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조차 오래 머물지 못한 섬, 몰타는 끝내 모두를 하나로 품었다

몰타는 바다를 연 것이 아니라 사방이 바다였던 섬이다. 나폴레옹의 프랑스군도 이 바다를 건너 들어왔지만 오래 머물지 못했다. 그랜드하버의 성벽과 항구, 식탁을 따라가면 몰타가 전쟁과 점령의 기억을 오늘의 환대와 여행으로 품어낸 방식이 보인다.

몰타 바다에서 본 성벽과 돛단배 그랜드하버
바다에서 바라본 몰타의 성벽은 아름다운 풍경이면서 오래된 경계의 기억을 함께 품고 있다.

몰타의 바다는 처음부터 사방으로 열려 있었다. 누군가가 특별히 문을 연 것이 아니라, 섬이라는 운명이 애초에 그렇게 만들어 놓은 풍경이었다. 어느 방향에서든 배가 올 수 있었고, 배가 닿는 순간 사람과 물자뿐 아니라 군대와 깃발, 종교와 언어, 새로운 권력의 욕망까지 함께 밀려들어왔다.

지금의 여행자에게 그 바다는 햇살과 수평선, 푸르디푸른 물빛으로 먼저 다가온다. 그러나 오래전의 바다는 그렇게 낭만적인 풍경만은 아니었다. 먼저 닿는 자가 항구를 요구하고, 성문 앞에 선 자가 권리를 주장하던 세계였다. 몰타의 역사는 바로 그 바다 때문에 열렸고, 그 바다 때문에 흔들렸으며, 다시 그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배를 타고 그랜드하버로 들어가면 그 역사는 책의 문장보다 먼저 풍경으로 다가온다. 육지에서 바라볼 때는 아름다운 성벽과 항구였던 것들이, 바다 위에서는 조금 다른 표정을 갖는다. 멀리서는 햇살을 받은 석조 도시가 노랗게 빛나고, 돔과 창문, 포대와 성벽이 지중해의 배경처럼 펼쳐진다. 그러나 배가 항구 안쪽으로 다가갈수록 그 아름다움은 단순한 감탄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몰타 성벽 너머로 보이는 항구와 방어선
성벽 너머로 보이는 항구는 몰타가 왜 오랫동안 지중해의 요충지였는지를 말해준다.

바다를 건너온 옛 사람들에게 이 항구는 반짝이는 여행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성벽과 요새가 겹겹이 서 있는 거대한 문턱이었고, 들어가고 싶어도 쉽게 들어갈 수 없으며, 들어간다 해도 마음대로 가질 수 없는 섬의 첫 얼굴이었다. 그래서 그랜드하버는 아름답지만 가볍지 않다. 눈부신 물빛 아래 오래된 경계의 기억이 함께 흐른다.

1798년 나폴레옹의 프랑스군도 이 바다를 건너 몰타에 들어왔다. 이집트 원정길에 오른 프랑스 함대가 몰타 앞바다에 나타났을 때, 몰타는 처음부터 피비린내 나는 전투로 맞선 것이 아니었다. 섬은 문을 열었고, 프랑스군은 비교적 수월하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바로 그 대목이 몰타의 역사를 더 흥미롭게 만든다.

몰타가 처음부터 끝까지 싸움만으로 자신을 설명하는 섬이었다면 이야기는 오히려 단순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섬의 시간은 그렇게 직선으로 흐르지 않았다. 누군가는 들어왔고, 누군가는 남았고, 또 누군가는 떠났다. 그리고 남은 흔적과 사람들은 어느 순간 몰타의 일부가 되었다.

프랑스군이 들어왔다는 사실과 프랑스가 몰타를 오래 품을 수 있었다는 사실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처음의 문은 열렸지만, 프랑스 지배가 몰타 사람들의 생활과 믿음, 재산과 질서에 부딪히기 시작하자 섬의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졌다. 마을과 교회, 항구와 골목에서 흩어져 있던 불만은 어느 순간 하나의 흐름이 됐다. 그 흐름은 프랑스군을 발레타와 그랜드하버의 요새권 안에 묶어 두었다.

