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레저신문 ㅣ 김정호기자
강원 동해 두타산은 ‘한국의 장가계’라는 별칭으로 자주 불린다. 과한 표현처럼 들리지만, 베틀바위 산성길과 협곡 마천루 구간에 들어서면 그 말이 왜 나왔는지 금세 이해된다. 숲 사이로 갑자기 솟아오른 바위 능선, 절벽 옆에 붙은 데크길, 발아래로 깊게 내려앉은 협곡과 무릉계곡의 물줄기가 한꺼번에 펼쳐진다. 동해의 바다만 생각하고 온 여행자에게 두타산은 전혀 다른 얼굴의 강원도를 보여준다.
두타산 트레킹의 출발점은 보통 무릉계곡이다. 무릉계곡은 두타산과 청옥산을 배경으로 호암소에서 용추폭포까지 이어지는 동해의 대표 계곡이다. 계곡 초입의 무릉반석, 삼화사, 학소대, 쌍폭포, 용추폭포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면, 최근 여행자들이 더 강하게 반응하는 곳은 베틀바위 산성길과 협곡 마천루다. 과거에는 접근이 쉽지 않았던 절벽과 암릉 비경이 탐방로 정비 이후 일반 등산객에게도 열리면서 두타산의 인상이 달라졌다.
베틀바위 산성길, 두타산의 숨은 얼굴을 열다
베틀바위 산성길은 무릉계곡관리사무소에서 시작해 베틀바위 전망대와 두타산성 방향으로 이어지는 산길이다. 한국관광공사 안내에 따르면 이 길은 2020년 8월 1일 부분 개방됐고, 무릉계곡관리사무소에서 박달계곡 방향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총 4.7km 구간을 바탕으로 조성됐다. 새로 놓인 탐방로가 베틀바위와 두타산성을 잇는 코스여서 ‘베틀바위 산성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길의 첫 인상은 ‘편한 산책로’가 아니다. 무릉계곡에서 숲길로 접어들면 곧바로 오르막과 돌계단이 이어진다. 베틀바위 전망대까지는 숨이 차는 구간이 많다. 그러나 힘든 구간을 지나 시야가 열리는 순간, 보상은 확실하다. 거대한 바위들이 수직으로 솟아 있고, 능선 아래로 무릉계곡과 동해 쪽 산자락이 겹겹이 내려다보인다.
베틀바위라는 이름은 바위들이 베틀처럼 솟은 모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전망대에서 보면 바위 봉우리들이 단순한 암벽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결을 가진 조형물처럼 서 있다. 한국의 산에서 흔히 보는 둥글고 부드러운 산세와 달리, 이곳은 바위의 선이 날카롭고 수직감이 강하다. 이 때문에 ‘장가계’라는 비유가 따라붙었지만, 두타산의 풍경은 동해 무릉계곡의 숲과 계곡, 삼화사의 시간까지 함께 품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적인 매력이 있다.
협곡 마천루, 절벽 옆에서 만나는 압도감
베틀바위 산성길의 다음 하이라이트는 협곡 마천루다. 이름부터 강렬하다. 협곡을 이루는 기암절벽이 마치 도시의 고층 건물처럼 솟아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 구간에서는 절벽을 따라 놓인 데크와 전망 동선이 이어지며, 두타산의 협곡미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원자료처럼 “4.7km 전체가 허공 데크길”이라고 이해하면 곤란하다. 정확히는 베틀바위 산성길과 협곡 마천루를 포함한 산길 전체 동선 안에 데크와 전망 구간이 들어가 있는 구조다. 데크가 있어 안전하게 조망할 수 있지만, 길 전체가 평탄한 관광 데크는 아니다. 오르막과 내리막, 돌길, 계단이 계속 섞인다. 체력 안배가 필요한 산길이다.

협곡 마천루의 매력은 눈높이가 달라진다는 데 있다. 계곡 아래에서 올려다보던 바위를 이곳에서는 옆에서, 때로는 위에서 본다. 바위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산이 평면 풍경이 아니라 입체적인 공간으로 다가온다. 발아래 협곡은 깊고, 맞은편 암릉은 가까우며, 데크 끝 전망 지점에서는 두타산의 스케일이 한 번에 들어온다.
