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에 이런 절이 있었나…금강산 자락의 대찰 건봉사

금강산 자락의 고성 건봉사는 한때 3천여 칸을 거느렸던 강원도의 대찰이다. 사명대사가 승병을 일으킨 호국의 현장과 부처의 진신치아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전쟁을 견딘 불이문과 능파교가 한 경내에 이어진다. 봄 벚꽃과 가을 단풍, 눈 덮인 겨울 산사까지 계절마다 아름다워 아이와 부모님이 함께 걷기 좋은 고성 가족여행지다.

능파교와 전각이 어우러진 금강산 자락의 고성 건봉사 전경
능파교를 건너면 금강산 자락의 대찰 건봉사 경내가 펼쳐진다. 이미지 제공: 고성군청

금강산 자락에 자리한 고성 건봉사는 한때 3천여 칸을 거느렸던 강원도의 대찰이다. 지금의 경내만 보고 규모를 짐작하기 어렵지만, 넓은 옛 절터와 불이문·능파교, 곳곳에 남은 석축은 건봉사가 지녔던 위상을 말해준다.

 

김미래 기자 ㅣ 여행레저신문

 

건봉사의 역사는 사명대사와 깊이 이어진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사명대사는 이곳에서 승려들을 규합해 승병을 일으켰다. 전쟁 뒤에는 일본과의 외교 교섭과 포로 송환에 큰 역할을 했다. 문과 무를 겸비하고 외교에도 뛰어났던 그는 시대의 사표였다.

부처의 진신치아사리를 모신 적멸보궁과 전쟁을 견딘 불이문, 계곡 위의 능파교를 차례로 둘러보면 건봉사의 시간이 한눈에 이어진다. 봄에는 벚꽃,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설경이 아름다워 아이와 부모님이 함께 걷는 고성 가족여행지로도 좋다.

금강산 자락에서 성장한 강원도의 대찰

건봉사의 위상은 금강산과 떼어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금강산 남쪽에 자리한 건봉사는 수행과 교류의 중심이었고, 강원 북부의 여러 사찰을 거느렸던 큰 절이었다.

1878년 큰불이 났을 때 3천여 칸에 이르는 건물이 소실됐다는 기록은 당시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이후 다시 세워졌지만 6·25전쟁 때 고성 일대가 격전지가 되면서 불이문을 제외한 전각 대부분이 불탔다.

전쟁 뒤에도 복원은 쉽지 않았다. 건봉사는 오랫동안 민간인 출입이 제한된 지역에 놓여 사람과 자재의 이동이 자유롭지 않았다. 중창은 더디게 이어졌고, 넓은 옛 절터에는 전각 사이로 긴 여백이 남았다.

건봉사 전각 문 사이로 바라본 금강산 자락의 가을 풍경
건봉사 전각의 문 사이로 단풍이 물든 산과 계곡이 펼쳐진다. 이미지 제공: 고성군청

그 여백 덕분에 건봉사에서는 산과 숲, 계곡이 가려지지 않는다. 건물만 따라 움직이기보다 금강산 자락의 산세와 옛 절터를 함께 보며 천천히 걷는 여행이 어울린다.

사명대사가 승병을 일으킨 호국의 현장

임진왜란이 일어나 나라가 위기에 빠지자 사명대사는 건봉사에서 승려들을 모아 승병을 일으켰다. 건봉사는 승병 활동의 중요한 출발점이자 임진왜란 극복을 위한 호국의 현장이 됐다.

사명대사의 역할은 전쟁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전쟁 뒤 일본에 사신으로 건너가 외교 교섭을 벌이고,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의 귀환을 이끄는 데 힘을 보탰다.

사명대사는 문과 무를 겸비하고 외교에도 뛰어났던 시대의 사표였다. 건봉사에서 그의 흔적을 따라가면 한 고승의 생애를 넘어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불교계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아이와 함께 방문했다면 사명대사를 단순히 승병을 이끈 인물로만 설명할 필요는 없다. 전쟁 중에는 사람들을 모아 나라를 지켰고, 전쟁 뒤에는 외교를 통해 포로들의 귀환을 도왔던 인물이라는 점까지 들려주면 건봉사의 역사가 더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부처의 진신치아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건봉사에서 반드시 찾아야 할 곳은 적멸보궁이다. 적멸보궁은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이어서 법당 안에 불상을 따로 두지 않는다. 건봉사에서는 적멸보궁 뒤편 사리탑을 향해 예를 올린다.