몰타 바다에서 본 석조 요새와 해상 방어선
바다에서 바라본 몰타의 요새는 과거 이 섬에 들어오려던 사람들이 먼저 마주했을 장면이다.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은 세계사에서는 정복과 원정의 거대한 이름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몰타에서는 들어오기는 했으나 끝내 오래 머물지 못한 권력의 이름으로도 기억된다. 몰타는 처음부터 그들을 칼로 밀어낸 섬은 아니었지만, 섬의 마음과 생활까지 순순히 내준 섬도 아니었다. 이 지점에서 몰타의 이야기는 단순한 점령의 기록을 넘어선다.

몰타의 진짜 흥미로운 면은 외부에서 온 사람들을 무조건 밀어내기만 한 섬이 아니었다는 데 있다. 성요한기사단부터 상인과 선원, 군인과 기술자에 이르기까지 여러 세기의 사람들이 바다를 건너 몰타에 발을 디뎠다. 그들은 때로 보호자의 이름으로, 때로 지배자의 이름으로, 때로 생계를 찾아온 사람의 이름으로 섬에 들어왔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남은 사람들은 몰타의 언어와 생활, 항구의 리듬과 골목의 습관 속으로 조금씩 스며들었다.

어제의 외부인이 오늘의 이웃이 되고, 한 시대의 낯선 세력이 다음 시대에는 몰타를 함께 지키는 사람이 되는 일. 몰타의 깊이는 그런 반복 속에서 만들어졌다. 성요한기사단 역시 처음에는 몰타 밖에서 온 사람들이었지만, 오늘날 몰타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됐다. 바다를 건너온 낯선 존재가 세월을 통과하며 섬의 일부가 되고, 다시 다음 위기 앞에서 몰타 편에 서는 방식이 이 섬의 역사를 유난히 입체적으로 만든다.

그래서 몰타의 군사유산은 적과 아군을 단순히 갈라 세우는 방식으로만 읽어서는 부족하다. 성벽과 요새, 포대와 항구에는 분명 전쟁의 기억이 남아 있지만, 그 아래에는 훨씬 복잡한 사람의 시간이 겹쳐 있다. 싸웠던 사람들이 남아 살고, 남아 산 사람들이 가족을 이루고, 그 가족의 후손들이 다시 새로운 위기 앞에서 몰타라는 이름으로 함께 섰다. 전쟁의 흔적이 남은 곳에 삶도 함께 남아 있었던 것이다.

바다에서 바라본 요새가 차갑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돌은 오래되었고 성벽은 높지만, 그 안에는 사람의 체온이 남아 있다. 누군가는 이 성벽을 쌓았고, 누군가는 그 위를 지켰으며, 누군가는 그 아래 항구에서 장사를 하고 아이를 키우고 식탁을 차렸을 것이다. 배가 항구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갈 때 성벽 너머로 보이는 창문과 골목, 계단과 생활의 흔적은 몰타가 전쟁의 섬으로만 남지 않았음을 조용히 말해준다.

오늘의 몰타가 오래 마음에 남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과거에는 서로 다른 깃발 아래 맞섰던 프랑스인과 이탈리아인, 독일인과 영국인이 지금은 같은 항구에 모여 웃고, 같은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마시며, 같은 성벽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군사 퍼레이드를 보며 감탄하고, 오래된 전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가도, 잠시 뒤에는 아무렇지 않게 같은 테이블에 앉는다. 몰타는 그 역사를 지워서 평화로운 척하는 곳이 아니라, 전쟁의 기억을 그대로 남겨 두었기 때문에 오늘의 웃음이 더 깊게 느껴지는 곳이다.

한국 사람에게 이 장면은 그냥 아름다운 풍경으로만 지나가기 어렵다. 우리에게도 식민의 기억이 있고, 전쟁의 상처가 있으며, 아직 끝나지 않은 분단의 현실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오래전의 일을 오늘의 감정으로 다시 불러내고, 과거의 고통을 현재의 분노로 붙들고 살아간다. 그것이 모두 틀렸다고 쉽게 말할 수는 없지만, 몰타에서 본 것은 그와는 조금 다른 방식의 성숙이었다.

몰타는 기억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미움 안에만 가두지 않았다. 과거를 기록하면서도 오늘의 만남을 허락했고, 전쟁의 장소를 증오의 전시장으로 만들지 않은 채 여행과 대화의 공간으로 남겨두었다. 그런 태도는 구호처럼 드러나지 않았다. 항구의 바람과 성벽의 색, 퍼레이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과 저녁 식탁의 웃음 속에 조용히 배어 있었다.

