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를 한 삽 퍼담았다…별이 쏟아져 내리는 안반데기의 깊은 밤

밤이 길어지는 9월, 해발 1100m 고랭지 밭에서 만난 별의 시간…흙을 퍼 나르던 굴착기의 버킷에 은하수가 걸리고 사진가는 새벽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강릉에서 안반데기로 올라가는 길은 점점 좁아지고 어두워진다. 산 아래에서 따라오던 불빛도 어느 순간 하나둘 사라진다. 낮 동안 사람과 농기계로 분주했을 고랭지 밭은 이미 하루 일을 끝낸 뒤였다. 트랙터가 멈춰 있고 굴착기도 팔을 늘어뜨린 채 쉬고 있었다. 바람이 밭을 지나가는 소리만 간간이 들렸다.

서영오 작가는 그때부터 기다렸다.

해가 진 뒤에도 산과 하늘에는 한동안 빛이 남는다. 그 빛이 산 너머로 완전히 물러가고 눈이 어둠에 익숙해질 만큼 시간이 흐르면 별 하나가 보이고, 그 옆에 또 하나가 나타난다. 그렇게 하늘의 빈자리가 조금씩 채워진다.

한참을 기다린 뒤 머리 위에 흩어져 있던 별 사이로 옅은 빛의 띠가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구름처럼 희미했다. 눈을 오래 두고 바라보자 그 빛은 하늘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길게 이어졌다. 은하수였다.

그날 밤 굴착기의 긴 팔은 은하수가 흐르는 쪽을 향하고 있었다. 땅을 파던 버킷이 검은 하늘 아래 멈춰 있었고 그 위로 별이 가득했다. 카메라의 위치를 조금 옮기자 은하수가 버킷 안으로 들어왔다.

사진가라면 그 순간 웃었을 것이다. 낮에는 흙을 퍼 나르던 포크레인이 밤이 되자 은하수를 퍼담고 있었다.

은하수 그득 담아 그대에게 드리리.

사진 한 장 때문에 그런 문장 하나쯤 떠올라도 좋은 밤이었다.

안반데기에서는 땅도 하늘도 넓다

안반데기는 해발 약 1100m에 자리한 강릉 왕산면의 고원마을이다. 옥녀봉과 고루포기산 사이 산비탈을 사람들이 개간해 밭을 만들었고, 지금은 약 200만㎡에 이르는 고랭지 채소밭이 능선을 따라 펼쳐진다. 1960년대부터 화전민들이 돌을 골라내고 땅을 일구며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다.

관광객은 넓은 하늘과 산비탈을 보고 사진을 찍지만 주민들의 하루는 날씨와 밭에서 시작된다. 사진 속 굴착기와 트랙터에도 그 생활이 묻어 있다. 하루 일을 마친 농기계가 밤이 되자 별 아래 조용히 멈춰 섰다.

그래서 서영오 작가의 사진에서는 농기계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고랭지 밭에서 하루를 보낸 굴착기 위로 은하수가 떠오르면서 안반데기의 낮과 밤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하늘만 바라보던 시선이 다시 밭으로 내려오는 순간이다.

밤을 오래 보고 있으면 별이 움직인다

또 한 장의 사진에서는 하늘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진다. 별들이 점으로 머물지 않고 길고 둥근 선을 그리며 밤하늘을 가로지른다. 그 아래에는 하루 종일 밭을 오갔을 농기계 한 대가 조용히 서 있다.

사람의 눈으로는 거의 움직임을 느끼기 어려운 별도 카메라를 한 방향에 두고 긴 시간 촬영하면 조금씩 자리를 옮긴 흔적을 남긴다. 몇 시간의 밤이 수많은 빛의 선으로 한 화면에 쌓인다.

그 시간 동안 사진가는 카메라 곁을 지킨다. 구름이 어디에서 오는지 살피고, 렌즈에 습기가 차는지 확인하고, 바람이 삼각대를 흔들면 다시 손을 본다. 맑던 하늘에 구름 한 장이 들어오면 기다림도 길어진다. 산의 기온은 새벽으로 갈수록 내려가고 바람은 더 차가워진다.

