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호 기자 ㅣ 여행레저신문
AI는 이제 산업의 주변에 머물지 않는다. 금융, 유통, 제조, 교육, 미디어, 의료, 고객 상담, 마케팅까지 AI는 여러 산업의 앞단으로 들어오고 있다. 사람이 정보를 찾던 방식, 기업이 고객을 응대하던 방식, 소비자가 선택지를 비교하던 방식이 바뀌고 있다. AI는 단순한 자동화 도구를 넘어 정보를 정리하고, 질문에 답하고, 선택지를 압축하고, 다음 행동을 제안하는 새로운 산업 인터페이스가 되고 있다.
여행산업도 이 흐름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오히려 여행은 AI가 깊이 들어올 수밖에 없는 산업에 가깝다. 여행은 언제나 정보의 산업이었다. 목적지를 고르고, 항공편을 찾고, 호텔을 비교하고, 현지 교통과 맛집, 입장권, 환율, 날씨, 보험, 취소 규정까지 확인해야 한다. 정보가 많고 선택지가 복잡한 산업일수록 AI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아진다.
과거 여행의 출발점은 검색이었다. 여행자는 네이버와 구글에 목적지를 입력하고, 블로그를 읽고, 카페와 커뮤니티의 후기를 확인하고, OTA에서 가격을 비교하고, 필요하면 여행사에 문의했다. 검색은 정보를 찾는 입구였고, 블로그와 커뮤니티는 경험을 확인하는 공간이었으며, 플랫폼과 여행사는 비교와 예약을 담당했다. 여행자는 흩어진 정보를 직접 찾아다녔고, 그 조각들을 스스로 모아 판단했다.
지금은 그 첫 동작이 바뀌고 있다. 여행자는 AI에게 묻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면 좋을지, 하루 일정을 어떻게 짜야 할지, 아이와 함께 갈 만한 곳은 어디인지, 주차가 되는지, 주변 맛집은 어디인지, 이동 동선은 어떤지 AI에게 먼저 물어본다. 아직 AI가 여행을 전부 예약해주는 단계는 아니지만, 여행의 초입에는 이미 들어왔다. 여행자가 후보를 만들고, 대략의 동선을 잡고, 선택지를 좁히는 자리에 AI가 들어온 것이다.

클룩의 22%가 보여준 여행 AI의 현재 위치
클룩의 최근 조사와 관련 보도는 이 변화를 보여주는 신호다. 한국 MZ 응답자 가운데 AI를 통해 여행지와 관광명소, 체험상품을 발견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47%로 제시됐다. 예약 단계에서 AI 생성 추천 정보를 신뢰한다는 응답도 22%로 나왔다. 여행은 음악 추천이나 간단한 쇼핑보다 훨씬 무거운 소비다. 돈과 시간, 일정과 동행자의 만족이 모두 걸린다. 그런 여행에서 이미 22%가 AI 추천 정보를 신뢰한다고 답했다는 것은 AI가 여행 판단 안으로 들어왔다는 뚜렷한 초기 신호다.
이 대목을 “AI를 못 믿는다”는 식으로만 읽으면 변화의 방향을 놓친다. 클룩의 조사는 AI 여행의 실패를 말하는 자료가 아니다. 오히려 AI가 여행 발견의 단계로 들어왔고, 예약 단계에서는 여전히 검증 장치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행자는 AI로 먼저 묻고, AI로 후보를 좁히고, AI로 일정의 윤곽을 잡는다. 그다음 후기와 커뮤니티를 보고, 플랫폼 리뷰를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가격과 예약 조건을 따져 결제한다.
지금의 구조는 AI의 배제가 아니라 역할의 분화다. AI는 발견과 비교의 앞단에 들어오고 있다. 커뮤니티와 리뷰는 검증의 자리에 남아 있다. 플랫폼은 결제와 책임의 공간을 맡고 있다. AI가 여행을 추천한다는 말과 AI가 여행을 책임진다는 말은 다르다. 지금 AI는 추천과 정리의 자리로 빠르게 들어오고 있지만, 아직 책임의 자리에 완전히 들어온 것은 아니다.

