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레저신문 ㅣ 김정호 기자
하동 몰랑뜰정원은 처음부터 꽃과 나무가 들어선 정원이 아니었다. 지리산 깊은 산자락에 층층이 남아 있던 논과 밭을 일구고, 돌을 골라내고, 식물이 뿌리내릴 흙을 만들면서 시작된 생활의 공간이다.
평평한 땅을 밀어 화단을 나눈 수목원과 달리 몰랑뜰정원에는 산비탈의 높낮이가 그대로 남아 있다. 아래쪽 꽃밭에서 한 단 올라서면 관목과 침엽수가 나타나고, 다시 길을 돌면 지리산 능선이 정원의 배경으로 들어온다.
몰랑뜰은 높은 언덕배기의 논이나 밭을 뜻하는 지역말로 전해진다. 정원주 조미정 씨는 2016년부터 땅을 일구며 화이트가든과 만병초 그늘정원, 수국정원, 장미원, 여름정원, 침엽수원 등을 차례로 조성했다.
현재 국가 정원정보망에 등록된 몰랑뜰정원의 면적은 4,737㎡다. 2023년 4월 28일 경상남도 제32호 민간정원으로 등록됐으며 주소는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깊은골길 2-1이다.

다랭이논의 단차가 산책길이 됐다
몰랑뜰정원에 들어서면 전체 정원이 한눈에 펼쳐지지 않는다. 산비탈을 따라 좁은 길이 굽어지고 수목과 생울타리 사이를 통과해야 다음 꽃밭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동선은 과거 다랭이논과 밭의 경계를 활용한 결과다. 경사진 땅을 평탄하게 만들지 않고 층마다 식물의 높이와 성격이 다른 정원을 배치했다. 농경지의 단차가 화단의 경계이자 전망대가 됐다.
아래쪽에서는 키가 낮은 다년초와 초화류가 시야를 채운다. 한 단 위로 올라가면 수국과 장미 같은 관목이 나타나고 그 뒤로 원추형 침엽수와 지리산 숲이 이어진다.
산비탈 정원은 평지보다 관리가 어렵다. 비가 많이 내리면 흙이 쓸려 내려갈 수 있고 같은 정원 안에서도 햇볕과 그늘의 조건이 다르다. 경사와 배수, 바람을 고려해 식물의 자리를 계속 조정해야 한다.
2016년에 시작한 조성 작업은 건물 공사처럼 어느 날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다. 나무가 자라 그늘이 넓어지면 아래쪽 식물을 바꾸고 비어 있는 공간에는 새로운 다년초를 심는 과정이 해마다 이어진다.

영국식 화이트가든과 지리산 풍경이 겹친다
몰랑뜰정원의 전체 구성에는 영국식 정원의 영향이 짙다. 흰색 꽃과 은빛 잎을 중심으로 만든 화이트가든을 비롯해 수국길, 장미정원, 플라워가든, 침엽수원, 만병초원과 야생화 그늘정원이 구역별로 이어진다.
그러나 서양식 정원을 그대로 복제한 공간은 아니다. 반듯하게 다듬은 관목 뒤로 지리산 숲이 이어지고 화려한 다년초 사이에는 논밭의 경사와 돌이 남아 있다.

화이트가든은 색을 절제해 꽃의 모양과 잎의 질감을 보게 한다. 밝은 꽃과 은회색 잎이 햇빛을 받아 정원의 앞쪽을 밝히고 짙은 녹색 관목과 침엽수가 뒤에서 공간의 윤곽을 잡는다.
수국길과 장미원은 개화 시기에 따라 중심 장면이 달라진다. 초여름에는 장미와 여러해살이풀이 색을 채우고 장마 전후에는 수국이 정원의 밀도를 높인다. 한여름에는 배롱나무와 짙은 녹음이 시선을 끈다.
침엽수원은 꽃이 적은 시기에도 정원의 골격을 유지한다. 원추형과 둥근 형태로 자란 침엽수 사이에 관목과 다년초가 들어서 개방 기간 동안 공간의 구조를 유지한다.

100여 종 식물보다 중요한 식재의 층
2020년 산림청 아름다운 정원 콘테스트 심사에서는 100여 종이 넘는 정원식물을 생태적·공간적 특성에 맞게 배치하고 사계절 볼거리를 만든 점이 평가됐다.
몰랑뜰정원의 인상은 식물의 숫자보다 배치에서 나온다. 산책로 가까이에는 낮은 지피식물과 다년초가 놓이고 그 뒤로 수국과 장미 같은 관목이 이어진다. 가장 뒤쪽에는 침엽수와 교목이 서서 정원과 지리산 숲의 경계를 연결한다.
봄에는 새잎과 구근류, 이른 꽃이 돌과 나무 사이의 빈 공간을 채운다. 초여름에는 장미와 수국, 여러해살이풀이 정원의 중심이 되고 한여름에는 짙은 녹음과 배롱나무꽃이 색을 바꾼다.
가을에는 꽃의 수가 줄어드는 대신 억새와 단풍, 열매와 마른 꽃대가 나타난다. 식물의 한창때뿐 아니라 시들고 색이 바뀌는 과정도 정원의 일부로 남는다.
특정 꽃의 만개만 기대하고 방문하면 날씨에 따라 아쉬울 수 있다. 몰랑뜰정원은 한 종류의 꽃을 넓게 심은 축제장이 아니라 여러 식물이 다른 높이와 속도로 계절을 통과하는 정원이다.

