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받치는 기둥’ 문경 천주산…운달계곡·김룡사까지

산이 많기로 소문난 문경에서도 천주산은 유난한 생김새로 따로 이름난 산이다. ‘하늘을 받치는 기둥’ 천주산을 올라 천주사와 마애관음불, 836m 정상, 냉골 운달계곡, 김룡사까지 이어지는 여름 하루를 따라간다. 정상까지 0.8km, 짧지만 줄곧 상당히 가파른 산길이다.

푸른 하늘과 문경 산줄기를 배경으로 선 천주산 해발 836m 정상석
해발 836m 문경 천주산 정상.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라는 이름처럼 정상석 뒤로 문경의 산줄기가 길게 펼쳐진다. 참고사진: 여행레저신문 AI편집실

산이 많기로 소문난 문경에서도 천주산은 유난한 생김새로 따로 이름난 산이다. 문경 동로면에 자리한 천주산은 주변 산줄기 사이로 바위 봉우리가 기둥처럼 우뚝 솟아 있다.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라는 뜻의 천주산(天柱山)이라는 이름도 이 산세에서 나왔다.

멀리서 바라보면 또 다른 모습이 보인다. 커다란 붕어 한 마리가 머리를 들고 하늘을 향한 모습과 닮아 ‘붕어산’이라고도 부른다. 산 아래 마을에도 천주라는 이름이 남아 있고, 자연석에는 ‘일주천봉(一柱天峯)’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한 봉우리가 하늘을 향해 솟았다는 뜻이다.

산행은 천주산 중턱의 천주사에서 시작한다. 절 앞 등산안내판에는 정상까지 0.8km라고 적혀 있지만, 높이 솟은 봉우리를 올려다보면 결코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천주사에서 마애관음불을 지나 해발 836m 정상까지 곧바로 올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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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산이라는 별칭이 있는 문경 천주산의 봉우리와 산사를 묘사한 삽화
유난한 봉우리 모양으로 ‘붕어산’이라고도 불리는 문경 천주산을 묘사한 삽화. 하늘을 향해 솟은 산세와 산중턱 사찰의 모습을 한 장면에 담았다. / 그림=이혁재 기자

하늘을 받치는 기둥, 붕어를 닮은 산

천주산이라는 이름과 붕어산이라는 별칭에는 모두 산을 멀리서 바라본 사람들의 시선이 담겨 있다. 높은 산이 많은 문경에서도 이 봉우리가 따로 이름을 얻은 데는 그만한 생김새가 있었다.

문경 천주사 바위에 새겨진 마애관음불입상을 표현한 가로형 참고 이미지
천주산 중턱 천주사 경내의 마애관음불입상. 천주사를 둘러본 뒤 이곳을 지나면 해발 836m 정상으로 향하는 산길이 이어진다.

의병을 숨겨줬다고 불탄 천주사

천주사는 신라 진평왕 때 창건됐다고 전하는 고찰이다. 진평왕이 재위한 때가 579년부터 632년까지이니 전승대로라면 1400년 가까운 내력을 지닌 절이다.

긴 세월만큼 굴곡도 컸다. 을사늑약 이듬해인 1906년, 항일 의병이 천주사에 몸을 숨겼다. 일본군은 의병을 숨겨줬다는 이유로 산속 사찰까지 올라와 불을 질렀고, 당시 주지 창교 스님도 희생됐다고 전한다.

절은 오랫동안 옛 모습을 잃었다. 1985년 중홍 스님이 이곳에 들어와 다시 불사를 시작했고, 산비탈에 터를 다져 전각을 하나씩 세웠다. 지금의 천주사는 그렇게 다시 일으킨 절이다.

가파른 산중턱을 따라 대웅전과 범종각, 삼성각 등이 자리한다. 위쪽 바위에는 마애관음불입상이 새겨져 있다.

옛 천주사 터 주변 길섶에는 ‘노사앙천(老獅仰天)’이라는 네 글자를 새긴 바위도 있다. ‘늙은 사자가 하늘을 우러러본다’는 뜻이다. 옛날 천주산 일대에 호랑이가 자주 나타나 사람과 가축을 해치자 호환을 막으려고 이 글을 새겼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천주사 뒤 천주약수에도 설화가 있다. 몸과 마음이 부정한 사람이 가까이 오면 잘 나오던 약수도 끊겼다고 한다. 산은 하늘을 받치고, 붕어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옛 절터에는 하늘을 우러러보는 늙은 사자까지 남아 있다.

