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찬 기자 ㅣ 여행레저신문
한국관광 5.0은 한국 관광산업의 다음 방향을 묻기 위해 시작한 기획이다. 인바운드와 아웃바운드, 국내 관광과 지역 관광, 항공과 호텔, MICE와 웰니스, 플랫폼과 콘텐츠 산업까지 관광의 영역은 넓어졌지만, 한국 관광을 하나의 산업 구조로 다시 읽고 미래 방향을 제시하는 논의는 충분하지 않았다.
한국 관광의 미래를 묻는 일은 결국 한국 관광이 처음 무엇으로 태어났는지를 묻는 일이다. 오늘의 산업 구조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았다. 한국 관광산업이 어떤 조건에서 출발했고, 어떤 기관과 제도, 어떤 시장과 인력 위에서 성장했는지를 살펴봐야 앞으로의 방향도 제대로 예측할 수 있다.
한국관광 5.0의 첫 번째 이야기를 한국 관광산업의 출발점에서 시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 관광의 태동은 특정 관광지의 발견이나 한 여행상품의 성공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전쟁 이후 국가 재건의 과정에서 교통, 항공, 호텔, 발권, 안내, 국내 관광, 외래객 수용이 차례로 붙으며 산업의 형태를 갖추어간 과정이었다.
■ 교통부 안에서 시작된 관광산업
1960년대 초, 대한민국의 관광은 교통부의 업무 안에서 산업의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전쟁 이후 국가는 외화를 필요로 했고, 외국인 관광객이 숙박할 호텔과 이동 수단을 마련해야 했으며, 항공권과 공무여행을 처리할 창구도 필요했다. 이 시기에 국제관광공사, 대한여행사 Korea Travel Bureau, 대한항공, GTR, 아리랑택시, 관광종사원 자격제도 같은 이름들이 한꺼번에 등장한다.
한국 관광의 출발은 관광지 목록보다 먼저 항공, 호텔, 발권, 안내, 이동 체계가 어떻게 마련됐는지를 봐야 선명해진다. 한국 관광은 처음부터 사람을 부르고, 태우고, 머물게 하고, 안내하고, 다시 움직이게 하는 체계 속에서 출발했다.
초기의 관광행정이 교통부 안에서 다뤄졌다는 사실은 가볍지 않다. 관광은 이동 없이 성립하지 않는다.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에 들어오려면 항공이 있어야 했고, 공항에서 호텔로 이동하려면 택시와 차량이 있어야 했으며, 머물 곳과 안내할 사람, 일정을 처리할 창구가 필요했다. 관광은 관광지를 보여주는 일이기 전에 사람을 움직이는 일이었다.
1961년 관광사업진흥법은 관광이 국가 제도 안으로 들어오는 첫 장면이었다. 법은 관광을 관리하고 육성할 수 있는 틀을 만들었고, 이듬해 국제관광공사 체계로 이어졌다. 1962년 설립된 국제관광공사는 훗날 한국관광공사로 이어지는 조직이다. 한국 관광이 산업으로 불리기 시작한 배경에는 행정, 법, 기관, 교통, 숙박, 인력이 함께 놓여 있었다.
1962년 국제관광공사법과 공사 전신의 설립은 한국 관광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다. 여기서 볼 것은 공사라는 기관 하나가 생겼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같은 시기 호텔, 아리랑택시, 대한여행사, 관광종사원 자격제도가 함께 놓인다. 이 배열이 한국 관광의 출발 방식을 말해준다.
외국인 관광객이 오면 숙박할 호텔이 필요했다. 호텔에서 관광지로 이동할 수단이 필요했다. 현장에서 통역하고 안내할 사람이 필요했다. 항공권과 여행 업무를 처리할 창구도 필요했다. 한국 관광은 관광지를 먼저 포장한 산업이 아니라, 관광객을 받을 준비를 먼저 한 산업이었다.