밀리터리 팸트립에서 오래 남은 장면도 결국 그런 순간들이었다. 요새의 규모나 성벽의 높이만 기억에 남은 것이 아니었다. 배 위에서 바라본 그랜드하버와 항구로 들어설 때 바람에 흔들리던 물빛, 성벽 아래로 이어지는 거리와 그 모든 이야기를 지나 사람들이 함께 앉아 웃던 식탁이 하나의 흐름으로 떠올랐다. 몰타 관광청의 일정은 전쟁 유산을 보여주되 여행자를 전쟁의 무게 안에만 가둬두지 않았다.

오전에는 성벽과 바다를 걷게 하고, 오후에는 항구의 도시를 보게 하며, 저녁에는 식탁 앞에서 하루를 내려놓게 했다. 그 흐름이 자연스러웠던 것은 몰타에서 전쟁의 기억과 오늘의 생활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성벽 아래 항구가 있고, 항구 옆에 식당이 있으며, 식당 너머로 다시 오래된 도시가 보인다. 이 섬에서는 역사와 미식이 억지로 붙지 않는다.

항구 가까운 레스토랑에 앉으면 그 사실은 한층 더 부드럽게 다가온다. 접시 위에는 고기와 감자, 채소와 와인이 놓이고, 테이블 너머로는 조금 전까지 바라보던 바다가 다시 들어온다. 방금 전까지 프랑스군의 점령과 몰타 사람들의 저항을 떠올리게 하던 바다가 어느새 저녁 식사의 배경이 된다. 그런데 그 전환이 이상하게 어색하지 않다.

몰타의 여행은 원래 한 공간 안에 있던 것들을 여행자의 하루 안에 차례로 펼쳐 놓는다. 성벽을 보고, 항구를 지나고, 바다를 바라보다가 식탁에 앉으면 전쟁의 기억은 조금 부드러운 온도를 얻는다. 그렇다고 역사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기억이 오늘의 생활 속에 남아 있기 때문에, 여행자는 몰타를 더 오래 생각하게 된다.

이 점에서 몰타의 군사유산 여행은 단순한 답사와 다르다. 전쟁의 흔적을 따라가지만 전쟁을 자극적으로 소비하지 않고, 나폴레옹의 이름을 가져오지만 제국의 승패만을 말하지 않으며, 성벽과 요새를 보여주지만 돌과 무기만으로 이야기를 끝내지 않는다. 결국 몰타의 이야기는 사람에게로 돌아온다. 누가 왔고, 누가 남았으며, 누가 다시 이 섬을 지켰고, 시간이 흐른 뒤 그 후손과 여행자들이 어떻게 같은 항구에서 웃고 있는지까지 보여줄 때 비로소 이 섬의 군사유산은 여행이 된다.

나폴레옹조차 오래 머물지 못한 섬이라는 말은 그래서 단순한 역사적 수사가 아니다. 몰타는 거대한 이름들이 스쳐 간 곳이지만, 그 이름들보다 오래 남은 것은 섬의 시간이었다. 프랑스도 왔고 영국도 왔으며, 이탈리아와 독일의 기억도 2차대전의 하늘에 남아 있지만, 오늘의 몰타는 그 모든 기억을 하나의 증오로 묶어두지 않는다. 성벽에는 역사를 남기고, 항구에는 삶을 남기며, 식탁에는 다시 사람을 앉히는 방식으로 몰타는 싸웠던 사람들의 후손까지 여행자로 맞이한다.

몰타는 끝내 모두를 하나로 품었다. 그 말은 모든 차이를 지웠다는 뜻이 아니고, 서로 다른 언어와 깃발, 승리와 패배, 상처와 자부심을 한꺼번에 없앴다는 뜻도 아니다. 오히려 몰타는 그 차이를 성벽과 항구, 골목과 식탁 위에 그대로 남겨 두되 그것을 오늘의 적대감으로만 끌고 오지 않았다. 바다는 여전히 사방으로 열려 있고, 사람들은 여전히 그 바다를 건너온다.

예전에는 깃발을 꽂으러 왔던 사람들이 이제는 여행 가방을 들고 온다. 한때 서로를 겨누었던 역사는 항구의 햇살 아래에서 조금 다른 얼굴로 앉아 있다. 그래서 몰타의 군사유산은 전쟁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환대의 풍경이다. 작지만 깊은 섬, 몰타가 오래 마음에 남는 이유다.

여행레저신문 Copyrights ⓒ The Travel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