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레저신문 ㅣ 김미래기자
충남 아산시 인주면의 낮은 언덕에 오르면 울창한 나무 사이로 붉은 벽돌 성당의 첨탑이 모습을 드러낸다. 계단 위에 단정하게 선 정면부와 길게 이어진 측면 벽, 회색 석재 장식이 어우러진 공세리성당이다.
‘아름다운 성당’이라는 수식어만으로는 이곳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공세리성당은 100년 넘은 근대 건축물이자 조선시대 세곡 창고가 있던 역사 공간이며, 천주교 박해와 순교의 기억을 간직한 성지다.
본당의 시작은 18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산 간양골에서 출발한 본당은 1895년 공세리로 옮겨왔고, 1922년 현재의 성당과 사제관을 완공했다. 성당과 옛 사제관은 건축·문화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8년 충청남도 기념물 제144호로 지정됐다.
조선시대 공세곶창 터에서 시작된 성당의 역사
공세리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보관하던 공세곶창에서 비롯됐다. 이곳에서는 충청도 여러 지역에서 거둔 세곡을 모아 조운선을 통해 서울로 보냈다. 약 300년간 운영된 창고가 사라진 자리에는 오늘날 공세리성당이 들어서 있다.

공세리성당의 초기 역사를 이끈 인물은 에밀 피에르 드비즈 신부다. 그는 공세곶창의 옛 창고 터를 확보해 한옥 성당과 사제관을 세웠고, 1919년부터 새로운 성당 건립을 추진했다.
중국인 기술자와 신자들이 공사에 참여한 끝에 1922년 10월 현재의 성당과 사제관이 완공됐다. 붉은 벽돌을 중심으로 회색 석재 장식을 배치하고 정면 중앙에 높은 첨탑을 세운 건물은 당시 지역에서 보기 드문 서양식 종교 건축이었다.
정면과 측면이 서로 다른 고딕 건축의 표정
성당 정면은 중앙 첨탑을 중심으로 좌우 균형을 맞춘 구조다. 넓은 돌계단을 올라가면 뾰족한 아치 형태의 출입구와 원형 창, 수직으로 길게 뻗은 탑이 차례로 시선을 끌어올린다.
측면으로 이동하면 건물의 또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긴 박공지붕 아래로 아치형 창문이 반복되고, 붉은 벽돌과 회색 구조물이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진다. 정면이 첨탑의 높이와 상징성을 보여준다면 측면은 본당의 길이와 단정한 비례를 드러낸다.

내부는 두 줄의 열주가 중앙과 측면 공간을 구분하는 삼랑식 구조다. 기둥과 천장, 창문에 반복된 아치는 비교적 크지 않은 내부를 깊고 차분하게 보이게 한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빛과 오래된 목재 의자가 어우러져 외관과는 다른 절제된 분위기를 만든다.
아름다운 건축 안에 남은 순교의 역사
공세리성당은 아산 지역 천주교 신앙과 순교 역사를 기억하는 성지이기도 하다. 경내에는 병인박해 당시 순교한 인물들의 묘역이 조성돼 있으며, 지금도 순례객들이 미사와 기도를 위해 찾는다.
화려한 외관만 보고 지나치면 공세리성당의 절반만 보는 셈이다. 이곳의 건축은 오랜 박해가 끝난 뒤 신앙 공동체가 공개적으로 뿌리내리기 시작한 시대를 보여준다. 높은 첨탑은 숨어 있던 교회가 지역사회 안으로 모습을 드러낸 변화를 상징한다.
성당 뒤편과 경내를 따라가면 성모상과 기도 공간, 순교 관련 시설이 이어진다. 나무와 둥글게 다듬은 관목에 둘러싸인 성모동굴은 건축물을 감상하는 동선에서 잠시 벗어나 조용히 머물 수 있는 공간이다.

옛 사제관에서 만나는 공세리성당의 기록
성당 옆 붉은 벽돌 건물은 1922년 본당과 함께 세워진 옛 사제관이다. 현재는 성지박물관으로 활용돼 공세리성당과 내포 지역 천주교의 역사를 보여준다.
박물관에는 대전교구 최초의 감실과 드비즈 신부 관련 유물 등 천주교 자료가 전시돼 있다. 옛 사제관은 본당과 외관이 닮았지만 전면 계단과 주거 건축에 가까운 구조를 갖춰 두 건물을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다.
박물관 운영시간은 변경될 수 있어 방문 전에 성당에 확인하는 것이 안전하다. 공식 연락처는 041-533-8181이다.
오래된 나무가 완성하는 공세리성당의 여름 풍경
공세리성당의 풍경을 특별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요소는 경내를 둘러싼 오래된 나무다. 수백 년 된 느티나무를 비롯한 수림이 성당 주변을 감싸고 있어 붉은 벽돌 건축과 짙은 녹음이 강한 대비를 이룬다.

여름에는 넓게 퍼진 가지가 그늘을 만들고, 나뭇잎 사이로 들어온 빛이 성당 외벽과 정원 위에 내려앉는다. 정면 계단 아래에서는 첨탑의 균형을 담을 수 있고, 측면 정원에서는 나무와 지붕, 아치형 창문이 어우러진 한층 부드러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이러한 경관 덕분에 공세리성당은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도 꾸준히 활용됐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비롯한 여러 작품이 이곳의 근대 건축과 정원을 배경으로 삼았다.
공세리성당은 단순히 사진이 아름다운 종교시설이 아니다. 조선시대 세곡 창고의 역사와 근대 천주교의 성장, 순교자의 기억, 1922년 건축이 한 공간에 겹쳐 있다. 성당의 진짜 모습은 붉은 벽돌 외관뿐 아니라 그 건물이 서 있는 땅과 경내에 남은 시간을 함께 살펴볼 때 비로소 드러난다.
공세리성당 여행정보
주소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성당길 10
관람료 무료
관람 유의사항 미사와 종교행사 중 내부 관람 자제
성지박물관 월요일 휴관, 운영시간 방문 전 확인
주차 성당 입구 주차장 이용
문의 041-533-8181
촬영 예절 미사와 기도 중 촬영하지 말고 신자와 방문객의 얼굴 촬영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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