사진에는 그런 시간이 직접 찍히지 않는다. 우리가 보는 것은 밤새 쌓인 별빛과 멈춰 선 농기계다. 그래서 풍경사진 한 장은 때때로 사진가가 보낸 긴 시간을 아주 짧게 보여준다.

9월, 별을 기다리는 밤이 길어진다

9월로 접어들면 한여름보다 해가 일찍 지고 밤은 조금씩 길어진다. 안반데기처럼 해발이 높은 곳에서는 밤공기도 빠르게 차가워진다. 구름이 적고 달빛이 약한 밤을 고르면 별을 바라볼 시간도 넉넉해진다.

안반데기는 오래전부터 별을 보러 찾는 여행객과 사진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주변 도시의 불빛에서 한참 떨어진 고지대에 올라 어둠에 눈을 익히고 있으면 처음에는 몇 개뿐이던 별이 점점 늘어난다. 은하수의 모습은 달의 밝기와 구름, 대기의 상태에 따라 크게 달라지므로 그날의 하늘을 있는 그대로 만나는 편이 좋다.

별을 보러 가는 밤에는 기다리는 시간까지 여행이 된다. 휴대전화 화면을 끄고 고개를 들어 한참 하늘을 보다 보면 별의 수를 세는 일도 어느 순간 그만두게 된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는 동안 산 아래의 소리도 멀어지고, 한밤의 고원이 가진 고요함이 조금씩 가까워진다.

사진가는 은하수가 흘러가는 시간을 기다렸다

서영오 작가의 사진을 한 장씩 넘겨보면 그날 밤의 시간이 따라온다. 고랭지 밭 위에 은하수가 흐르고, 멀리 풍력발전기가 어둠 속에 서 있다. 시간이 더 흐르면 굴착기 버킷 위로 은하수가 올라오고, 또 다른 프레임에서는 별들이 긴 궤적을 그리기 시작한다.

사진 몇 장 사이에 밤 하나가 들어 있다.

어둠이 깊어지고, 은하수가 올라오고, 별이 움직이고, 다시 새벽이 가까워진다. 서영오 작가는 그 시간을 현장에서 보냈다. 좋은 장면이 오면 셔터를 눌렀고, 하늘이 달라지면 다시 기다렸다.

별사진을 오래 찍는 사람에게 기다림은 촬영의 일부다. 비싼 장비가 별을 대신 기다려주지는 않는다. 결국 마지막까지 필요한 것은 그 자리에 머무는 시간이다.

새벽이 오면 포크레인은 다시 포크레인이 된다

밤새 별이 쏟아졌던 산에도 아침은 온다. 동쪽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고 검게만 보이던 산의 윤곽이 돌아온다. 별 하나가 흐려지고 또 하나가 사라진다. 밤새 하늘을 가르던 은하수도 새벽빛 속으로 천천히 숨는다.

굴착기의 모습도 달라진다. 몇 시간 전까지 은하수를 퍼담던 기계는 다시 흙을 파는 포크레인으로 돌아간다. 트랙터에는 시동이 걸리고 밭에는 사람들이 들어온다. 안반데기의 하루가 다시 시작된다.

서영오 작가는 밤을 꼬박 새워 그 짧은 장면들을 가져왔다. 우리는 사진 몇 장으로 그 밤을 건너간다. 이번에는 사진 한 장 앞에서 조금 천천히 머물러도 좋겠다. 버킷 안을 한번 보고, 그 위의 은하수를 보고, 다시 밭을 본다.

사람들은 낮 동안 그곳에서 땅을 일군다. 밤이 오면 하늘이 그 밭을 이어받는다. 그리고 아주 가끔, 굴착기의 팔 끝에 별이 걸리는 시간이 찾아온다.

그날 안반데기에서 서영오 작가는 새벽까지 기다렸다.

새벽이 오기 전, 포크레인은 은하수를 한 삽 가득 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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