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카리스 워룸과 방공호, 몰타는 참혹한 공습의 날들을 어떻게 기억하나

몰타의 마지막 밀리터리 여행은 지하로 내려간다. 라스카리스 워룸은 지휘부의 전쟁을, 방공호는 시민의 피난을, 항공박물관은 하늘의 기억과 복원을 보여준다. 참혹한 공습의 날들을 지우지 않고 여행의 언어로 남긴 몰타의 방식을 따라갔다.

몰타 라스카리스 워룸 지하 작전실과 작전 지도
라스카리스 워룸은 2차대전 당시 몰타가 지중해 전쟁의 지휘 거점이었음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이정찬 기자 ㅣ 여행레저신문

몰타의 군사유산 여행은 마지막에 이르러 지하로 내려간다. 세인트안젤로 요새와 그랜드하버의 성벽이 바다를 향해 서 있는 풍경이었다면, 라스카리스 워룸과 방공호는 그 바다와 하늘에서 밀려온 전쟁을 땅속에서 견뎌내고 이겨낸 장소다. 바깥의 몰타는 햇빛이 강하고 바다는 눈부시지만,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는 순간 여행의 온도는 달라진다. 돌벽은 가까워지고 통로는 낮아지며, 전쟁은 역사 책의 문장이 아니라 사람이 숨을 죽이고 머물렀던 감각으로 다가온다.

라스카리스 워룸은 몰타가 2차대전 당시 단순한 피해의 섬에 머물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이곳은 지중해 전쟁의 흐름을 읽고, 항공 작전과 해상 작전의 정보를 모으고, 북아프리카와 시칠리아로 이어지는 전장을 바라보던 지하 지휘소였다. 오래된 지도와 통신 장비, 작전실의 책상과 벽면을 따라 걷다 보면 몰타가 왜 그토록 중요한 섬이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작은 섬이라는 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전략의 무게가 이 지하 방들 사이에 남아 있다.

라스카리스 워룸에서 오래 바라보게 되는 것은 지도의 선과 표시들이다. 오늘의 관람객에게는 오래된 작전실의 소품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선 하나하나는 당시에는 배의 위치였고 비행기의 이동이었으며 보급선의 생사와 연결된 정보였을 것이다. 몰타는 지도 위에서 작게 보였지만, 그 작은 점 하나가 지중해 전쟁의 흐름과 맞물리는 위치에 있었다. 그래서 이곳은 단순한 군사시설을 넘어, 작은 섬이 세계사의 큰 움직임 속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보여주는 현장이 된다.

몰타 라스카리스 워룸 입구와 지하 통로
라스카리스 워룸의 입구는 햇빛이 강한 몰타의 지상에서 전쟁의 지하로 내려가는 첫 장면이다.

몰타가 중요했던 이유는 결국 위치였다. 지중해 한가운데 놓인 이 섬은 유럽과 북아프리카, 동서 지중해를 잇는 항로의 중간에 있었고, 그 위치 때문에 전쟁이 밀려오면 피하기 어려웠다. 2차대전의 몰타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폭격을 감당해야 했고, 바다에서는 보급과 봉쇄의 압박을 함께 견뎌야 했다. 라스카리스 워룸을 걷다 보면 이곳이 박물관이기 전에, 당시 몰타가 세계사의 한복판에 놓였던 증거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그러나 라스카리스 워룸이 말하는 것은 지휘부의 전쟁이다. 지도 위에서 움직이는 배와 비행기, 작전 지시와 통신, 전선의 흐름을 읽는 사람들의 전쟁이다. 그곳에서 전쟁은 계산되고 기록되고 전달된다. 하지만 몰타의 2차대전은 지휘부의 방 안에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었다. 더 무거운 시간은 도시와 마을, 항구와 집, 그리고 땅속 방공호에서 시민들이 하루하루 버텨야 했던 생활 속에도 남아 있다.