그래서 한국 관광의 첫 구조는 분명하다. 한국 관광은 관주도 수용체계로 태어났다.
여기서 관주도는 중앙정부가 정책을 만들었다는 말로만 좁힐 수 없다. 교통부와 국제관광공사, 대한여행사와 대한항공, 호텔과 택시, 관광종사원 자격제도와 국내 관광, DMZ 관광과 외래객 수용이 함께 움직였다는 뜻이다. 관광객을 맞고 이동시키고 머물게 하며 현장을 안내하는 운영 기반을 관이 먼저 세웠다.

■ 대한항공과 Korea Travel Bureau, 이동과 발권의 축
그 무렵 대한항공의 역할도 컸다. 관광은 사람을 옮기는 산업이고, 국제 관광은 항공 없이는 커질 수 없다. 외래객이 한국에 들어오고, 공무원과 공공부문 인력이 해외로 나가고, 한국과 외국을 잇는 공식 이동이 늘어나는 과정에서 항공은 관광산업의 중심에 있었다.
국영 항공 체계에서 출발한 대한항공은 1969년 한진그룹 인수 이후 한국을 대표하는 항공사로 커졌다. 이 변화는 관광산업과도 맞닿아 있었다. 외래객 유치에는 노선과 좌석이 필요했고, 공무여행과 국제행사, 해외 네트워크도 항공권과 운항 체계가 있어야 움직였다. 초기 한국 관광에서 항공권은 단순한 교통권이 아니라 국가 이동 수요와 외래객 수용, 공무여행과 여행업을 묶는 재료였다.
대한항공이 사람을 움직이는 기반이었다면, 대한여행사 Korea Travel Bureau는 그 이동을 처리하는 창구였다.
대한여행사는 한국 관광 역사에서 초기 실무 창구로 보아야 한다. Korea Travel Bureau라는 이름은 그 시대의 일을 설명하는 데 꼭 필요하다. 당시의 여행 업무는 국가 이동 수요, 공무여행, 항공권 발권, 국내 관광, 외래객 수용, 안보 관광, 참전용사 재방한 관련 업무와 붙어 있었다.
그 가운데 GTR은 대한여행사를 이해하는 핵심 제도였다. GTR은 정부항공운송의뢰제도, 곧 공무원이 국외 출장에 나설 때 항공권 발권과 관련 서류 처리를 맡기던 공무여행 항공권 체계였다. 공무원이 해외출장을 갈 때 국적기 이용을 전제로 항공권을 끊고, 관련 절차를 처리할 창구가 필요했다. 대한여행사는 오랫동안 이 GTR의 발급·대행 창구 역할을 맡으면서 항공과 공공 이동 수요의 중심에 있었다.
초기 여행업의 중심에는 관광상품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공무여행이 있었고, 항공권이 있었고, 국가 이동 수요가 있었다. 대한여행사는 그 수요를 처리하면서 국내 관광과 외래객 수용, DMZ 관광과 한국전 참전용사 재방한 관련 업무까지 이어지는 관광 업무의 앞자리에 놓였다.
Korea Travel Bureau라는 이름을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행과 관광, 항공권과 공무여행, 국내 관광과 안보 관광이 한 창구에서 만났던 시대가 있었다. 대한여행사는 그 시절 한국 관광의 실무를 붙잡고 있던 이름이었다.
이 이름을 이해하려면 일본의 관광 Bureau 모델도 함께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1912년 Japan Tourist Bureau를 만들었고, 1915년 철도성 위탁으로 외국인 방문객에게 승차권을 판매했다. 1925년에는 일본 국내 고객을 대상으로 전국 철도 승차권 판매를 시작했다. 일본의 관광은 일찍부터 철도, 외국인 수용, 승차권 판매와 붙어 있었다.
