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선작지왓 산철쭉, 6월 해발 1700m에 피는 분홍 산상화원

제주 한라산 고지대가 6월 산철쭉으로 분홍빛을 띠고 있다. 산철쭉은 해발 1500m 영실 일대에서 피기 시작해 해발 1700m 선작지왓 일대로 개화를 이어가며, 털진달래가 진 뒤 초여름 한라산을 산상화원으로 바꾼다.

한라산 선작지왓 고산 초원에 핀 분홍 산철쭉 풍경
한라산 고지대 산철쭉이 6월 초·중순 선작지왓 일대에서 절정을 이루며 분홍빛 산상화원을 만든다.

여행레저신문 ㅣ 김정호기자

한라산의 6월은 평지의 6월과 다르다. 제주 해안에는 이미 여름 기운이 짙어지지만, 해발 1500m가 넘는 고지대에서는 봄꽃의 마지막 장면이 이어진다. 털진달래가 먼저 산을 물들이고 물러난 자리에는 산철쭉이 피어난다. 그 분홍빛이 선작지왓과 윗세오름 일대에 번지면 한라산은 짧은 시간 동안 산상화원으로 바뀐다.

제주도 한라산국립공원관리소에 따르면 산철쭉은 5월 중순부터 6월 중순까지 꽃을 피운다. 개화는 해발 1500m 영실 일대에서 시작해 점차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올해는 해발 1700m 선작지왓 일대에서 6월 10일께 절정을 이룰 것으로 전망됐다. 평지의 꽃축제가 끝난 뒤에도 한라산 고지대에서는 다시 한 번 분홍빛 풍경이 열리는 셈이다.

선작지왓은 한라산 고지대에 펼쳐진 넓은 초원 지대다. ‘작은 돌이 서 있는 밭’이라는 뜻으로 알려진 이곳은 윗세오름과 남벽 방향으로 이어지는 탐방 동선에서 만나는 대표 경관이다. 탁 트인 고산 초원, 화산 지형, 멀리 보이는 한라산 능선이 함께 어우러져 평지의 꽃밭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한라산 영실 탐방로를 따라 산철쭉을 보며 걷는 탐방객
산철쭉은 해발 1500m 영실 일대에서 피기 시작해 해발 1700m 선작지왓 방향으로 개화를 이어간다.

산철쭉이 절정에 이르면 선작지왓 일대는 연분홍과 진분홍이 뒤섞인 색으로 변한다. 꽃의 규모만으로 압도하는 정원형 꽃축제와는 다르다. 강한 바람과 낮은 기온을 견디며 피어난 고산식물의 군락은 더 거칠고 선명하다. 꽃을 보러 가는 길 자체가 산행이고, 꽃밭은 도착지라기보다 한라산이 허락하는 짧은 계절 풍경에 가깝다.

한라산의 봄꽃 흐름은 털진달래에서 산철쭉으로 이어진다. 털진달래는 보통 4월 중하순 꽃을 피우기 시작해 5월 중순 절정을 이룬다. 이후 산철쭉이 뒤를 잇는다. 둘은 한라산 고지대의 대표 봄꽃이지만 일반 탐방객에게는 비슷해 보일 수 있다. 털진달래는 잎이 나오기 전에 꽃이 먼저 피고, 산철쭉은 잎과 꽃이 함께 나타난다는 점에서 구분할 수 있다.

산철쭉은 생태적으로도 흥미로운 식물이다. 햇가지와 꽃자루에 끈적한 점성이 있고, 약한 독성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노루 같은 초식동물이 잘 먹지 않는 식물로 설명된다. 척박한 고산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어 전략이 꽃의 생존 방식 안에 담겨 있는 셈이다.

산철쭉을 보려면 영실 탐방로와 어리목 탐방로가 많이 언급된다. 영실 탐방로는 한라산 탐방로 중 비교적 짧고 경관이 뛰어난 코스로, 영실기암과 선작지왓, 윗세오름을 지나며 고산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어리목 탐방로는 어리목 계곡과 사제비동산, 만세동산, 윗세오름으로 이어진다. 두 코스 모두 백록담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아니지만, 한라산 고지대의 풍경을 보기에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한라산 윗세오름 선작지왓 일대에 펼쳐진 산철쭉 군락
선작지왓은 한라산 고지대에 형성된 넓은 초원 지대로, 초여름 산철쭉이 피면 산상화원 같은 풍경을 보여준다.

다만 ‘꽃 보러 가는 산책’ 정도로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선작지왓과 윗세오름 일대는 해발 1700m 안팎의 고산지대다. 날씨 변화가 빠르고 바람이 강하며, 해가 있어도 체감온도가 낮아질 수 있다. 등산화, 바람막이, 물, 간식, 자외선 차단 준비는 기본이다. 6월이라도 한라산 고지대에서는 여름 복장만으로 부족할 수 있다.

탐방 시간도 확인해야 한다. 한라산 탐방 안내에 따르면 하절기에는 어리목 탐방로 입구가 오후 3시부터 입산 통제되고, 윗세오름 안내소에서는 오후 2시부터 돈내코 방향 탐방이 통제된다. 윗세오름 하산 시간도 정해져 있다. 산철쭉을 보고 싶다면 늦은 출발보다 오전 산행이 안전하다.

사진을 찍을 때도 지정 탐방로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산철쭉 군락은 한라산의 고산 생태계 일부다. 꽃 가까이 다가가겠다고 탐방로를 벗어나면 식생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한라산 산철쭉 절정기에는 탐방객 증가와 함께 불법 탐방 문제가 지적되기도 했다. 아름다운 풍경을 오래 보기 위해서는 꽃밭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이 기본이다.

6월 산철쭉 산행은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안개가 끼면 한라산의 능선과 초원이 가려지고, 비바람이 강하면 체력 소모가 커진다. 반대로 맑은 날에는 제주의 하늘과 고산 초원, 분홍빛 산철쭉이 한 화면에 들어온다. 개화 절정은 짧기 때문에 방문 전 한라산국립공원 안내와 기상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한라산의 산철쭉은 평지의 꽃구경과 다르다. 차를 세우고 바로 꽃밭으로 들어가는 여행이 아니라, 등산화 끈을 조이고 고도를 올려야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바람이 세고 길이 쉽지만은 않지만, 선작지왓에 펼쳐진 분홍빛 초원은 한라산이 6월에만 보여주는 특별한 장면이다.

제주 여행에서 바다와 카페, 해변만 떠올렸다면 6월에는 한라산 고지대도 일정에 넣어볼 만하다. 털진달래가 물러난 뒤 산철쭉이 이어받은 분홍빛 산상화원은 초여름 한라산의 가장 선명한 풍경이다. 다만 이 풍경은 짧게 머문다. 6월 중순까지 이어지는 개화기를 놓치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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