AI 여행이 예약으로 가기 위해 넘어야 할 것들
그 이유는 여행이라는 소비의 성격에 있다. 여행은 맛집 검색과 다르다. 식당 하나가 기대와 달라도 다른 곳을 찾을 수 있다. 주차장 정보가 틀려도 현장에서 다시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여행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항공권 시간이 틀리면 일정이 깨진다. 호텔 조건이 다르면 비용과 만족도가 달라진다. 취소 규정을 놓치면 환불이 어려워진다. 현지투어 시간이 맞지 않으면 하루 동선이 무너진다. 아이, 부모, 시니어, 장애인, 반려동물 동반 여부에 따라 가능한 일정도 달라진다. 날씨와 계절, 교통과 휴무, 혼잡도까지 붙는다. 여행은 정보 탐색인 동시에 위험 관리다.
그래서 여행자는 AI를 쓰지만, 결제 전에는 다시 확인한다. 이것은 보수적인 태도가 아니라 합리적인 행동이다. AI가 보여준 후보가 마음에 들어도, 실제 예약은 검증 가능한 정보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여행은 상상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경험하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AI가 여행의 중심으로 더 가까이 가려면 AI가 읽고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가 필요하다. AI는 없는 정보를 만들어 신뢰할 수 있는 여행상품으로 바꿀 수 없다. AI는 이미 존재하는 정보를 읽고, 비교하고, 요약하고, 조합한다. 여행사가 상품 조건을 정확히 정리하지 않으면 AI는 알 수 없다. 호텔이 객실 조건과 취소 규정, 조식 여부, 체크인 조건을 구조화하지 않으면 AI는 제대로 비교하기 어렵다. 관광청과 지자체가 운영시간, 휴무, 교통, 계절 정보를 최신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AI는 틀릴 수 있다. 현지투어 업체가 최소 출발 인원, 포함·불포함 사항, 취소 조건을 정확히 열지 않으면 AI는 책임 있는 추천을 할 수 없다.
데이터의 문제는 AI 여행의 벽이지만, 다음 단계로 가는 조건이기도 하다. 여행산업이 정확한 정보를 내놓을수록 AI는 더 깊이 들어온다. 정보가 흩어져 있으면 AI는 탐색에 머물고, 정보가 구조화되면 상담과 비교, 예약 보조로 이동한다. AI의 가능성은 기술만으로 열리지 않는다. 여행산업이 자신을 얼마나 정확하게 설명하고 정리하느냐에 따라 속도가 달라진다.
세계 흐름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Adobe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 여행 사이트로 들어오는 AI 기반 트래픽은 2026년 5월 전년 대비 194% 증가했고, 2024년 10월 이후로는 2,215% 증가했다. AI는 이제 대화창 안에만 머무는 기술이 아니라 실제 여행 사이트로 사람을 보내는 통로가 되고 있다. 여행자는 AI에게 묻고, AI의 답변을 통해 여행 사이트와 플랫폼으로 이동한다. 검색이 하던 역할의 일부가 AI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최근 트립테일러(TripTailor) 연구는 AI 여행 일정이 아직 어디에서 막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 연구는 50만 개가 넘는 실제 여행지 정보와 약 4,000개의 실제 여행 일정을 바탕으로, 대형언어모델이 개인 맞춤 여행 일정을 얼마나 잘 만들 수 있는지 평가했다. 결과는 아직 조심스러웠다. 최신 AI가 만든 일정 가운데 사람 수준에 도달한 비율은 10% 미만이었다.
한계는 명확했다. AI는 유명 관광지를 찾고 일정의 뼈대를 만드는 데는 빠르게 반응했지만, 실제 여행자가 움직일 수 있는 동선인지, 하루 안에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는지, 식사와 휴식이 자연스럽게 들어가는지, 가족여행·시니어 동반·예산·취향 같은 개인 조건에 맞는지를 안정적으로 맞추는 데는 아직 약했다. 여행 일정은 장소를 많이 아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시간, 거리, 체력, 취향, 현장 변수까지 함께 맞아야 한다.
이 연구가 보여주는 것은 AI 여행의 부정이 아니다. 오히려 AI가 여행지 탐색과 일정 초안 작성에서 이미 쓸 수 있는 단계로 들어왔지만, 그 초안을 실제 여행으로 바꾸려면 검증과 조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전문 여행인의 역할이 살아난다. AI는 빠르게 찾고 정리하지만, 그 일정이 실제로 가능한지, 고객에게 맞는지, 현장에서 무리가 없는지는 사람이 판단해야 한다.

