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찬 기자 ㅣ 여행레저신문
한국 관광은 다시 장대한 기치를 내걸었다. 외래관광객 3천만 명, 지역관광 대도약, K-컬처 연계 관광, 고부가 관광산업 육성, MICE와 의료·뷰티·웰니스 관광 확대까지 정부와 업계가 말하는 과제는 어느 때보다 크고 넓다. 코로나19 이후 방한 관광시장은 빠르게 회복하고 있고, K-콘텐츠는 세계인의 일상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드라마와 음악, 음식과 뷰티,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은 한국을 더 이상 낯선 나라가 아니라 한 번쯤 직접 경험하고 싶은 나라로 바꿔놓았다.
그러나 목표가 크다고 해서 정교한 전략이 따라오는 것은 아니다. 3천만 관광객 시대는 선언만으로 열리지 않는다. 시장을 읽는 전략, 그 전략을 설계할 인재, 현장에서 끝까지 집행할 전문 조직이 없다면 거창한 목표는 다시 한 번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관광 선진국은 우연히 많이 찾아오는 나라가 아니다. 세계인이 그 나라를 발견하고, 이동하고, 머무르고, 소비하고, 다시 찾도록 만드는 운영체계를 가진 나라다. 항공 노선과 숙박 인프라, 지역 이동과 언어 서비스, 결제와 예약, 콘텐츠와 플랫폼, 홍보와 광고, 전문 매체와 데이터가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일 때 관광은 비로소 국가전략산업이 된다.

한국 관광이 이 목표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와 극복해야 할 난제가 도처에 놓여 있다. 외래관광객 3천만 명이라는 숫자는 목표일 수 있지만, 그 목표를 산업의 성과로 전환하려면 국가 관광 전략의 실체부터 분명해야 한다. 전략을 설계할 인재, 현장에서 끝까지 집행할 전문 인력과 조직, 콘텐츠와 데이터, 플랫폼과 전문 매체, 민간 산업 생태계를 하나의 운영체계로 묶는 구조가 갖춰지지 않는다면 3천만 관광객 시대는 구호에 머물 수밖에 없다.
목표가 있다고 해서 전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전략은 시장을 읽고, 고객의 이동 경로를 파악하고, 산업 자원을 연결하며, 실행 조직과 예산, 데이터와 콘텐츠, 민간 생태계를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일이다. 한국 관광이 관광 선진국으로 가려면 숫자 목표를 반복하기보다 먼저 이 운영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숫자를 앞세우는 것만으로는 산업이 바뀌지 않는다.
한국은 이미 세계가 주목하는 콘텐츠 국가가 됐다. 서울은 글로벌 도시 경쟁에서 존재감을 키웠고, 부산·제주·강릉·전주·경주·여수·안동·인천·대구·광주 등 여러 지역도 저마다의 관광 자원을 갖고 있다. K-푸드와 K-뷰티, K-팝과 드라마, 전통문화와 현대적 도시 경험은 한국 관광의 강력한 자산이다. 문제는 이 자산이 세계 시장에서 체계적으로 팔리고 있는가에 있다. 여행자가 한국을 발견하고, 정보를 얻고, 예약하고, 지역으로 이동하고, 현지에서 소비하는 전 과정을 국가 전략으로 설계하지 못하면 좋은 자원도 산업의 성과로 전환되기 어렵다.
관광은 더 이상 축제 몇 개를 열고,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서포터즈를 운영하고, 캠페인 이름을 바꾸는 방식으로 성장하는 산업이 아니다. 여행자는 검색하고, 비교하고, 영상을 보고, 플랫폼에서 예약하고, 이제는 생성형 AI에게 여행 일정을 묻는다. 관광산업은 항공, 숙박, 교통, 음식, 쇼핑, MICE, 지역관광, 콘텐츠, 광고, 데이터, 플랫폼, 전문 매체가 함께 움직이는 복합 산업이다. 이 복잡한 산업을 행정 홍보와 단기 행사 중심으로 다루는 한 한국 관광은 선진국형 산업으로 도약하기 어렵다.
여행레저신문은 이번 기획 시리즈를 통해 한국 관광이 왜 세계적 콘텐츠 경쟁력에도 불구하고 관광 선진국으로 도약하지 못하고 있는지 정면으로 다룬다. 이 문제는 특정 기관의 홍보 방식이나 일부 광고 관행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 관광에 실질적인 전략이 부족하고, 그 전략을 수립할 인재와 현장에서 집행할 전문 조직, 산업 전체를 움직일 운영체계가 취약하다는 데 있다. 이번 시리즈는 바로 그 구조에서 출발한다.