한국은 이런 동아시아적 관광행정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었다. 한국에는 전쟁 이후 국가 재건이라는 과제가 있었고, 외화 획득과 공무여행, 안보 관광과 참전용사 재방한이라는 특수한 조건이 있었다. 한국은 그 조건 속에서 Korea Travel Bureau와 교통부, 국제관광공사, 대한항공, GTR을 엮어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한국식 관주도 수용체계였다.

■ 세방과 서울항공, 민간 여행업의 등장
관이 만든 수용체계 위에는 민간 여행서비스가 붙기 시작했다. 이 흐름을 설명할 때 세방여행사와 서울항공여행사는 빼놓을 수 없다. 대한여행사와 국제관광공사, 대한항공과 GTR이 초기 관광의 기본 운영 기반을 만들었다면, 민간 여행사는 항공권과 단체관광, 인바운드와 국내 관광을 실제 시장으로 넓혀갔다.
세방여행사는 한국 인바운드 여행업이 민간 시장으로 커지는 장면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이름이다. 고(故) 오세중 세방여행 회장은 1958년 5월 대한여행사 해외여행부 직원으로 여행업에 들어왔고, 1960년 세방여행사를 세웠다. 대한여행사에서 공공 성격의 여행 실무를 익힌 인물이 민간 여행사를 창업했다는 사실은 한국 여행업의 전환을 잘 보여준다. 관주도 수용체계 안에서 훈련된 인력과 경험이 민간 시장으로 옮겨가면서 한국 여행업은 책상 위 제도가 아니라 현장의 서비스 산업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세방의 성장은 숫자로도 확인된다. 1972년 세방은 외국관광객 3만8천 명을 유치해 230만 달러의 실적을 올렸다. 당시 전체 외국관광객이 37만 명 수준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세방이 전체 외래객의 약 10%를 맡은 셈이었다. 1973년 목표도 외국관광객 7만8천 명, 외화 456만 달러로 제시됐다. 이는 세방이 단순한 민간 여행사 하나가 아니라, 한국 인바운드 시장의 실제 물량을 움직인 회사였음을 보여준다.
고(故) 오세중 회장이 당시 가장 큰 병목으로 지적한 것은 호텔 객실 부족이었다. 외국인 관광객을 더 받을 수 있어도 숙박할 호텔방이 모자라면 시장은 커질 수 없었다. 이 말은 초기 한국 관광의 본질을 다시 확인시켜 준다. 한국 관광은 관광지를 먼저 포장한 산업이 아니라, 항공권과 호텔, 차량과 안내 인력, 여행사가 함께 움직여야 성립하는 수용산업이었다.
세방이 일본 인바운드 시장에서 민간 여행사의 힘을 보여줬다면, 서울항공여행사는 한국 아웃바운드 여행업의 초기 흐름을 보여주는 이름이다. 고(故) 정운식 서울항공여행사 회장은 1956년부터 관광업에 몸담았고, 1971년 서울항공여행사를 설립했다. 내국인의 해외여행이 지금처럼 자유롭지 않던 시기부터 해외여행 시장의 가능성을 열어간 1세대 여행업 경영인이었다.
서울항공여행사는 내국인 해외여행, 항공권, 단체 운영, 여행 상담을 통해 아웃바운드 시장의 길을 넓혔다. 고(故) 정운식 회장은 한국일반여행업협회, 오늘의 한국여행업협회로 이어지는 단체의 제2·3·4대 회장을 맡으며 업계의 제도화에도 관여했다. 2002년 관광의 날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사실은 그가 단순히 한 여행사의 창업주를 넘어 한국 여행업계 1세대 경영인으로 평가받았음을 보여준다.
세방과 서울항공은 서로 다른 시장을 향해 있었다. 세방은 일본 인바운드와 외래객 유치의 민간 역량을 보여줬고, 서울항공은 내국인 해외여행과 아웃바운드 시장의 길을 열었다. 두 회사는 관주도 수용체계 이후 민간 여행업이 어떻게 산업의 현장으로 내려왔는지를 설명하는 이름이다.
