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이 걷히자 비로소 강바람 소리와 꽃잎 흔들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흘간 괴산읍을 들썩이게 했던 고추축제가 막을 내렸다. 시끌벅적하던 천막 부스가 철거되고 차량과 인파의 물결이 빠져나간 동진천변에는 1만9548㎡(약 5900평)의 주황빛 군락만이 오롯이 남았다. 축제는 끝났지만, 괴산의 진짜 가을은 소란함이 가라앉은 이 강변 둔치에서 이제 막 시작된다.
꽃밭은 괴산군 농업기술센터 뒤편 동진천변을 따라 길게 누워 있다. 네모반듯하게 구획을 짓거나 둥글게 가둬놓은 관상용 화단이 아니다. 읍내를 관통하는 하천 물길의 자연스러운 곡선을 따라 둔치 전체로 번져나간 형태다. 늦여름 내내 짙었던 강변의 억센 풀빛을 밀어내고 주황색과 샛노란 황화코스모스가 둔치 흙길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다.
우리가 흔히 기억하는 가을 코스모스가 연분홍과 흰색의 가냘픈 수채화라면, 황화코스모스는 색채의 밀도부터 다르다. 레몬빛에 가까운 노랑부터 붉은 기운이 감도는 짙은 감빛 주황까지 층층이 겹쳐 있어 단색의 군락지보다 시각적인 깊이감이 훨씬 강하다. 꽃대가 유연하고 가늘어 강바람이 한 번 훑고 지나갈 때마다 5900평 꽃밭 전체가 일제히 한쪽으로 누웠다 일어서며 거대한 주황빛 파도를 만들어낸다.
축제 기간 동안 겪어야 했던 극심한 주차난과 흙먼지 날리던 통행로는 모두 정리됐다. 축제 직후 지금 동진천변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축제의 흥분과 소음 대신, 초가을 강변이 건네는 특유의 고요함과 가장 선명한 계절의 색을 프레임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발밑의 감각과 둔치 350m의 실측
꽃밭을 걸을 때 바닥 상태를 먼저 볼 필요가 있다.
농업기술센터 뒤편에서 하천 쪽으로 내려서는 구간은 완만한 흙길이다. 둔치 산책로는 야자매트나 보도블록이 깔린 인공 보도가 아니라, 흙을 다져 잡초를 걷어낸 자연형 통행로다. 전날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일반 운동화로 걷기에 아무런 지장이 없지만, 이른 아침 이슬이 맺혔을 때는 꽃잎과 풀잎이 바지 밑단을 적실 수 있다. 신발은 굽이 낮고 흙먼지가 묻어도 편한 트래킹화나 운동화가 편하다.
꽃밭의 물리적 길이는 약 350m 안팎이다. 성인 걸음으로 센터 뒤 진입로에서 하류 쪽 끝자락까지 쉬지 않고 걸으면 편도 7~8분이면 닿는다. 왕복 800m가 채 되지 않는 평지다.
다만 이 구간을 단순히 통과하는 사람은 없다. 황화코스모스는 일반 분홍 코스모스보다 키가 다소 낮고 꽃잎이 촘촘해, 시선을 허리 높이로 낮출수록 둔치 전체가 노랑과 주황빛으로 꽉 찬다. 둑방길 벤치에 걸터앉아 강바람을 맞거나, 동진천 수면에 꽃 그림자가 비치는 가장자리를 찾아 셔터를 누르다 보면 체류 시간은 자연스럽게 40분에서 50분 안팎으로 채워진다.
빛의 각도도 사진의 질을 가른다. 정오 무렵의 강한 역광이나 탑라이트 아래서는 황화코스모스의 주황빛이 번져 허얗게 날아가기 쉽다. 꽃 본연의 짙은 채도를 살리려면 오전 9~10시 사이의 낮은 아침 햇살을 등지거나, 오후 5시 무렵 서쪽으로 해가 기울 때 둑방길에서 비스듬히 떨어지는 사광을 이용하는 편이 확실하다. 이 시간대에 카메라를 낮게 떨어뜨려 로우 앵글로 잡으면 전경에는 주황빛 꽃의 군락이 밀도 있게 들어차고, 후경에는 은빛으로 반짝이는 동진천 수면과 하늘이 상단 3분의 1에 걸치며 깊이감이 살아난다.

동진천을 빠져나와 산막이옛길로 붙는 길
꽃밭 산책을 마치고 차를 뺄 때는 괴산읍내 방향으로 머리를 돌린다.
농업기술센터에서 괴산전통시장까지는 차로 5분 거리다. 축제가 끝난 직후라 읍내 중심가의 교통 정체는 완전히 풀렸다. 괴산 시외버스터미널 뒤편이나 시장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괴산의 오랜 명물인 올갱이(다슬기) 해장국집들이 모여 있다. 된장을 엷게 풀고 아욱과 부추를 넉넉히 넣어 끓여낸 올갱이국 한 그릇으로 시장기를 달래기 적당하다.

점심을 마친 뒤에는 19번 국도를 타고 칠성면 방향으로 달린다. 괴산댐과 괴산호를 끼고 도는 산막이옛길 주차장까지는 차로 딱 15분 거리다.
오전에 걸었던 동진천변이 하늘이 훤히 열린 평평한 강변 꽃길이었다면, 오후의 산막이옛길은 산그늘과 호수 물길을 따라 좁게 이어지는 소나무 숲길이다. 전혀 다른 결을 가진 괴산의 두 지형을 잇는 이 동선은, 축제의 소란이 완전히 가라앉은 9월 평일이나 주말 하루를 차분하게 채우기에 더없이 명확한 궤적을 그린다.

괴산 동진천 황화코스모스 꽃밭
충북 괴산군 괴산읍 동진천변 둔치에 축구장 3배 크기(1만9548㎡)로 조성된 대규모 계절 꽃밭. 8월 말 만개해 9월 중순까지 황금빛·주황빛 물결을 이루며, 완만한 평지 흙길로 조성돼 남녀노소 부담 없이 걷기 좋은 가을 산책 명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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