한국 관광은 오랫동안 관광지 개발과 단체관광 수용, 인바운드 여행사의 현장 운영, 가이드와 쇼핑센터 중심 구조를 성장판으로 삼아왔다. 이후 한류와 도시관광, 면세점과 쇼핑, 서울 중심의 방한 수요가 시장을 키웠고, 최근에는 지역관광과 체류형 관광, 로컬 콘텐츠와 국내여행 활성화가 반복적으로 강조됐다. 그러나 세계 관광시장은 이미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관광은 개발과 수용의 시대를 지나 데이터와 플랫폼, AI와 콘텐츠 경쟁의 시대로 이동했다.
관광 4.0은 데이터와 플랫폼의 시대다. 여행자는 포털과 OTA, SNS와 영상 플랫폼, 지도 서비스와 리뷰를 오가며 목적지를 결정한다. 어느 도시를 갈지, 어느 호텔을 예약할지, 어느 식당을 저장할지, 어떤 액티비티를 선택할지는 광고 한 장이나 보도자료 한 줄로 결정되지 않는다. 검색 결과, 영상 노출, 리뷰 신뢰도, 예약 편의성, 결제 접근성, 교통 연결성, 현지 경험의 품질이 함께 작동한다. 관광정책이 이 구조를 읽지 못하면 좋은 자원을 갖고도 시장의 입구를 잃게 된다.
관광 5.0은 AX, 즉 AI 전환의 시대다. 앞으로 여행자는 “한국에서 3박 4일 일정 추천해 달라”, “서울 말고 한국다운 지방 여행지를 알려 달라”, “부산과 경주를 함께 도는 외국인 여행 코스를 짜 달라”고 AI에게 묻게 된다. 그때 AI가 어떤 도시를 추천하고, 어떤 콘텐츠를 근거로 삼으며, 어떤 여행사와 플랫폼, 어떤 지역 정보를 연결할 것인가가 새로운 경쟁력이 된다. 관광 5.0의 자산은 단순한 홍보물이 아니라 AI가 기억할 수 있는 신뢰도 높은 콘텐츠, 구조화된 데이터, 반복적으로 검색되는 브랜드, 시장에서 검증된 전문 정보다.

한국 관광정책은 아직 이 전환을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 관광공사와 관광재단은 지역관광 활성화를 말하지만, 실제 여행자가 지역을 발견하고 예약하고 이동하는 경로는 여전히 허술하다. 지방 도시를 알리겠다고 하면서도 외국인이 그 도시까지 가는 항공·철도·숙박·언어·결제·콘텐츠·예약 구조가 촘촘하게 연결되지 않는다면 지역관광은 구호에 머문다. 서울을 넘어 지역으로 가자고 말하는 것과 지역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시장에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한국 관광의 또 다른 약점은 전략을 설계하고 집행할 전문 인력의 부족이다. 관광은 행정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시장을 읽는 사람, 항공 노선을 이해하는 사람, 여행사의 유통 구조를 아는 사람, 호텔과 MICE 산업을 연결할 사람, 지역 콘텐츠를 상품으로 바꿀 사람, 글로벌 플랫폼과 검색 알고리즘을 해석할 사람, 해외 소비자의 언어로 한국을 팔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순환보직, 단기 용역, 행사 중심 집행, 대행사 의존 구조가 반복된다. 관광을 국가전략산업으로 키우겠다고 하면서 정작 전략가와 실행 전문가를 키우지 않는다면 정책은 매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전문 매체와 산업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도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관광산업은 전문성이 필요한 산업이다. 여행사, 항공, 호텔, MICE, 축제, 지역관광, 해양레저, 마리나, 골프, 웰니스, 국제관광은 각각 다른 시장과 독자를 갖고 있다. 이 복잡한 산업을 일반 행정 홍보와 단발성 보도자료로 설명할 수는 없다. 전문 매체가 살아 있어야 산업의 언어가 만들어지고, 정책과 시장 사이의 통로가 생기며, 지역 관광의 깊이가 축적된다. 전문 매체가 약해지면 관광 정보의 유통망은 포털과 글로벌 플랫폼, 대형 OTA 중심으로 더 빠르게 넘어간다.