이후 한진관광개발과 롯데관광 등 항공·대기업 계열의 여행서비스가 등장하고, 여러 전문 여행사들이 시장에 들어오면서 한국 여행업은 인바운드와 아웃바운드, 항공권과 단체관광, 상품 운영을 중심으로 몸집을 키워갔다. 한국 관광의 태동은 공공기관과 항공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 기반을 받아 실제 손님을 모으고, 항공권을 끊고, 호텔과 버스를 맞추고, 현장을 굴린 민간 여행사들이 있었기에 산업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 국내 관광과 일본 인바운드, 그리고 안보 관광
한국 관광의 태동을 외래객 유치만으로 설명하면 절반만 보게 된다. 국내 관광도 컸다. 경주와 설악, 제주, 온천과 해수욕장, 수학여행과 신혼여행, 국민관광과 역사·전적지 관광은 한국 관광산업의 또 다른 기반이었다.
국내 관광은 국민이 움직이는 길이었다. 교통망이 정비되고, 숙박시설이 늘고, 여행사가 단체를 조직하고, 학교와 직장, 가족 단위 이동이 늘어나면서 국내 관광은 생활 가까이 들어왔다. 경주는 역사교육과 수학여행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고, 설악과 제주, 온천과 해수욕장은 국민이 찾아가는 대표 목적지가 되었다.
국가는 외국인 관광객만 받은 것이 아니었다. 국민이 자기 나라 안에서 이동하고, 머물고, 소비할 수 있는 관광 기반도 함께 넓혀갔다. 관광자원은 원래 그 자리에 있었지만, 산업이 되려면 접근할 길과 머물 공간, 안내와 편의시설, 여행서비스가 붙어야 했다. 국내 관광은 그 과정을 거치며 커졌다.
외래관광에서는 일본 인바운드가 큰 시장이었다. 일본 관광객은 당시 한국 관광의 중요한 손님이었고, 외화벌이와 단체관광 운영의 현장이기도 했다. 이 안에는 요정문화와 엔카이, 기생관광 논란 같은 어두운 면이 분명히 있었다. 그 역사는 지워서도 안 되고, 미화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일본 인바운드를 그 한 단어로만 정리하면 당시 한국 관광의 실제 현장을 놓치게 된다. 일본 관광객을 받기 위해서는 일본어 통역안내사가 필요했고, 호텔과 버스, 식음과 쇼핑, 단체 일정 운영이 필요했다. 여행사는 일정을 짰고, 안내사는 현장을 움직였고, 호텔과 식당, 교통업은 외래객을 받는 일을 익혀갔다.
일본 인바운드는 한국 관광 역사의 어두운 얼굴을 포함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외래객 수용 실무가 돌아간 현장이었다. 외화벌이, 통역 안내, 단체 수송, 숙박과 식음, 쇼핑과 일정 운영이 서로 물려 돌아갔다. 그 경험은 이후 한국 인바운드 관광의 실무 기반으로 남았다.
한국 관광에는 한국전쟁이 남긴 특수한 성격도 있었다. DMZ 관광, 판문점, 전적지 방문, 한국전 참전용사 재방한과 Reunion 성격의 초청 행사가 그 사례다.
구미권 방문객에게 한국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었다. 한국전쟁의 기억을 가진 이들에게 한국은 전쟁의 현장이었고, 전쟁 이후 다시 일어선 국가의 모습을 확인하는 장소였다. DMZ와 판문점, 전적지와 서울의 변화는 관광 동선이면서 국가 이미지를 보여주는 무대였다.
한국전 참전용사 재방한과 Reunion 성격의 초청 행사는 보훈과 외교, 안보와 관광이 함께 움직인 한국식 관광의 한 장면이었다. 훗날 Revisit Korea Program으로 알려진 재방한 사업의 성격도 이 연장선에서 읽을 수 있다. 한국은 전쟁의 기억을 가진 방문객에게 폐허 이후의 변화를 보여주었고, 방문객은 그 일정 안에서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함께 보았다.