그래서 Malta at War Museum과 방공호로 이어지는 동선은 중요하다. 라스카리스 워룸에서 전쟁을 위에서 내려다보았다면, 방공호에서는 전쟁을 아래에서 받아낸 사람들의 자리로 들어가게 된다. 좁은 통로와 낮은 천장, 거칠게 파낸 벽과 어둡게 이어지는 피난 공간은 전쟁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말한다. 그곳에는 장군의 지도나 작전 명령보다, 폭격 소리를 피해 몸을 낮추고 가족을 곁에 붙잡았던 사람들의 시간이 더 짙게 배어 있다.

몰타의 2차대전은 하늘에서 내려왔다. 바다를 통해 침략과 봉쇄를 겪었던 섬은 이제 공습이라는 방식으로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요새와 성벽이 바다를 향해 있었다면, 방공호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위협을 피해 땅속으로 내려간 자리였다. 같은 섬 안에서 어떤 사람들은 지하 작전실에서 전장을 읽었고, 또 다른 사람들은 방공호에서 아이의 손을 붙잡고 폭격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이 두 장면을 함께 보아야 몰타의 전쟁은 조금 더 온전하게 다가온다.

몰타 앳 워 뮤지엄 입구와 석조 건물
Malta at War Museum은 지휘부의 전쟁에서 시민의 전쟁으로 시선을 옮기게 하는 장소다.

방공호 안을 걷는 일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통로는 생각보다 좁고 공기는 바깥보다 무겁게 느껴지며, 벽을 따라 이어지는 작은 방들은 생활의 흔적처럼 보인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잠을 청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아이를 달랬을 것이며, 누군가는 바깥의 집이 남아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다음 폭격이 지나가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전쟁은 전선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사람의 숨과 잠, 식사와 두려움 속으로 들어온다.

몰타의 2차대전 유산이 강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섬은 전쟁을 영웅담으로만 포장하지 않는다. 물론 몰타에는 버틴 사람들의 자부심이 있고,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기록도 있으며, 하늘과 바다에서 이어진 치열한 시간이 남아 있다. 그러나 방공호 앞에 서면 그 모든 거대한 말들은 잠시 뒤로 물러난다. 결국 남는 것은 폭격이 시작될 때마다 지하로 내려가야 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 속에서도 하루를 이어가야 했던 시민들의 얼굴이다.

라스카리스 워룸과 방공호의 대비는 몰타 밀리터리 여행의 깊이를 만든다. 하나는 전쟁을 지휘한 방이고, 다른 하나는 전쟁을 견딘 통로다. 하나는 지도를 펴고 판단하던 자리이며, 다른 하나는 폭격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던 피난처다. 이 둘을 함께 보아야 몰타의 2차대전은 작전과 생활, 전략과 일상, 지휘부와 시민의 시간으로 나뉘어 입체적으로 읽힌다.

이 흐름은 항공박물관에서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 몰타 항공박물관은 전쟁의 하늘을 보여주는 곳이지만, 단순히 전투기를 세워두고 관람객을 맞는 전시관은 아니었다. 항공기와 부품, 그림과 기록, 복원 중인 기체와 작업 현장이 함께 놓이면서 전쟁의 유산이 지금도 계속 관리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오래된 비행기는 멈춰 있는 물건이 아니라, 누군가의 손을 거쳐 다시 설명되고 보존되는 기억이었다.

복원 작업실에서 받은 인상은 특히 오래 남았다. 전쟁 유산을 보존한다는 것은 단순히 오래된 물건을 잘 보관하는 일이 아니다. 사라진 부품을 찾고, 기록을 확인하고, 기체의 구조를 이해하며, 한 시대의 기술과 흔적을 오늘의 언어로 다시 세우는 일이다. 담당자의 설명을 듣고 있으면 항공박물관은 전시장인 동시에 작업장이고, 과거를 보여주는 곳이면서 현재의 책임이 이어지는 장소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항공박물관에서 만나는 비행기와 복원 작업은 그 기억을 다시 하늘로 올려 보낸다. 전투기는 더 이상 날지 않지만, 기체를 복원하는 손길은 과거를 오늘의 자리로 불러낸다. 누군가는 녹슨 금속을 닦고, 누군가는 부품의 위치를 확인하며, 누군가는 오래된 기록을 찾아 한 대의 비행기가 어떤 시대를 통과했는지 되살린다. 몰타가 군사유산을 다루는 태도는 이런 세부에서 드러난다. 낡은 것을 방치하지 않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화려하게 꾸미지도 않는다. 필요한 만큼 복원하고, 필요한 만큼 설명하며, 다음 세대가 다시 볼 수 있도록 남긴다.

