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레저신문 ㅣ 김정호기자
전남 고흥 팔영산은 높이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산이다. 해발 600m 안팎의 산이지만, 능선에 올라서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유영봉에서 적취봉까지 이어지는 여덟 암봉은 바위의 결을 그대로 드러내며 남쪽 바다를 향해 솟아 있고, 그 사이로 고흥반도와 다도해의 섬들이 겹겹이 펼쳐진다. 산행의 밀도만 놓고 보면 팔영산은 남도에서 손꼽히는 암릉 조망 산행지다.
팔영산은 전라남도 고흥군 영남면과 점암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2011년 다도해해상국립공원 팔영산지구로 편입돼 국립공원으로 관리되고 있다. 정상부에는 응회암과 주상절리 지형이 발달해 가파른 바위 절벽과 암봉 능선이 만들어졌고, 이 지형이 팔영산 특유의 날카로운 산세를 이룬다. 산은 아주 높지 않지만, 바위 구간과 계단, 쇠난간이 반복돼 실제 체감 난도는 결코 낮지 않다.
능가사에서 시작해 여덟 암봉을 잇는 대표 코스
팔영산 산행의 대표 코스는 능가사에서 출발하는 원점회귀형 코스다. 능가사에서 흔들바위, 1봉 유영봉, 2봉 성주봉, 3봉 생황봉, 4봉 사자봉, 5봉 오로봉, 6봉 두류봉, 7봉 칠성봉, 8봉 적취봉을 지나 탑재를 거쳐 다시 능가사로 돌아오는 길이다. 공식 안내 기준 소요 시간은 약 4시간 30분이지만, 사진 촬영과 휴식, 깃대봉 왕복까지 더하면 일반 산행자는 5시간 안팎을 잡는 것이 현실적이다.

산행은 능가사 일대에서 시작된다. 들머리 초반은 비교적 완만한 숲길이다. 이 구간은 본격적인 암릉에 들어가기 전 몸을 풀기에 알맞다. 그러나 흔들바위와 마당바위를 지나 1봉 유영봉으로 오르는 길부터는 팔영산의 성격이 분명해진다. 경사가 가팔라지고 계단이 많아지며, 발보다 손을 먼저 써야 하는 구간도 나타난다.
팔영산의 진짜 매력은 바다를 곁에 둔 암릉
1봉 유영봉에 올라서면 팔영산 산행의 이유가 바로 드러난다. 지금까지 숲에 가려 있던 바다가 능선 옆으로 터지고, 고흥 앞바다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서부터 8봉 적취봉까지는 짧은 거리의 봉우리들을 잇달아 넘는 암릉 종주다. 봉우리 사이 간격은 길지 않지만 오르내림이 계속되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적지 않다.
이 산의 매력은 단순히 힘든 산이라는 데 있지 않다. 팔영산은 암릉과 바다가 동시에 보이는 산이다. 내륙 산에서 느끼는 숲의 깊이와 달리, 팔영산 능선에서는 바위 능선 바로 옆으로 남해의 수평선이 열린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다도해의 섬들이 겹쳐 보이고, 해무가 끼는 날에는 바다와 섬 사이가 흐릿하게 번지며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등산화와 장갑은 필수, 통제정보 확인해야
초보자에게 팔영산은 쉬운 산이 아니다. 산행 거리가 아주 길지는 않지만, 암릉 오르내림이 반복되고 손을 써야 하는 구간이 있다. 등산화나 접지력 좋은 트레킹화는 필수다. 장갑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쇠난간이나 바위를 잡는 구간에서 손을 보호할 수 있고, 땀이 난 손으로 미끄러지는 것을 줄일 수 있다.

국립공원 구역인 만큼 탐방 전에는 입산 시간과 탐방로 통제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비가 온 직후나 바람이 강한 날에는 암릉 구간의 위험이 커지므로 산행을 미루는 편이 안전하다. 주말과 봄·가을 성수기에는 주차 공간이 빨리 차기 때문에 능가사 주차장을 이용할 계획이라면 이른 시간 도착이 좋다.
고흥을 산과 바다의 여행지로 바꾸는 산
고흥 여행은 흔히 바다, 섬, 우주센터, 소록도, 쑥섬 같은 이미지로 기억된다. 그러나 팔영산을 걸어보면 고흥의 산도 그만큼 강렬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덟 암봉 위에서 내려다보는 다도해는 바닷가 전망대와 전혀 다른 깊이를 지닌다. 발로 올라선 높이와 바람, 바위의 촉감이 풍경에 더해지기 때문이다.
팔영산은 고흥을 드라이브 여행지에서 산과 바다를 함께 걷는 여행지로 바꿔 놓는 산이다. 가벼운 산책을 기대한다면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암릉 산행 경험이 있고 남도 바다 조망을 제대로 보고 싶다면 능가사 원점회귀 코스는 충분히 도전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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