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레저신문 ㅣ 김정호기자
45년 가까이 보호된 상수원지에서 만나는 땅뫼산 황토숲길과 수변 데크로드, 부산의 조용한 호수 산책 명소
부산 여행을 떠올리면 대부분 먼저 바다를 생각한다. 해운대와 광안리, 송정과 다대포처럼 부산의 이름은 파도와 모래, 해변의 풍경과 함께 기억된다. 그러나 부산에는 바다와 전혀 다른 속도로 숨 쉬는 물의 풍경도 있다. 금정구 회동동과 오륜동, 선동 일대에 자리한 회동수원지다.
회동수원지는 부산 시민의 상수원으로 오랫동안 관리돼온 공간이다. 1964년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뒤 긴 시간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됐고, 그 덕분에 도심 가까운 곳임에도 숲과 호수가 비교적 차분하게 보존됐다. 이후 2010년 일반에 개방되면서 회동수원지는 부산의 새로운 산책 명소이자 호수형 생태 여행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곳의 매력은 화려한 시설보다 조용한 풍경에 있다. 호수를 따라 걷는 길, 나무 그늘이 내려앉은 흙길, 땅을 직접 밟는 황토숲길, 잔잔한 물빛을 바라보는 수변 데크가 이어진다. 바다의 도시 부산에서 만나는 의외의 호수 여행지라는 점이 회동수원지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45년 가까이 품어온 숲과 호수
회동수원지는 단순한 저수지가 아니다. 부산 도심에 물을 공급하던 상수원지였고, 수영강과 철마천이 만나는 길목의 수계와 산자락이 어우러진 공간이다. 오랜 기간 보호구역으로 관리되며 사람의 이용은 제한됐지만, 그 시간은 자연이 깊어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긴 통제의 시간이 끝난 뒤 시민에게 열린 회동수원지는 ‘새로 만든 공원’과는 결이 다르다. 인위적인 조형물보다 산과 호수, 숲과 길이 중심에 있다. 호숫가를 따라 걸으면 물가의 식생과 산자락의 숲, 멀리 이어지는 능선이 한 화면 안에 들어온다. 부산 안에서도 이렇게 고요한 수변 풍경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낯설 만큼 분위기가 차분하다.
회동수원지의 산책은 빠르게 걷는 운동보다 천천히 머무는 쪽에 가깝다. 바람이 호수 위를 지나고, 나뭇잎 그림자가 길 위에 흔들리며, 물빛이 계절에 따라 달라진다. 봄에는 연둣빛 숲이, 여름에는 짙은 녹음이, 가을에는 단풍과 잔잔한 호수가 길의 표정을 바꾼다.

땅뫼산 황토숲길, 맨발로 걷는 부산의 숲
회동수원지 둘레길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구간은 땅뫼산 황토숲길이다. 이 길은 시멘트 포장 대신 황토를 활용한 숲길로 조성돼, 맨발 걷기를 즐기려는 방문객에게 인기가 높다. 신발을 벗고 흙을 밟으면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감각이 달라지고, 나무 그늘과 호수 바람이 더해져 도심 산책과 다른 휴식이 된다.
황토숲길의 장점은 감각이 단순하다는 데 있다. 눈앞에는 호수와 숲이 있고, 발밑에는 부드러운 흙이 있으며, 귀에는 새소리와 물가의 바람이 들어온다. 운동을 하러 왔다가도 자연스럽게 속도가 느려진다. 회동수원지가 ‘에코 힐링’ 공간으로 불리는 이유도 이 지점에 있다.
맨발 걷기를 계획한다면 작은 수건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황토길을 걸은 뒤 발을 정리할 수 있는 세족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구간도 있지만, 개인 수건을 챙기면 훨씬 편하다. 여름철에는 햇볕이 강한 시간대를 피해 오전이나 늦은 오후에 걷는 편이 좋고, 비 온 직후에는 길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안전하다.