다음 승부는 사람과 AI의 협업이다
일반 AI와 여행사 AI도 구분해서 봐야 한다. 네이버 AI나 구글 AI, 대화형 AI가 웹에 흩어진 정보를 보고 “이 상품을 예약하라”고 책임 있게 말하는 것과, 여행사가 자기 상품과 재고, 상담 시스템을 연결해 AI 상담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여행사 AI는 이미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고객이 국내여행을 원하는지 해외여행을 원하는지 묻고, 출발 시기와 예산을 확인하고, 가족·커플·단체·시니어 여행인지 분류하고, 관심 지역과 여행 목적을 정리하고, 기본 상품 후보를 보여주고, 담당 상담원이나 부서로 연결할 수 있다. 과거 콜센터의 1차 응대와 라우팅 기능은 AI가 빠르게 맡을 수 있다.
예약에 가까워질수록 필요한 것은 더 정교해진다. 항공 좌석, 호텔 재고, 현지투어 가능 여부, 취소 규정, 가격 변동, 특이 조건이 연결돼야 한다. 이 정보가 연결되면 AI는 상담과 예약 보조로 갈 수 있다. 연결되지 않으면 탐색에 머문다. AI가 여행의 중심으로 이동한다는 말은 AI가 혼자 여행을 판다는 뜻이 아니다. AI가 여행자의 질문을 받아내고, 선택지를 정리하고, 상담과 비교를 빠르게 만든다는 뜻이다.
전문 여행인의 역할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AI가 정보를 더 많이 모을수록 그 정보를 해석하고 검증하는 사람의 역할은 더 중요해진다. AI는 빠르게 찾고, 요약하고, 비교한다. 전문 여행인은 맥락을 읽고, 위험을 판단하고, 고객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고, 현장의 변수를 반영한다. AI는 일정 초안을 만들 수 있지만, 그 일정이 실제로 가능한지, 그 고객에게 맞는지, 계절과 체력과 동행자 조건에 맞는지는 전문 여행인이 판단해야 한다.
좋은 여행은 정보의 양으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여행자는 단순히 가장 싼 항공권과 가장 평점이 높은 호텔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가족이 편안한지, 부모가 무리하지 않는지, 아이가 지루하지 않은지, 일정이 빡빡하지 않은지, 현장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누가 책임질 수 있는지를 본다. AI는 그 질문의 상당 부분을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최종 신뢰는 사람의 판단과 책임에서 나온다.
그래서 여행의 미래는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방향으로만 가지 않는다. AI와 전문 여행인이 함께 끌고 가는 구조로 갈 가능성이 크다. AI는 검색, 비교, 요약, 일정 초안, 가격 확인, 고객 문의 정리, 기본 상담을 맡는다. 전문 여행인은 검증, 설계, 조정, 책임, 현장 감각, 고객 신뢰를 맡는다. AI가 앞단을 넓히고, 전문 여행인이 여행의 완성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과거에는 여행자가 정보를 찾아다녔다. 검색창에서 시작해 블로그와 후기를 넘기고, 플랫폼과 여행사를 비교했다. 현재는 AI가 그 정보를 여행자 앞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아직 예약을 완전히 대신하지는 못하지만, 여행의 발견과 비교, 일정 초안과 상담의 앞단에는 이미 들어왔다. 미래에는 이 흐름이 더 깊어진다. AI는 여행자를 더 빨리 이해하고, 더 많은 선택지를 정리하고, 더 정확한 질문을 던지고, 전문 여행인에게 더 좋은 상담 자료를 넘기게 될 것이다.
커뮤니티와 플랫폼 리뷰, 지인 추천이 여전히 강한 것은 당연하다. 여행은 검증이 필요한 소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구조도 앞으로 변한다. AI가 더 많은 정보를 읽고, 여행산업이 더 정확한 데이터를 제공하고, 플랫폼과 여행사가 상담과 예약의 책임 구조를 연결하면 AI는 탐색에서 상담으로, 상담에서 비교로, 비교에서 예약 보조로 이동한다.
여행의 중심은 검색에서 플랫폼으로 이동해왔다. 이제 그 중심에 AI가 들어오고 있다. 그러나 그 미래는 AI 혼자 만드는 미래가 아니다. AI가 정보를 모으고, 전문 여행인이 판단하고, 여행자가 검증하는 협업의 구조다. 다음 여행산업의 승부는 AI가 사람을 대신하느냐가 아니라, AI와 사람이 얼마나 정교하게 함께 일하느냐에서 갈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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