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찬 기자 ㅣ 여행레저신문
DMZ는 세계적인 브랜드지만, 상품은 아직 약하다
대한민국 접경 지역은 지난 반세기를 넘어 안보의 이름으로 관리돼 왔고, 관광의 이름으로 다시 포장돼 왔다. 강원과 경기, 인천의 접경지역 곳곳에는 ‘DMZ’라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브랜드가 붙었고, 정부와 지자체는 평화의 길을 열고 전망대를 정비하고 케이블카를 놓으며 안보관광과 평화관광의 외형을 키워 왔다. 이제 냉정하게 물어보자.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반드시 예약해야 할 대표 DMZ 상품이 있는가. 국내 여행자가 가족과 함께 1박 2일을 내어 찾아갈 만큼 완성도 높은 접경 체류 상품이 있는가. 여행사가 일정과 가격, 예약 조건을 정리해 바로 팔 수 있는 상품 구조가 있는가.
시설은 늘었지만 구매 이유는 약하다
문제는 시설이 없다는 데 있지 않다. 시설은 충분히 있다. 전망대가 있고, 탐방로가 있고, 평화의 길이 있고, 케이블카가 있다. 다양한 숙박시설까지 준비되어 있다. 화천만 보더라도 평화의 댐과 백암산케이블카, DMZ 전망 거점, 평화의 길이 하나의 축으로 놓여 있다. 개별 자원만 놓고 보면 상징성도 충분하고 경치또한 빼어나다. 그러나 관광은 시설의 나열만으로 완성되지는 않는다. 소비자가 시간을 내고 돈을 쓰고, 여행사가 판매하고, 지역이 수익을 얻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비로소 상품이 된다. 지금 DMZ 관광의 가장 큰 약점은 바로 그 ‘상품’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전망대에 오른다’, ‘케이블카를 탄다’, ‘평화의 길을 걷는다’는 설명은 일정표일 수는 있어도 그 자체로는 구매 이유가 되기 어렵다. 상품이라면 누구를 위한 여행인지, 어떤 감정을 건드리는지, 어디서 자고 무엇을 먹고 어떤 이야기를 듣고 무엇을 남기고 돌아오는 지가 보여야 한다. 접경 지역 관광은 이 지점에서 아직 약하다. 길은 열렸지만 여행이 보이지 않고, 시설은 생겼지만 예약하고 싶은 이유는 선명하지 않다.

단체형과 FIT 합류형을 동시에 설계해야 한다
DMZ 관광은 일반 관광지와 조건이 다르다. 신분증 확인이 필요하고, 사전 신청을 해야 하며, 군사상황과 기상에 따라 일정이 바뀌거나 취소될 수 있다. 일부 구간에서는 촬영 제한도 따른다. 이런 구조에서는 개인이 마음대로 드나드는 완전 자유여행형보다는, 일정한 기준 아래 운영되는 상품 설계가 더 중요하다. 학교, 기관, 기업, 예비역 모임, 외국인 소규모 그룹처럼 일정 인원이 움직이는 단체형 상품은 운영 안정성을 높일 수 있고, 개별 여행자는 현장에서 소규모 그룹 투어에 합류하는 방식으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
문제는 지금의 홍보와 운영이 여전히 개별 시설 안내와 공공 코스 소개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관광객이 바로 구매할 수 있는 상품, 여행사가 일정표와 가격표를 갖고 바로 팔 수 있는 패키지, 기관 단체가 바로 예약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충분히 보이지 않는다. 결국 DMZ 관광은 단체형과 FIT 합류형을 동시에 살리는 방향으로 다시 설계돼야 한다.

화천 사례가 보여주는 접경 관광의 빈틈
화천의 사례는 이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백암산케이블카는 접경 산악지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시설이고, 평화의 댐은 화천 관광의 묵직한 앵커다. 전망 데크와 평화의 길은 현장성을 더해 준다. 재료만 놓고 보면 1박 2일 상품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은 충분하다. 그러나 재료가 있다고 요리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전망대에 오르고 평화의 댐을 둘러보는 코스가 실제로 숙박과 식사, 해설, 사진 포인트, 지역 상권 소비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그것은 여전히 공공시설 순회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접경관광의 성과는 단순 방문객 수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지역에서 실제로 얼마나 머물렀는지, 숙박과 식당, 카페, 로컬 상권으로 얼마나 연결됐는지, 민간 여행사가 팔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는지까지 함께 따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공 관광시설은 지역 소비를 만드는 앵커가 아니라 예산과 운영비만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남을 수 있다.
예비역과 외국인 시장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DMZ 관광이 놓치고 있는 또 하나의 시장은 예비역과 가족이다. 화천, 철원, 양구, 인제, 고성, 파주, 연천이라는 이름은 많은 남성에게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병영 생활과 훈련, 외박과 면회의 기억이 남아 있는 장소다. 이 감정 자산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한국 DMZ 관광의 강력한 차별 점이다. 예비역이 가족과 함께 자신의 복무 지역을 다시 찾고, 전망대와 전적지, 평화의 길, 지역 식당과 숙박을 연결하는 1박 2일 기억 여행은 충분히 매력적인 상품이 될 수 있다.
외국인 시장도 마찬가지다. DMZ는 한국전쟁과 냉전, 분단과 평화, 접경 생태를 한 곳에서 체감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현대사 현장이다. 다만 ‘분단의 현실을 본다’는 설명만으로는 고부가 상품이 되기 어렵다. 다국어 해설, 전쟁사와 현재 안보 지형을 연결하는 스토리텔링, 지역 숙박과 음식, 소규모 프리미엄 투어, 촬영 가능한 포인트와 명확한 예약 시스템이 함께 설계돼야 외국인에게도 팔리는 상품이 된다.

철책보다 먼저 걷어낼 것은 상품 부재다
정책의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무엇을 더 지을 것인가가 아니라 누가 왜 이 상품을 살 것인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DMZ 관광의 미래는 철책을 얼마나 잘 보존하느냐에만 달려 있지 않다. 그 철책 앞까지 사람을 움직이게 할 이유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철책은 장벽이 아니라 서사의 무대가 되어야 하고, 전망대는 금지의 공간이 아니라 기억의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보안은 지켜야 하지만, 보안 뒤에 숨어 관광의 실패를 합리화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은 DMZ라는 압도적인 관광 자산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자산이 저절로 산업이 되지는 않는다. 전망대와 케이블카와 탐방로를 세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누가 사고, 누가 팔고, 누가 머물고, 누가 다시 말하게 만들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DMZ 관광은 앞으로도 세계적인 브랜드를 가진 국내 견학지에 머물 것이다. 지금 걷어내야 할 것은 철책 자체가 아니라, 시설을 만들면 관광이 된다고 믿어 온 낡은 정책의 철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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