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의 기로에 선 여행업계, 누가 위기를 말할 것인가

한국여행업협회·한국관광협회중앙회·대형 여행사·정부까지, 위기 앞에서 현장의 고통을 말하지 않는 구조를 묻는다

여행업계 침묵과 대표 역할 부재를 상징하는 빈 회의실
위기의 현장 앞에서 업계를 대변해야 할 협회와 정부의 목소리는 충분히 들리지 않는다.

이정찬 기자 ㅣ 여행레저신문

생사의 기로에 내몰려 있으면서도 제대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산업이 있다. 대한민국 여행업계다. 어떤 산업이건 위기와 시련의 시간은 있게 마련이다. 위기에 봉착하면 현장의 고통을 정부에 전달하고, 잘못된 정책에는 잘못됐다고 말하며, 산업의 생존을 걸고 싸워야 할 대표자가 있어야 한다. 여행업계에도 대표자는 있다. 한국여행업협회도 있고, 한국관광협회중앙회도 있으며, 시장을 이끌어 온 대형 여행사들도 있다. 그러나 이름만 대표이고 행동이 없으니 대표라고 할 수가 없다. 여행사는 무너지고, 종사자는 떠나고, 중소업체는 고환율과 고유가 앞에서 다시 벼랑 끝으로 밀려나는데, 협회도, 대형 여행사도, 정부도 현장의 위기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시 닥친 위기보다 더 참담한 것은 대표자를 자처하는 이들이 여전히 대표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 여행업계의 위기는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다. 최근 10여 년간 여행업계의 위기는 끊이지 않았고, 산업의 존망을 위협하는 사건들이 거의 쉼 없이 이어졌다. 세월호 참사 이후 단체여행 시장은 크게 위축됐고, 메르스 사태는 방한 관광과 국내 관광 소비를 동시에 흔들었으며, 사드 갈등은 중국 인바운드 시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여기에 온라인 플랫폼과 OTA의 급성장, 항공권 직접구매 확산, 여행 소비 방식의 변화까지 겹치며 전통 여행사의 입지는 이미 빠르게 좁아지고 있었다. 이런 흐름 위에서 2019년 노재팬 운동이 터졌다.

2019년 노재팬 운동 당시 일본을 주력으로 하던 수많은 여행사는 정치·외교 갈등과 소비자 정서의 거대한 파도 앞에서 사실상 무방비로 흔들렸다. 일본 여행 시장의 급격한 위축은 특정 목적지 하나의 문제가 아니었다. 일본 노선에 의존하던 중소 여행사, 랜드사, 항공 좌석 판매, 지역 출발 상품, 가이드와 인솔자까지 연결된 생태계 전체의 충격이었다. 그때 업계를 대표한다는 단체들은 얼마나 분명한 목소리를 냈는가.

코로나19 이후 회복이 더딘 여행사 사무실
노재팬, 코로나19, 고환율과 고유가를 거치며 여행업계의 체력은 크게 약해졌다.

그 뒤에 온 코로나19는 말 그대로 산업의 기반을 무너뜨렸다. 국경이 닫히고 항공편이 멈췄으며, 여행사는 팔 상품 자체를 잃었다. 여행업 종사자들은 떠났고, 오래 쌓아온 상담·기획·수배·인솔의 전문성은 현장에서 빠져나갔다. 팬데믹이 끝났다고 하지만 여행업은 아직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업체 숫자가 늘었다고 해서 회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매출과 고용, 산업의 질적 체력이다. 현장에서는 사람을 다시 구하기 어렵고, 중소 여행사의 버틸 힘은 약해졌다.

이제 겨우 숨을 고르려는 시점에 다시 고환율과 고유가가 업계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해외여행은 항공권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환율은 호텔비와 식비, 차량비와 입장료, 현지 행사비와 카드 결제액을 모두 흔든다. 유류할증료가 한때 낮아져도 고환율이 버티면 소비자의 체감 여행비는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 중동 리스크와 항공유 시장 불안까지 겹치면 장거리 해외여행은 다시 관망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다. 여행업계 입장에서 이것은 단순한 비용 상승이 아니라 수요 자체를 얼어붙게 만드는 구조적 압박이다.