천주사에서 천주산 정상까지 0.8km가 표시된 현장 등산안내도
천주사 앞 천주산 등산안내도. 천주사에서 해발 836m 정상까지 거리는 0.8km로 표시돼 있으며 짧은 구간에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천주사에서 836m 정상까지 0.8km

마애관음불을 지나면 산길이다. 처음부터 경사가 세다. 흙길을 지나 돌탑을 만나고, 곧 바위 구간과 계단이 이어진다. 예전 산행 기록에는 밧줄을 잡고 암반을 오르내리는 모습도 남아 있지만 지금은 가파른 구간에 계단과 데크가 설치돼 있다.

거리만 짧을 뿐 계속 오르막이다. 한여름에는 초반부터 땀이 흐른다. 올라가다 뒤를 돌아보면 경천호와 동로면 일대가 아래로 내려가고, 맞은편 산줄기는 갈수록 넓게 보인다.

마지막 암릉과 계단을 지나면 정상이다. 천주산 836m.

정상에는 기우제 이야기가 남았다

정상에서는 경천호와 문경 일대 산줄기가 넓게 펼쳐진다. 운달산과 공덕산을 비롯해 대미산, 문수봉, 황장산으로 이어지는 산들도 바라볼 수 있다.

가뭄이 들면 마을 사람들은 이 정상까지 올라와 기우제도 지냈다고 한다. 하늘을 받친다는 이름을 가진 산의 가장 높은 곳에서 비를 내려달라고 빌었던 것이다.

하산은 올라왔던 길을 되짚는다. 거리가 짧은 대신 경사가 커 내려갈 때는 발밑을 더 조심해야 한다. 비가 내린 뒤라면 바위와 계단이 특히 미끄럽다.

울창한 숲과 이끼 낀 바위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는 문경 운달계곡
문경 8경 가운데 하나인 운달계곡. 울창한 숲과 이끼 낀 바위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고, 한여름에도 물이 차 예부터 ‘냉골’이라 불렸다.

한여름에도 물이 찬 ‘냉골’ 운달계곡

천주산을 내려와 늦은 점심을 먹은 뒤 산북면 운달계곡으로 향한다. 운달산 깊은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이 큰 바위 사이를 지나고 숲이 깊어 한낮에도 그늘이 많다.

운달계곡은 문경 8경 가운데 하나다. 한여름에도 물이 유난히 차가워 오래전부터 ‘냉골’이라고 불렸다. 계곡가에서는 사람들이 발을 담그며 산행 뒤 더위를 식힌다.

전나무 숲 따라 김룡사로

숲길 끝에서 만나는 김룡사도 신라 진평왕 때 창건됐다고 전하는 오래된 절이다. 운달조사가 세웠으며 처음 이름은 운봉사였다고 한다.

지금의 이름에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남아 있다. 조선시대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아들을 얻어 이름을 용(龍)이라 지었고, 훗날 김용이 큰 부자가 된 뒤 절에 많은 재산을 시주하면서 김룡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

경내에는 대웅전을 비롯한 여러 전각과 불교 문화유산이 남아 있다. 계곡과 숲길을 지나 오래된 절로 들어가는 과정까지 김룡사 여행의 일부다.

여름에는 하루의 순서를 조금만 조절하면 천주산과 운달계곡, 김룡사를 편하게 이어갈 수 있다. 햇볕이 강해지기 전에 천주산을 오르고, 가장 더운 시간에는 운달계곡에서 쉬었다가 늦은 오후 김룡사를 둘러보는 식이다.

운달계곡과 전나무 숲길 안쪽에 자리한 문경 김룡사 대웅전

운달계곡과 전나무 숲길을 따라 들어가 만나는 김룡사 대웅전. 운달산 자락 깊숙한 곳에 자리한 오래된 산사로 천주산 산행 뒤 함께 둘러보기 좋다.

여행정보

천주산 경북 문경시 동로면 일대
정상 해발 836m
천주사~정상 약 0.8km
주요 동선 천주사·마애관음불입상~천주산 정상~하산~운달계곡~김룡사
산행 주의 짧지만 경사가 세고 바위·계단 구간이 많다. 여름에는 물을 충분히 준비하고 비가 온 뒤 젖은 암반과 계단을 조심해야 한다.
운달계곡 문경 8경 가운데 하나로 한여름에도 물이 차 ‘냉골’이라 불린다.
운달계곡 이용 김룡사 사유지로 야영과 취사가 금지돼 있다.

천주산 정상에서 바라본 문경 일대 산줄기

천주사에서 천주산 정상까지 0.8km. 그 길만 걷고 돌아서기에는 산 아래와 그 너머에 남은 이야기가 많다. 의병의 흔적과 오래된 설화를 간직한 천주사, 해발 836m 정상, 한여름에도 물이 찬 운달계곡, 전나무 숲과 김룡사까지 하루 안에 이어진다.

산이 많기로 소문난 문경에서 천주산이 따로 이름난 이유를 찾아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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