더 커진다. 대웅전과 광장의 햇볕을 벗어나면 대나무와 활엽수가 그늘을 만들고 길의 온도와 소리까지 달라진다.

코엑스와 수백m밖에 떨어지지 않았지만 나무가 시야를 막으면서 도시 풍경이 거의 사라지는 곳도 있다.

봉은사를 여름 산책지로 찾는다면 미륵대불에서 바로 되돌아오기보다 숲길까지 이어 걷는 편이 훨씬 낫다.

30분이면 핵심, 한 시간이면 봉은사의 결이 달라진다

시간이 짧다면 일주문에서 대웅전, 판전, 미륵대불까지만 이어도 핵심은 볼 수 있다. 사진 촬영을 포함해 30~40분 정도를 잡으면 된다.

한 시간 이상 여유가 있다면 뒤편 숲길과 대나무길까지 연결한다. 경내에서 잠깐 쉬는 시간을 넣으면 봉은사의 분위기를 훨씬 천천히 느낄 수 있다.

밖으로 나오면 다시 코엑스와 무역센터다. 별마당도서관까지 도보로 이어갈 수 있어 전통사찰과 현대적인 강남 실내공간을 한 번에 묶는 일정도 쉽다.

서울 여행에서 몇 분 사이 풍경이 이렇게 크게 바뀌는 장소는 흔하지 않다.

여행정보

위치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 531

대중교통 지하철 9호선 봉은사역 1번 출구에서 약 135m

창건 794년 신라 원성왕 때 견성사로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주요 볼거리 대웅전, 판전과 추사 김정희 현판, 23m 미륵대불, 전각 뒤편 숲길과 대나무길

추천 동선 봉은사역 → 일주문 → 대웅전 → 판전 → 미륵대불 → 숲길·대나무길 → 원점

추천 소요시간 핵심 전각 30~40분, 숲길과 휴식 포함 약 1시간~1시간30분

입장료 일반 경내 관람 별도 입장권 없음

추천 시간 여름에는 오전 또는 늦은 오후. 강남 야경과 미륵대불을 함께 보려면 해 질 무렵이 좋다.

이용 예절 기도와 법회가 이어지는 종교공간이므로 법당 주변에서는 조용히 이동하고 내부 촬영은 현장 안내를 따른다.

연계 여행 코엑스, 별마당도서관, 무역센터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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