무릉계곡·쌍폭포·용추폭포까지 묶어야 완성된다
두타산 트레킹은 베틀바위와 협곡 마천루만 보고 끝내기엔 아깝다. 이 코스의 완성은 무릉계곡으로 내려오면서 쌍폭포와 용추폭포를 함께 만나는 데 있다. 무릉계곡은 오래전부터 동해의 대표 명소였다. 고려 시대 문인 이승휴가 머물며 《제왕운기》를 저술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고, 조선 시대 문인들이 계곡의 풍경을 글로 남겼다.
쌍폭포와 용추폭포는 산행의 마지막에 만나는 시원한 장면이다. 비가 온 뒤 수량이 좋을 때는 폭포의 힘이 훨씬 크게 느껴진다. 여름에는 계곡의 물소리와 숲 그늘이 산행의 피로를 덜어주고, 가을에는 단풍과 암벽이 함께 어우러진다. 베틀바위가 암릉의 절정이라면, 무릉계곡은 이 코스의 숨을 고르는 구간이다.
추천 동선은 무릉계곡관리사무소에서 출발해 베틀바위 전망대, 미륵바위, 산성길, 협곡 마천루, 쌍폭포, 용추폭포, 삼화사, 무릉반석으로 돌아오는 순환형 코스다. 체력과 촬영 시간에 따라 4시간에서 5시간 이상 걸릴 수 있다. 가볍게 산책하러 온 사람이라면 무릉계곡과 삼화사, 쌍폭포·용추폭포 위주로 짧게 잡는 편이 낫다.
‘누구나 안전하게’보다 ‘준비하면 충분히’가 맞다
두타산 베틀바위 산성길을 소개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할 점은 난이도다. 데크길이 놓였다고 해서 누구나 쉽게 걷는 평지 산책로로 생각하면 안 된다. 베틀바위 전망대까지 오르는 구간은 경사가 있고, 협곡 마천루까지 이어지는 동선도 산길 체력이 필요하다. 무릎이 약한 사람,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 산행 경험이 적은 여행자는 코스를 줄이거나 무릉계곡 중심으로 일정을 조정하는 것이 좋다.
신발은 반드시 접지력 좋은 트레킹화를 권한다. 운동화도 가능하다고 쉽게 말하기 어렵다. 비 온 뒤 바위와 데크는 미끄러울 수 있고, 계단 구간에서는 무릎에 부담이 간다. 스틱, 장갑, 충분한 물, 간식, 여벌 옷을 준비하면 훨씬 안전하다. 여름에는 더위와 습도, 겨울에는 결빙과 낙상 위험을 고려해야 한다.
안개 낀 아침은 사진으로는 아름답지만, 실제 산행에서는 시야 확보가 어려울 수 있다. 전망을 제대로 보려면 날씨가 맑은 날이 좋고, 운해를 노린다면 산행 경험이 있는 사람이 동행하는 편이 안전하다. 산에서는 멋진 사진보다 안전한 귀가가 먼저다.
동해 여행의 새로운 축, 바다에서 산으로
동해시는 바다 여행지로 먼저 떠오르는 도시다. 망상해변, 추암촛대바위, 묵호등대, 도째비골 스카이밸리처럼 해안 관광 자원이 강하다. 그러나 두타산과 무릉계곡을 함께 넣으면 동해 여행의 폭이 넓어진다. 오전에는 두타산 트레킹을 하고, 오후에는 묵호나 추암으로 내려가 바다를 보는 식의 1박 2일 일정도 가능하다.
무릉계곡 주변에는 식당과 카페, 숙박 시설도 있어 산행 전후로 쉬어가기 좋다. 산행을 길게 잡는다면 무릉계곡 인근에서 하루 묵고 아침 일찍 출발하는 방식이 안전하다. 당일치기로 간다면 너무 늦게 출발하지 않는 것이 좋다. 산행 시간이 길어질 경우 해가 지기 전 하산해야 한다.
두타산 베틀바위 산성길과 협곡 마천루는 단순한 인증샷 명소가 아니다. 걷는 사람에게 땀을 요구하고, 대신 쉽게 볼 수 없는 바위와 협곡의 장면을 내준다. 중국 장가계와 비교하는 말은 홍보 문구로는 강하지만, 실제로 이 길을 걷고 나면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된다. 동해 두타산에는 두타산만의 깊은 암릉, 무릉계곡의 물소리, 삼화사의 고요함이 있다. 그 세 가지가 한 코스 안에서 만나는 것이 이 길의 진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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