수변 데크와 호숫가 숲길, 평탄하게 이어지는 산책
회동수원지의 좋은 점은 코스 선택의 폭이 넓다는 것이다. 긴 트레킹을 원하는 사람은 둘레길을 길게 잡을 수 있고, 가볍게 걷고 싶은 사람은 땅뫼산 황토숲길과 수변 데크 일부만 선택해도 충분하다. 호수 가까이 이어지는 데크로드는 물빛을 가까이에서 보며 걷기 좋은 구간이다.
수변 데크에서는 호수의 정적인 분위기가 잘 드러난다. 바다처럼 파도가 밀려오는 풍경은 아니지만,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물결이 잔잔하게 흔들리고 숲의 그림자가 수면 위로 내려앉는다. 부산 안에서 ‘조용한 물’을 바라보며 걷는 경험은 회동수원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에 가깝다.
주요 구간은 비교적 걷기 좋게 정비돼 있지만, 전체 둘레길이 모두 완전한 무장애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일부 구간은 데크와 완만한 길,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어 유모차나 보행 약자도 이용하기 좋지만, 코스가 길어질수록 흙길과 경사, 숲길을 만나게 된다. 방문 목적에 따라 짧은 구간을 골라 걷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체력에 따라 고르는 세 가지 걷기 코스
회동수원지 둘레길은 체력과 시간에 따라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상현마을에서 땅뫼산 수변 데크까지 이어지는 약 4.8km 구간은 가장 대중적인 산책 코스로 꼽힌다. 비교적 부담이 적고, 호수 풍경과 숲길을 함께 즐길 수 있어 처음 방문하는 사람에게 알맞다.
조금 더 깊은 숲길 분위기를 원한다면 땅뫼산 데크에서 동대교 방향으로 이어지는 약 5.4km 구간을 선택할 수 있다. 이 구간은 상대적으로 한적한 느낌이 강해 조용한 자연 산책을 원하는 방문객에게 어울린다. 물가를 따라 걷다가 숲그늘이 깊어지는 흐름이 이어져, 부산 안에서도 깊은 산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을 준다.
전체를 크게 걷고 싶다면 약 11.8km 규모의 종합형 둘레길을 계획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에는 단순 산책보다 트레킹에 가깝다. 물과 간식, 편한 신발을 준비하고, 시작 시간과 귀가 동선을 미리 정해두는 것이 좋다. 회동수원지는 코스가 긴 만큼 욕심내기보다 자신의 체력에 맞춰 일부 구간을 선택하는 방식이 더 만족스럽다.

상수원 보호구역에서 지켜야 할 약속
회동수원지는 시민에게 열린 산책지이지만, 여전히 상수원과 관련된 소중한 자연 공간이다. 그래서 방문객이 지켜야 할 기본 원칙이 분명하다. 야영과 취사, 낚시, 쓰레기 투기 등은 금지된다. 호수와 숲을 즐기는 공간이지만, 그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용해야 한다.
특히 물가에 가까운 구간에서는 안전에도 주의해야 한다. 사진을 찍기 위해 난간 밖으로 나가거나, 출입이 제한된 구역으로 들어가는 행동은 피해야 한다. 호수 산책은 잔잔해 보이지만, 수변 지형은 미끄럽거나 불안정한 곳이 있을 수 있다.
방문 시에는 대중교통과 주차 여건을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주말에는 인기 구간 주변이 붐빌 수 있으므로 오전 시간대 방문이 편하다. 여름에는 모자와 물을 챙기고, 황토숲길 맨발 걷기를 할 경우 발을 닦을 수건을 준비하면 좋다.
여행정보
회동수원지는 부산광역시 금정구 회동동, 오륜동, 선동 일대에 걸쳐 있는 수변 산책지다. 1964년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뒤 오랜 기간 일반 출입이 제한됐고, 2010년 개방 이후 땅뫼산 황토숲길과 수변 데크로드, 둘레길을 중심으로 시민들의 산책 명소가 됐다.
입장료와 관람료는 없다. 대표 구간으로는 상현마을에서 땅뫼산 수변 데크까지 이어지는 약 4.8km 코스, 땅뫼산 데크에서 동대교 방향으로 이어지는 약 5.4km 코스, 회동수원지를 크게 도는 약 11.8km 종합형 코스 등이 있다. 처음 방문한다면 땅뫼산 황토숲길과 수변 데크를 중심으로 짧게 걷는 일정이 무난하다.
회동수원지는 상시 개방형 산책지로 알려져 있으나, 상수원 보호구역인 만큼 야영, 취사, 낚시, 쓰레기 투기는 금지된다. 날씨와 현장 여건에 따라 일부 구간 이용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방문 전 안내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맨발 황토길을 걸을 계획이라면 개인 수건과 편한 신발을 준비하는 것이 편하다.
부산의 여름을 꼭 바다에서만 보낼 필요는 없다. 바다의 파도 대신 잔잔한 호수, 소음 대신 숲그늘과 바람을 만나고 싶다면 회동수원지는 충분히 좋은 선택지다. 45년 가까운 통제의 시간을 지나 시민에게 열린 이 호수길은, 부산 도심 가까이에서 가장 조용하게 숨을 고를 수 있는 산책 명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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