DMZ 관광 역시 냉전의 현장을 관광의 언어로 보여준 특수한 상품이었다. 한국 관광은 외화벌이와 국내 관광, 공무여행과 항공권, 일본 인바운드와 구미권 참전용사 방문, DMZ와 국가 이미지가 뒤섞이며 출발했다.
■ 관광종사원과 인력 양성, 산업의 기틀
관광산업은 시설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호텔이 있어도 사람을 맞을 직원이 필요하고, 항공권이 있어도 발권과 예약을 처리할 사람이 필요하며, 외국인이 와도 통역하고 안내할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서 관광종사원 자격제도와 관광교육은 한국 관광의 태동기에서 빼놓을 수 없다.
1962년 관광종사원 자격제도는 한국 관광이 사람의 영역까지 제도화하려 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관광통역안내사, 호텔 종사자, 운전기사, 발권 담당자, 현장을 운영하는 여행사 직원들은 관광객을 실제로 움직이게 하는 사람들이었다.
1969년 호텔학교, 1977년 경주호텔학교의 등장은 같은 방향에서 읽힌다. 한국 관광은 호텔과 택시, 항공과 여행 창구만 만든 것이 아니라, 그 공간과 운영 기반을 움직일 사람을 길러야 했다. 경기대학교 관광경영학과를 비롯한 관광경영학과와 호텔·관광 관련 교육기관의 확산은 이 흐름을 대학 교육의 영역으로 넓혔다. 현장을 움직이던 관광 인력이 제도권 교육과 만나면서 한국 관광산업은 단순한 경험 산업을 넘어 전문 인력 기반을 갖춘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관광은 결국 사람의 산업이다. 안내사가 현장에서 국가 이미지를 만들고, 호텔 직원이 외국인을 맞고, 발권 담당자가 이동을 처리하고, 여행사 직원이 일정을 구성한다. 제도와 시설은 사람이 움직일 때 비로소 산업이 된다.
이 시기의 한국 관광은 완성된 산업이 아니었다. 호텔도 부족했고, 인력도 부족했고, 관광시설도 충분하지 않았다. 일본 인바운드의 어두운 면도 있었고, 안보 관광과 국가 이미지 관광이 뒤섞인 특수성도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을 거치며 한국 관광산업의 기틀은 다져졌다.
교통부와 국제관광공사, 대한항공과 대한여행사 Korea Travel Bureau, GTR과 호텔·택시·관광종사원 자격제도, 세방과 서울항공 같은 민간 여행서비스, 국내 관광과 일본 인바운드, DMZ 관광과 한국전 참전용사 재방한 행사는 따로 떨어진 이름들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한국 관광이 산업으로 서기 위해 필요했던 수용 기반이었다. 관이 방향을 잡고, 공사가 실행을 맡고, 항공사가 이동 기반을 놓고, 여행 창구가 발권과 관광 업무를 처리하고, 민간 여행서비스가 붙고, 호텔과 택시와 안내 인력이 현장을 움직였다. 여기에 관광경영학과와 전문 교육기관이 인력 기반을 넓히면서 한국 관광은 현장 경험과 교육 체계를 함께 갖춘 산업으로 자라났다.
이렇게 한국 관광은 관주도 수용체계로 태어났고, 그 안에서 초기 산업의 기틀을 마련했다. 한국 관광은 관광지를 먼저 포장한 산업이 아니라, 관광객을 받을 준비를 먼저 한 산업이었다.
수용체계가 놓이자 다음 과제는 관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었다. 경주 보문관광단지, 설악동 관광단지, 제주 중문관광단지로 이어지는 개발의 시대가 열렸고, 관광자원은 길과 숙박, 안내시설과 편의시설을 갖춘 산업 공간으로 바뀌어 갔다.
한국관광 5.0의 두 번째 이야기는 관광자원과 관광시설 개발의 시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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