산림청 은상에서 경남 민간정원 등록까지
몰랑뜰정원은 2020년 산림청이 주관한 아름다운 정원 콘테스트에서 나의 정원 부문 은상을 받았다. 당시 공식 수상 결과에서 금상은 남양주 숲새울정원, 은상은 하동 몰랑뜰의 브리티시정원이었다.
일부 온라인 정보에는 몰랑뜰정원의 수상 등급이 금상으로 적혀 있지만 산림청 수상 결과를 기준으로 하면 은상이 정확하다.
몰랑뜰정원은 2023년 4월 28일 경상남도 제32호 민간정원으로 등록됐다. 개인이 가꾸던 정원이 일정한 면적과 관리 체계, 공개 조건을 갖춘 정원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민간정원 등록 뒤에도 이곳은 대규모 관광시설처럼 운영되지 않는다. 정원주가 직접 식물을 관리하는 개인정원의 성격이 강하고 관람객 수를 조절하기 위해 예약제로 문을 연다.
좁은 산책로에 인원이 몰리면 식재 공간이 훼손되기 쉽다. 예약제는 정원의 식물과 고요한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한 운영 방식이다.

산비탈 산책로는 운동화가 필요하다
몰랑뜰정원은 다랭이논을 활용한 만큼 모든 관람로가 평탄하지 않다. 좁은 길과 계단, 경사가 섞여 있어 밑창이 미끄럽지 않은 운동화를 신는 편이 좋다.
비가 내린 뒤에는 흙길과 돌 주변이 미끄러워질 수 있다. 꽃을 가까이 촬영하려고 화단 안으로 들어가거나 식물에 기대는 행동도 피해야 한다.
유모차와 휠체어로 전체 구간을 관람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어르신과 동행한다면 경사가 적은 구간을 중심으로 보고 의자나 쉼터에서 충분히 쉬면서 이동해야 한다.
지리산 골짜기 안쪽으로 들어가는 진입로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초행 운전자는 해가 지기 전 밝은 시간대에 이동하고 좁은 구간에서는 속도를 낮춰야 한다.
사진만 빠르게 찍으면 관람시간이 짧아질 수 있지만 주제원별 식재와 산자락 풍경을 차분히 보려면 1시간 이상을 잡는 편이 알맞다.
4월부터 11월까지 문자 예약제로 개방
국가 정원정보망의 현재 안내에 따르면 몰랑뜰정원은 4월부터 11월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사이 운영된다. 성인 입장료는 1만원이며 청소년 이하는 무료로 기재돼 있다.
관람은 정원주에게 문자로 신청하는 사전예약제다. 예약 문의 번호는 010-2155-8183이며 문자에는 방문 희망일과 시간, 인원, 대표자 이름을 함께 적는 편이 좋다.
온라인에는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운영한다거나 오후 6시까지 개방한다는 정보도 섞여 있다. 개인정원은 날씨와 식물 관리 일정에 따라 운영 조건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예약 답변을 받은 뒤 출발해야 한다.
몰랑뜰정원은 언제든 자유롭게 드나드는 공원이 아니다. 대신 제한된 인원이 조용히 걸으며 정원주의 시간이 축적된 공간을 가까이 볼 수 있다.
하동호와 삼성궁을 묶는 청암면 여행
몰랑뜰정원이 자리한 하동군 청암면은 화개장터와 최참판댁이 있는 섬진강권과 다른 산악 여행권이다. 정원 관람 뒤에는 하동호와 청학동, 삼성궁을 연결하기 좋다.
하동호는 산과 물이 맞닿은 드라이브 구간이다. 정원의 작은 꽃과 식물을 본 뒤 넓은 수면과 산 능선을 바라보며 쉬기 좋다.
삼성궁은 숲과 돌탑 사이를 걷는 구간이 길고 경사가 있다. 몰랑뜰정원과 같은 날 방문한다면 오전에 예약한 정원을 먼저 보고 점심 이후 삼성궁으로 이동하는 순서가 무난하다.
두 장소 모두 걷는 구간이 적지 않다. 아이나 어르신과 함께한다면 정원과 삼성궁 가운데 한 곳을 중심으로 충분히 둘러보고 하동호 드라이브를 더하는 편이 부담이 적다.
몰랑뜰정원은 꽃이 많은 계절만 소비하는 관광지가 아니다. 논과 밭이었던 산비탈을 일구고 나무가 자라는 시간을 기다리며 만들어온 생활의 정원이다. 이곳에서 가장 눈여겨볼 것은 꽃의 숫자가 아니라 땅의 기억을 지우지 않은 방식이다.
여행정보
- 장소: 하동 몰랑뜰정원
- 주소: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깊은골길 2-1
- 등록: 경상남도 제32호 민간정원
- 등록일: 2023년 4월 28일
- 공식 등록면적: 4,737㎡
- 개방 시기: 4월∼11월
- 공식 안내시간: 오전 9시∼오후 5시
- 입장료: 성인 1만원, 청소년 이하 무료
- 운영 방식: 사전 문자 예약제
- 예약 문의: 010-2155-8183
- 주요 정원: 화이트가든, 야생화 그늘정원, 만병초원, 수국길, 장미정원, 여름정원, 침엽수원
- 주의사항: 경사진 산책로, 비 온 뒤 미끄럼, 유모차와 휠체어 일부 구간 제약 가능
- 연계 여행지: 하동호, 청학동, 삼성궁
운영일과 시간, 입장료는 정원 관리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방문 전 반드시 문자로 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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