대웅전과 여러 전각이 자리한 고성 건봉사 중심 경내
건봉사 중심 경내에는 중창된 전각들이 넓은 옛 절터를 따라 자리한다. 이미지 제공: 고성군청

건봉사에는 석가모니의 진신치아사리가 봉안돼 있다. 이 치아사리는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사명대사가 되찾아와 건봉사에 모신 것으로 전해진다.

전쟁이 일어나자 건봉사에서 승병을 일으켰던 사명대사가 전쟁 뒤에는 외교를 통해 포로들의 귀환을 돕고 부처의 치아사리를 되찾아왔다는 이야기가 적멸보궁에서 하나로 이어진다.

적멸보궁에 들어서면 불상이 없는 법당 안을 먼저 보고, 뒤편의 사리탑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아이에게도 불상을 모시지 않은 이유를 설명해주면 사찰 관람이 단순한 건축물 구경을 넘어선다.

둘이 아니라는 뜻을 담은 불이문

건봉사 불이문은 6·25전쟁의 화마를 견디고 남은 상징적인 산문이다. 주변 전각이 대부분 사라진 가운데 살아남아 전쟁 이전 건봉사의 모습을 전한다.

불이(不二)는 둘이 아니라는 뜻이다. 선과 악, 삶과 죽음, 부처와 중생처럼 서로 반대라고 여기는 것들도 궁극의 진리에서는 둘로 갈라지지 않는다는 불교의 뜻을 담고 있다.

불이문을 지난다는 것은 단순히 절 안으로 들어간다는 의미를 넘어 분별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진리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상징을 지닌다.

전쟁과 분단의 상처가 깊은 고성에서 불이문을 바라보면 그 뜻은 더욱 선명해진다. 남과 북, 전쟁과 평화처럼 둘로 갈라진 역사를 품은 땅에 ‘둘이 아니다’라는 이름의 문이 남아 있다.

붉은 열매와 능파교, 건봉사 전각이 어우러진 가을 풍경
가을의 건봉사에서는 붉은 열매와 능파교, 전각의 지붕선이 한 장면으로 이어진다. 이미지 제공: 고성군청

계곡을 건너는 무지개 돌다리, 능파교

불이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가면 계곡 위에 놓인 능파교를 만난다. 능파교는 무지개 모양의 석교로, 흐르는 물과 숲, 건봉사의 전각을 한 장면에 담아내는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다.

‘능파’는 물결을 가볍게 건넌다는 뜻을 품고 있다. 돌을 정교하게 맞물려 만든 다리를 천천히 건너면 옛사람들이 건봉사 중심 전각으로 들어가던 동선을 그대로 따라가게 된다.

아이와 함께라면 돌다리의 아치 구조를 살펴보는 것도 좋다. 부모님과는 계곡 주변에서 잠시 쉬며 불이문과 능파교가 전쟁을 지나 오늘까지 남은 의미를 이야기할 수 있다.

능파교 주변은 계절의 변화도 뚜렷하다. 여름에는 녹음과 계곡물이 짙어지고, 가을에는 붉은 열매와 단풍이 돌다리와 전각의 지붕선을 감싼다.

봄 벚꽃과 겨울 설경이 아름다운 산사

건봉사는 봄 벚꽃으로 유명하다. 산문으로 이어지는 길과 경내 주변에 꽃이 피면 오래된 돌다리와 기와지붕, 금강산 자락이 부드러운 봄빛에 잠긴다.

둘이 아니라는 불교의 뜻을 담은 고성 건봉사 불이문
선과 악, 삶과 죽음, 부처와 중생을 둘로 가르지 않는다는 불교의 뜻을 담은 건봉사 불이문. 이미지 제공: 고성군청

여름에는 숲과 계곡이 짙은 녹음을 이루고, 가을에는 산 전체가 단풍으로 물든다. 전각이 빽빽하지 않아 산의 색이 경내 깊숙이 들어온다.

겨울의 건봉사도 놓치기 아깝다. 눈이 내리면 전각의 지붕과 돌담, 주변 산림이 한꺼번에 흰빛으로 바뀐다. 넓은 경내에 눈이 쌓인 풍경은 봄 벚꽃과는 전혀 다른 산사의 고요를 보여준다.