홍보와 광고의 문제도 이 구조 안에서 다시 봐야 한다. 한국 관광이 시장을 움직이려면 먼저 전략이 있어야 하고, 그 전략을 전달할 커뮤니케이션 체계가 있어야 한다. 광고 예산을 만들지 않고 관광객을 부르겠다는 생각, 보도자료와 블로그단만으로 외부 여행 수요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 지역 안에서 돈을 나누는 방식으로 지역 밖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다는 생각은 모두 낡은 접근이다. 이것은 광고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관광을 산업 전략으로 보지 못한 결과가 홍보와 광고, 매체 생태계와 콘텐츠 유통 전반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민간 여행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소매여행사 네트워크가 사라지고 FIT가 주류가 된 시대에 고객은 여행사를 찾아오지 않는다. 검색창을 찾고, 유튜브를 보고, OTA를 비교하고, 생성형 AI에게 여행 일정을 묻는다. 글로벌 OTA와 플랫폼 기업은 검색과 앱, 콘텐츠와 데이터, AI 추천 접점을 선점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과 기술을 투입하고 있다. 반면 국내 여행업계가 여전히 상품 수와 가격 경쟁, 단기 판매에 머문다면 미래 고객을 만나는 길목은 계속 외부 플랫폼에 넘어갈 수밖에 없다.
한국 관광이 선진국으로 가려면 숫자를 넘어 구조를 봐야 한다. 외래관광객 3천만 명은 중요한 목표일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전략은 아니다. 관광객 3천만 명을 말하려면 누가 한국을 어떻게 발견하는지, 어떤 콘텐츠가 방한 동기를 만드는지, 어느 지역에서 며칠을 머물게 할 것인지, 어떤 교통과 숙박과 결제 구조가 필요한지, 어떤 민간기업과 전문 매체와 플랫폼을 산업 파트너로 삼을 것인지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 이 구조 없이 숫자만 앞세우면 3천만 관광객 시대는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과 정부가 관광을 국가전략산업으로 본다면 이제 봐야 할 것은 행사장 사진이 아니라 시장의 입구다. 세계인이 한국을 처음 만나는 곳은 공항 입국장이 아니라 검색창이고, 유튜브이며, OTA이고, SNS이며, 앞으로는 AI의 답변이다. 그 입구를 누가 장악하고 있는지 보지 못하면 한국 관광은 좋은 자원을 갖고도 남의 플랫폼 위에서 팔리는 나라에 머물게 된다. 관광 선진국으로 가려면 관광객이 들어오는 길목을 한국 스스로 설계해야 한다.
여행레저신문은 앞으로 이어질 시리즈에서 한국 관광의 구조적 문제를 하나씩 짚어볼 예정이다. 한국 관광에 실질적인 전략이 있는지, 그 전략을 수립할 인재와 집행할 전문 인력이 있는지, 공공 관광 홍보는 왜 시장을 움직이지 못하는지, 관광 광고 예산과 매체 생태계는 왜 산업 전략으로 다뤄지지 못했는지, 지자체와 관광공사·관광재단의 홍보 구조는 왜 지역 밖 관광객을 충분히 불러오지 못하는지, 여행업계는 글로벌 OTA와 AX 시대의 고객 접점 경쟁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차례로 다룰 것이다.
이 시리즈는 특정 기관이나 업계를 겨냥한 단발성 비판이 아니다. 한국 관광이 관광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바꿔야 할 산업 운영체계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려는 시도다. 관광은 더 이상 홍보 행정의 부속물이 아니다. 관광은 도시와 지역을 살리고, 항공과 호텔을 움직이며, 음식과 쇼핑, 문화와 MICE, 콘텐츠와 플랫폼을 연결하는 국가전략산업이다.
한국 관광 5.0은 구호가 아니라 운영체계의 전환이어야 한다. 전략을 세우고, 인재를 키우고, 전문 조직을 만들고, 데이터를 읽고, 콘텐츠를 축적하고, 전문 매체와 민간 산업 생태계를 파트너로 삼아야 한다. 지역관광은 검색과 예약의 언어로 바뀌어야 하고, 공공 홍보는 시장을 움직이는 커뮤니케이션으로 전환돼야 하며, 여행업계는 AI 시대의 고객 접점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한국 관광은 지금 선택해야 한다. 또 한 번 숫자를 앞세운 캠페인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전략과 인재, 조직과 데이터, 콘텐츠와 지역, 전문 매체와 AI를 묶어 관광산업의 운영체계를 바꿀 것인가. 3천만 관광객 시대가 공염불이 되지 않으려면 답은 분명하다. 한국 관광은 더 이상 좋은 자원과 한류의 후광만으로 버틸 수 없다. 이제는 관광 선진국에 걸맞은 전략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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