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레저신문 ㅣ 김정호기자
제주 본섬에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야 만날 수 있는 추자도는 제주와 남해의 풍경이 한 섬 안에서 겹치는 곳이다. 낮은 어촌 마을과 항구 뒤편으로 가파른 산세가 솟고, 산등성이를 넘으면 거친 암벽과 짙은 바다가 맞닿는다.
상추자도의 나바론하늘길은 이러한 추자도의 지형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길이다. 나바론절벽의 높이는 해발 129.7m, 트레킹 구간은 약 2.1km다. 절벽과 숲길, 계단, 능선이 짧은 구간 안에 연속적으로 등장해 거리만 보고 가볍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영화 속 요새를 닮은 수직 암벽
‘나바론’이라는 이름은 제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영화 ‘나바론 요새’에서 비롯됐다. 추자도를 찾던 낚시꾼들이 바다에서 바라본 절벽의 거칠고 험준한 모습이 영화 속 요새를 닮았다며 부르기 시작한 이름이 지역 명칭으로 자리 잡았다.

회색 암벽은 바다에서 거의 수직으로 치솟고, 바위 사이에는 해풍을 견딘 소나무와 낮은 관목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멀리서 보면 사람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을 것처럼 거칠지만, 능선 위에는 계단과 탐방로가 이어진다.
용둠벙전망대에서 시작되는 압도적인 조망
나바론하늘길의 대표 조망점은 용둠벙전망대다. 전망대에 서면 바다 쪽으로 길게 뻗은 절벽과 능선, 주변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바다의 색과 암벽의 결이 뚜렷하게 대비되고, 흐린 날에는 절벽이 구름과 해무 속으로 이어지며 한층 거친 분위기를 만든다.
‘둠벙’은 물이 고인 웅덩이를 뜻한다. 용둠벙에는 용굴에서 이무기가 승천했다는 지역 전설도 전해진다. 전망대를 지나면 경사가 급한 계단과 능선 구간이 이어지면서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된다.

바다를 양옆에 두고 걷는 능선길
코스의 매력은 어느 한 전망대에 머물지 않는다. 탐방로를 따라 움직일 때마다 바다와 절벽의 위치가 바뀌며 새로운 풍경이 열린다. 한쪽으로는 수직 암벽 아래 파도가 부딪치고, 다른 쪽으로는 추자항과 마을, 산자락이 내려다보인다.
구불구불한 능선에서는 제주해협과 주변 무인도가 수평선 위에 겹쳐진다. 길 일부는 나무 계단과 안전시설이 설치돼 있지만, 고도감이 크고 경사가 가파른 구간도 적지 않다.
짧지만 만만하지 않은 2.1km
전체 거리는 2.1km지만 평지 산책로와는 운동 강도가 다르다. 연속된 계단과 오르막, 바위가 드러난 구간을 지나야 하고, 바람이 강한 날에는 능선 위에서 몸의 균형을 잡기도 쉽지 않다.

등산화나 접지력이 좋은 운동화를 착용하고 물을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비가 오거나 바위가 젖은 날, 강풍과 짙은 해무가 낀 날에는 무리하게 진입하지 않는 편이 안전하다. 절벽 가장자리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안전시설 밖으로 나가는 행동도 피해야 한다.
추자올레와 함께 걷는 섬 여행
나바론하늘길은 추자올레 18-1코스 일정에 함께 넣기 좋은 대표 구간이다. 상추자항과 봉골레산, 용둠벙전망대, 추자등대 등을 연결하면 추자도의 항구와 마을, 산과 바다를 한 번에 경험할 수 있다.
추자도에는 최영장군사당과 추자등대, 추자교, 영흥리 벽화골목 등 걸어서 만나기 좋은 장소도 이어진다. 최영장군사당에는 고려 말 제주로 향하던 최영 장군이 풍랑을 피해 추자도에 머물며 주민들에게 어로법을 알려줬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배 시간보다 날씨를 먼저 살펴야
추자도 여행은 선박 운항 여부가 일정 전체를 좌우한다. 제주항과 전남 지역 항만에서 여객선을 이용할 수 있지만 출항지와 운항 시간은 시기와 선사에 따라 달라진다. 바람과 파도가 강하면 지연되거나 결항할 수 있으므로 출발 전날과 당일에 운항 정보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
나바론하늘길 이용료는 없다. 다만 선박 운임과 섬 내 교통비는 별도다. 섬에서는 공영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배차 간격과 운행 구간을 고려해 걷는 시간과 귀항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야 한다.
일몰은 나바론절벽의 윤곽을 가장 강렬하게 보여주지만, 해가 진 뒤 능선과 계단을 내려오는 것은 위험하다. 숙박 여행이 아니라면 일몰 풍경만 좇기보다 여객선 출항 시간과 하산 소요시간을 우선해 일정을 짜는 것이 안전하다.

추자도 나바론하늘길은 편안하게 바다를 구경하는 전망 산책로가 아니다. 짧은 거리 안에서 계단과 숲길, 거친 절벽과 능선을 차례로 통과해야 하는 산악형 해안길이다. 그러나 그 수고를 감수하고 능선에 올라서면 제주 본섬에서는 보기 어려운 추자군도의 깊고 거친 바다 풍경이 여행자를 기다린다.
나바론하늘길 여행정보
위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 상추자도 일대
대표 구간 용둠벙전망대–나바론절벽–큰산 능선 일대
거리 약 2.1km
높이 나바론절벽 해발 129.7m
이용료 무료
난이도 계단과 급경사, 암릉이 이어지는 어려운 구간
준비물 등산화 또는 접지력 좋은 운동화, 물, 모자, 바람막이
주의사항 비·강풍·해무 시 진입 자제, 선박 운항과 귀항 시간 사전 확인
연계 여행지 추자등대, 봉골레산, 최영장군사당, 영흥리 벽화골목, 추자올레 18-1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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