그런데 이상할 만큼 조용하다. 업계가 이렇게 긴 시간 위기를 겪고 있는데도, 정부를 향해 정면으로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충분히 크지 않다. 협회는 성명 몇 줄로 끝낼 일이 아니라 산업의 생존 논리를 만들어야 한다. 해외여행업이 무너지면 항공 네트워크도 약해지고, 항공 네트워크가 약해지면 인바운드 관광과 MICE, 지역 관광, 국제 교류까지 영향을 받는다는 구조를 정부와 국회에 집요하게 설명해야 한다. 그런데 여행업계의 대표 스피커는 그 일을 제대로 해 왔는가.

이 침묵의 배경에는 더 오래되고 더 불편한 문제가 있다. 한국 여행업계에는 분명히 대표 단체가 존재한다. 한국여행업협회와 한국관광협회중앙회가 있고, 시장을 이끌어 온 대형 여행사들도 있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마다 이들이 산업 전체의 이름으로 정부를 향해 얼마나 분명하게 말했는지는 따져볼 일이다. 여행사가 줄줄이 폐업하고, 종사자가 현장을 떠나고, 중소 여행사가 고환율과 고유가 앞에서 다시 벼랑 끝으로 밀려나는 동안, 업계를 대표한다는 조직들은 과연 무엇을 했는가.

한국여행업협회는 여행사를 대표하는 단체다. 그렇다면 여행업이 생사의 위기에 몰렸을 때 가장 먼저 정부와 국회 앞에 서야 할 곳도 한국여행업협회여야 한다. 그러나 현장의 체감은 다르다. 위기 때마다 들려오는 것은 강한 산업 논리도, 정부를 향한 정면 요구도, 국민에게 설명하는 공개 메시지도 아니었다. 행사와 의전, 정부 사업과 회의는 보이지만, 정작 여행업이 이렇게 죽어가고 있다는 절박한 대표 발언은 충분히 보이지 않았다. 대표 단체가 있다면 대표 기능을 해야 한다. 이름만 대표이고 행동이 없다면, 그것은 대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한국관광협회중앙회도 마찬가지다. 관광산업 전체를 아우르는 중앙 조직이라면, 여행업의 위기를 단순한 한 업종의 어려움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여행업은 항공, 숙박, 지역관광, MICE, 인바운드와 아웃바운드를 잇는 관광산업의 혈관이다. 해외여행업이 무너지면 항공 네트워크가 약해지고, 항공 네트워크가 약해지면 외국인 관광객 유치와 국제회의, 지역 관광까지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도 중앙 단위의 관광 대표 조직이 이 구조를 정부와 사회에 강하게 설명하지 못했다면, 그 책임 역시 가볍지 않다.

대형 여행사들도 자유롭지 않다. 하나투어와 모두투어 같은 대형사는 각자의 생존과 실적 관리에 바쁘다. 기업이 자기 회사를 먼저 챙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시장을 이끌어온 기업들이 업계 전체의 위기 앞에서 공적 발언을 거의 하지 않는 현실은 씁쓸하다. 중소 여행사는 말할 힘이 없고, 대형사는 자기 생존에 바쁘고, 협회는 정부와의 관계를 의식한다면 결국 업계 전체를 대표해 말할 주체는 사라진다. 지금 여행업계의 가장 큰 비극은 위기 그 자체만이 아니다. 위기를 위기라고 크게 말할 대표 역할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특정 개인이나 특정 단체 하나로만 좁혀서는 안 된다. 더 본질적인 것은 구조다. 협회가 정부 보조사업을 수행하고, 정부와 행정적으로 긴밀히 연결되고, 정부 출신 인사가 상근 임원으로 이동하는 구조가 반복될수록 협회는 정부를 향해 날카로운 문제 제기를 하기 어려워진다. 행정 경험과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설명은 가능하다. 그러나 그 결과가 업계의 권익 대변이 아니라 정부 눈치를 보는 침묵으로 나타난다면, 그 구조는 업계를 위한 통로가 아니라 업계의 목소리를 낮추는 완충장치가 된다.

그래서 지금 물어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한국여행업협회는 여행사가 죽어갈 때 무엇을 했는가. 한국관광협회중앙회는 관광산업의 한 축이 무너질 때 어떤 공개적 요구를 했는가. 대형 여행사들은 시장 전체의 위기 앞에서 어떤 책임 있는 목소리를 냈는가. 정부는 왜 해외여행업을 관광산업 생태계의 핵심 축으로 보지 않는가. 대표 단체도, 대형 사업자도, 정부도 침묵한다면 현장은 어디에 호소해야 하는가.