계절마다 풍경이 달라 한 번의 방문으로 건봉사를 다 보았다고 말하기 어렵다. 봄에는 꽃길을 걷고, 가을에는 능파교 주변의 단풍을 보고, 겨울에는 설경을 찾아 다시 올 이유가 생긴다.

눈 덮인 금강산 자락과 건봉사 전각을 내려다본 겨울 항공 전경
눈이 내리면 건봉사 전각과 금강산 자락 전체가 흰빛에 잠기며 산사의 고요가 깊어진다. 이미지 제공: 고성군청

아이와 부모님이 함께 걷기 좋은 가족여행지

건봉사는 아이와 부모님이 함께 찾았을 때 이야깃거리가 많은 여행지다. 아이에게는 임진왜란과 사명대사, 승병, 6·25전쟁과 문화유산 복원을 한자리에서 설명할 수 있는 역사 현장이 된다.

부모님 세대에게는 전쟁과 분단의 시간을 돌아보는 여행이다. 오랫동안 출입이 제한됐고 전쟁 이후 중창이 더디게 이어졌다는 사실은 고성이라는 접경지역의 역사를 보여준다.

불이문과 능파교, 중심 전각, 적멸보궁을 차례로 둘러보는 데는 가족 기준 약 1시간에서 1시간30분이 적당하다. 전각 수를 채우듯 서두르기보다 계곡과 숲, 넓은 옛 절터를 함께 보는 편이 좋다.

경내에는 쉬어갈 공간이 있어 이동 속도를 낮추기 좋다. 어린아이와 부모님을 동반했다면 능파교와 중심 전각 주변에서 충분히 쉬고 적멸보궁까지 천천히 오르는 일정이 어울린다.

건봉사 둘러보기 순서표. 여행레저신문 제공

한눈에 보는 건봉사 관람 순서

주차장에서 출발해 불이문과 능파교를 지나 중심 전각을 둘러본 뒤 적멸보궁과 진신치아사리탑으로 이어지는 순서가 자연스럽다. 사명대사 관련 유적과 기록도 함께 살펴보고 경내 산책로를 따라 여유롭게 돌아오면 된다.

건봉사에서 화진포와 대진항, 명파해수욕장, 통일전망대로 이어지는 고성 북부 가족여행 동선지도
건봉사에서 화진포와 대진항, 명파해수욕장을 거쳐 통일안보공원·DMZ박물관·통일전망타워로 이어지는 고성 북부 가족여행 동선. 그래픽=여행레저신문

건봉사와 함께 둘러보는 고성 북부 가족여행

건봉사를 둘러본 다음 여행지는 화진포가 좋다. 산사와 호수, 역사와 바다로 풍경이 자연스럽게 바뀌고, 대진항과 명파해수욕장까지 동선이 이어진다.

당일 가족여행은 건봉사에서 화진포와 대진항, 명파해수욕장으로 이동하는 코스가 알맞다. 산사를 걸은 뒤 호수 풍경을 보고 항구에서 식사한 다음 해변에서 쉬는 흐름이다.

1박2일이라면 첫날 건봉사·화진포·대진항·명파해수욕장을 보고, 둘째 날 통일안보공원에서 출입 절차를 마친 뒤 DMZ박물관과 통일전망타워를 둘러보는 일정이 좋다.

건봉사에서 화진포로 이어지는 길은 고성 북부 여행의 성격을 넓혀준다. 신라와 조선, 임진왜란과 6·25전쟁의 시간을 지나 호수와 바다, 분단의 현장까지 한 여행 안에서 만날 수 있다.

건봉사 핵심정보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 거진읍 건봉사로 723
관람료: 무료
주차: 무료 주차장 이용
추천 관람: 불이문 → 능파교 → 중심 전각 → 적멸보궁 → 진신치아사리탑
예상 소요시간: 약 1시간~1시간30분
추천 계절: 봄 벚꽃, 가을 단풍, 겨울 설경
문의: 033-682-8100

사찰 행사나 중창 공사, 기상 상황에 따라 일부 관람 동선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방문 전 확인하는 것이 좋다.

건봉사 다음 여행지는 화진포

건봉사에서 산사와 호국의 역사를 만났다면 다음 여행은 화진포로 이어진다. 바다처럼 넓은 호수와 해변, 이승만·김일성 별장 등 근현대사의 현장을 함께 둘러볼 수 있어 가족여행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 바다와 호수, 근현대사가 만나는 고성 화진포 가족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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