몰타의 항공 유산은 2차대전 공습과 떼어놓고 볼 수 없다. 이 작은 섬의 하늘은 한때 폭격기와 전투기가 오가던 통로였고, 그 아래 시민들은 방공호로 내려갔으며, 지휘부는 지하에서 하늘과 바다의 움직임을 읽었다. 라스카리스 워룸, 방공호, 항공박물관은 서로 다른 장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져 있다. 지휘하는 사람, 피하는 사람, 날아오르는 기계와 떨어지는 폭탄,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을 기록하고 복원하는 오늘의 사람들까지 하나의 선 위에 놓인다.

이런 동선이야말로 몰타 밀리터리 팸트립의 완성도를 말해준다. 앞선 여정에서 성요한기사단의 갑옷과 세인트안젤로 요새, 프랑스 점령과 그랜드하버의 바다를 따라왔다면, 마지막 여정은 20세기의 몰타로 들어간다. 여행자는 요새의 외벽에서 시작해 항구와 성벽을 지나고, 다시 지하 작전실과 방공호, 항공박물관으로 이동하며 몰타가 왜 지중해 전쟁사의 중요한 섬이었는지를 여러 층위로 경험한다. 이 일정은 장소를 나열하지 않고, 몰타의 시간을 바다에서 지하로, 지하에서 다시 하늘로 움직이게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몰타가 전쟁을 다루는 방식이다. 이 섬은 공습의 흔적과 군사시설, 전투기와 작전실을 여행의 콘텐츠로 만들었지만, 그것을 가볍게 소비하지 않는다. 지하의 통로는 어둡게 남아 있고, 작전실은 당시의 공기를 품고 있으며, 항공박물관은 전쟁의 기계를 복원의 대상으로 다룬다. 여행자는 사진을 찍지만, 그 사진 안에는 단순한 볼거리보다 오래된 시간의 무게가 함께 담긴다.

그렇다고 이 여행이 하루 종일 무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몰타 관광청의 기획이 좋았던 이유는 바로 그 균형에 있다. 전쟁의 장소를 충분히 보여준 뒤, 일정은 다시 사람의 자리로 돌아온다. 지하의 어둠과 공습의 이야기를 지나면 식탁이 나오고, 와인잔이 놓이고, 항구의 저녁이 이어진다. 그것은 단순한 접대가 아니라, 여행의 호흡을 다시 사람 쪽으로 돌려놓는 방식이었다.

와인 디너가 기억에 남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하루 종일 전쟁의 방과 방공호, 항공기와 복원 작업을 본 뒤에 앉은 식탁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시간이 아니었다. 방금 전까지 지하에서 보았던 어둠과 공습의 감각이 조금씩 가라앉고, 사람들은 접시와 와인잔 사이에서 다시 오늘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몰타의 밀리터리 여행은 전쟁의 장소에서 끝나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들의 대화와 식탁으로 마무리된다.

그 장면은 3편에서 보았던 몰타의 태도와도 이어진다. 몰타는 싸움의 역사를 기억하지만, 그 기억을 오늘의 적대감으로만 끌고 오지 않는다. 2차대전 당시 이 섬은 공습을 겪었고 많은 이들이 방공호로 내려가야 했지만, 오늘의 몰타는 그 시간을 독일과 이탈리아에 대한 감정으로만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과거의 전쟁을 역사로 남기고, 그 장소를 세계의 여행자가 함께 돌아보는 길로 열어둔다.