관광정책의 침묵을 상징하는 닫힌 공공기관 복도
해외여행업을 단순한 외화 소비로 보는 낡은 시각을 넘어 관광산업 전체의 생태계로 봐야 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정부의 시각이다. 정부는 인바운드 유치와 내수 관광 활성화에는 비교적 적극적이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 지역관광 캠페인, 숙박 할인, 축제 지원, 관광기금 융자 같은 정책은 계속 나온다. 물론 그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해외여행업, 즉 아웃바운드 여행업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낡았다. 해외여행을 외화 낭비로 보던 시대의 그림자가 정책 감각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은 아닌가. 내국인이 해외로 나가 쓰는 돈만 보고, 그 여행을 설계하고 판매하고 관리하는 국내 여행업의 산업적 가치는 충분히 보지 않는 것은 아닌가.

아웃바운드는 단순한 달러 유출이 아니다. 항공기는 왕복으로 움직인다. 한국인의 해외여행 수요가 있어야 글로벌 항공사가 한국 노선을 유지하고, 그 항공편을 통해 외국인 관광객과 비즈니스 수요도 한국으로 들어온다. 해외여행을 다루는 여행사는 단순 판매업체가 아니라 항공 좌석, 현지 네트워크, 보험, 안전관리, 소비자 보호, 국제 교류를 연결하는 산업 장치다. 아웃바운드가 무너지면 인바운드만 따로 건강할 수 없다. 관광산업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수로가 아니라 왕복으로 순환하는 생태계다.

그런데도 정부 정책은 여전히 단편적이다. 위기가 닥치면 융자, 보증, 한시 지원이 나온다. 필요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여행업계가 겪는 문제는 일시적 유동성 위기를 넘어섰다. 인력 이탈, 수익률 악화, 항공 좌석 구조 변화, OTA와 플랫폼 경쟁, 환율 리스크, 국제정세 리스크, 소비자 보호 비용까지 겹친 복합 위기다. 이런 산업에 단기 자금만 던져주고 버티라고 말하는 것은 정책이 아니다. 업종별 체력 회복, 전문인력 재진입, 여행사 디지털 전환, 안전관리 비용 보전, 중소 여행사 공동 마케팅, 아웃바운드와 인바운드를 잇는 항공 네트워크 전략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

협회들도 달라져야 한다. 정부 보조사업을 전달하고, 행사에 참석하고, 회원사 공문을 돌리는 것만으로는 대표 단체라 할 수 없다. 협회가 진짜 업계 대표라면 위기 때 가장 먼저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일본 시장이 무너졌을 때, 팬데믹으로 여행업이 멈췄을 때, 고환율과 고유가로 해외여행 수요가 다시 위축될 때, 협회는 정부와 국회 앞에 숫자와 논리, 현장 사례를 들고 서야 했다. 업계가 죽어가는데도 조용한 대표 단체는 존재 이유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적 구호가 아니라 정직한 문제 제기다. 여행업계가 왜 다시 위기인지, 아웃바운드가 왜 국가 관광산업의 한 축인지, 정부가 어떤 지원을 해야 하는지, 협회가 왜 더 강한 대표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따져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협회 핵심 임원 구조도 투명하게 공개하고 검증해야 한다. 정부 출신 인사가 필요하다면 왜 필요한지, 어떤 성과를 냈는지, 업계 권익을 위해 정부에 어떤 쓴소리를 했는지 설명해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낙하산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침묵은 금이 아니다. 생사의 위기에 처한 산업에서 침묵은 공멸을 부르는 독이다. 여행업계가 다시 살아나려면 정부가 먼저 아웃바운드를 바라보는 낡은 인식을 버려야 하고, 협회는 관변적 태도에서 벗어나 현장의 대변자로 돌아와야 한다. 해외여행업을 외화 낭비로 보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항공 네트워크와 관광 생태계, 소비자 보호와 국제 교류를 지탱하는 산업으로 봐야 한다.

다시 묻는다. 생사의 기로에 선 여행업계를 위해 지금 누가 말하고 있는가. 정부의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할 대표자는 어디에 있는가. 업계의 이름으로 회비를 걷고, 정부 사업을 맡고, 행사장에서 축사를 나누는 이들이 정작 위기 앞에서 침묵한다면, 그들은 업계의 대표인가, 아니면 정부와 업계 사이에 놓인 완충장치에 불과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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