한국 독자에게 이 지점은 조용히 다가온다. 우리도 같은 20세기를 통과했고, 식민과 전쟁, 분단의 기억을 아직 현재형으로 안고 있다. 그래서 몰타의 방공호와 전쟁박물관을 보며 단순히 먼 유럽의 이야기를 본다고 말하기 어렵다. 규모도 다르고 역사도 다르지만, 전쟁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 그 시간을 다음 세대에게 어떤 표정으로 보여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남아 있다.

몰타가 주는 대답은 과장되지 않는다. 이 섬은 자신이 겪은 폭격과 봉쇄, 점령과 저항을 지우지 않았다. 그러나 그 기억을 증오의 언어로만 붙잡아두지도 않았다. 지하 작전실은 그대로 보존하고, 방공호는 시민의 시간으로 남기며, 항공박물관은 전쟁의 기계를 복원하고, 마지막에는 와인과 식탁으로 여행자의 마음을 다시 현실로 데려온다. 그 흐름 속에서 몰타의 군사유산은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오늘도 해석되는 여행이 된다.

마지막 편에 이르러 몰타 밀리터리 팸트립의 의미는 조금 더 분명해진다. 이 여행은 단지 전쟁 유적을 둘러보는 일정이 아니었다. 성요한기사단의 갑옷과 세인트안젤로 요새, 나폴레옹의 점령과 그랜드하버, 라스카리스 워룸과 방공호, 항공박물관과 와인 디너가 하나의 긴 호흡으로 이어졌다. 그 안에는 요새의 돌과 지하의 어둠, 바다의 빛과 식탁의 온기가 함께 있었다.

이 마지막 여정에서 몰타 밀리터리 팸트립의 성격도 분명해졌다. 1편이 몰타 군사유산 전체의 문을 열었다면, 2편은 성요한기사단과 세인트안젤로 요새의 깊이로 들어갔고, 3편은 나폴레옹과 프랑스 점령의 기억을 통해 몰타가 사람과 시간을 어떻게 품어왔는지를 보여줬다. 그리고 4편은 2차대전의 지하 작전실과 방공호, 항공박물관을 지나 이 섬이 전쟁의 흔적을 어떻게 보존하고 여행으로 다시 읽게 만드는지를 마무리한다.

결국 몰타의 군사유산은 전쟁터의 목록이 아니었다. 성벽과 요새, 지하 작전실과 방공호, 전투기와 복원 작업, 그리고 항구의 식탁까지 이어지는 하나의 긴 여행이었다. 이 섬은 전쟁을 지웠기 때문에 평화로운 것이 아니라, 전쟁을 잘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의 평화를 더 품격 있게 보여준다. 몰타가 작지만 깊게 남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바다와 하늘에서 밀려온 역사를 피하지 않고, 그것을 성벽과 지하, 박물관과 식탁 위에 조용히 남겨둔 섬이기 때문이다.

몰타는 작지만, 그 작은 섬 안에 너무 많은 시대가 겹쳐 있다. 바다로 들어온 사람들, 섬을 차지하려던 권력, 하늘에서 내려온 폭격, 지하로 내려간 시민들,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을 다시 설명하고 보존하려는 오늘의 사람들이 있다. 여행자는 그 길을 따라가며 전쟁을 배우지만, 동시에 전쟁 이후의 삶도 보게 된다. 이것이 몰타 군사유산 여행의 가장 큰 힘이다.

라스카리스 워룸을 나와 다시 햇빛 아래로 올라오면 몰타의 바다는 여전히 푸르다. 방공호의 어둠을 지나 항공박물관의 격납고를 보고, 저녁 식탁에 앉아 와인을 마실 때도 그 바다는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전쟁은 지나갔지만 장소는 남았고, 장소는 기억을 품고 있으며, 기억은 다시 여행자의 하루 안으로 들어온다. 몰타는 그 어려운 일을 꽤 조용하고 품격 있게 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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