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재 기자 ㅣ 여행레저신문
올여름 바다의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 해외여행은 여전히 매력적이지만, 고환율과 항공료, 현지 물가를 모두 감당해야 하는 여행이 되면서 가족 단위 여행객에게는 부담이 커졌다. 반대로 국내 해수욕장은 한동안 잊고 있던 여름휴가의 현실적인 선택지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문제는 단순히 국내로 가자는 구호가 아니다. 한국의 해수욕장이 다시 선택받으려면 과거의 바가지요금, 파라솔 자릿세, 알박기 텐트, 불편한 샤워장과 화장실이라는 오래된 기억을 넘어 세계적인 해변 관광지와 견줄 수 있는 공공성과 체류 인프라를 보여줘야 한다.
한국 해수욕장은 한때 여름휴가의 거의 유일한 상징이었다. 7월 말과 8월 초가 되면 동해와 남해, 서해의 주요 해변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볐고, 해운대·경포·대천·속초·송정 같은 이름은 곧 여름의 다른 말이었다. 그러나 그 성수기의 기억은 늘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모래사장 위에 선을 긋고 자리를 나누던 방식, 파라솔과 평상 값을 둘러싼 불쾌한 흥정, 성수기 한철에 최대한 뽑아내려는 상술은 해수욕장을 피곤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점차 해변을 떠났다. 누군가는 해외 리조트로 갔고, 누군가는 호텔 수영장으로 갔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아예 여름 성수기 여행을 포기했다.

고환율 시대, 다시 해수욕장을 봐야 하는 이유
그런데 지금 다시 해수욕장을 보아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첫째는 비용이다. 원·달러 환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해외여행은 항공권만의 문제가 아니라 숙박, 식사, 현지 교통, 쇼핑 비용까지 모두 비싸지는 여행이 됐다. 둘째는 시간이다. 짧은 휴가로 멀리 나가는 여행보다 금요일 퇴근 후 이동하거나 주말 1박 2일로 다녀올 수 있는 해변 여행의 가치가 커졌다. 셋째는 인프라다. 과거 해수욕장은 낮에 물놀이하고 떠나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캠핑장, 차박 가능 구역, 서핑 스쿨, 해양레저, 해변 산책로, 야간 콘텐츠, 지역 맛집과 카페가 결합된 체류형 관광지로 변하고 있다.
본다이 비치가 보여준 도시형 공공 해변
세계적인 해변을 보면 답은 더 분명하다. 호주 시드니의 본다이 비치는 단순히 모래가 고운 해변이어서 유명해진 곳이 아니다. 본다이는 해변과 공원, 해안 산책로, 서핑 문화, 카페와 레스토랑, 해변 안전 시스템이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인 도시형 해변이다. 사람들은 모래사장에 들어가기 위해 돈을 내지 않는다. 대신 해변을 충분히 누린 뒤 주변의 음식점, 카페, 숙박, 문화 콘텐츠에서 기꺼이 소비한다. 바다는 공공의 자산이고, 관광 수익은 서비스의 질에서 나온다는 구조가 작동한다.

와이키키가 보여준 해변 관광 소비 구조
하와이 와이키키도 마찬가지다. 와이키키는 호텔과 쇼핑몰이 밀집한 세계적인 관광지이지만, 해변은 여행자의 눈앞에 열려 있다. 와이키키의 경쟁력은 호텔이 바다를 독점하는 데 있지 않고, 누구나 바다를 바라보고 걸으며, 서핑을 배우고, 카누를 타고, 다이아몬드헤드를 배경으로 하루를 보내는 데 있다. 해변 자체는 공공재에 가깝게 열려 있고, 그 주변에서 숙박·식음·레저·쇼핑·공연이 결합되면서 도시 전체가 관광지로 움직인다.
자연을 파는 해변에서 서비스로 버는 해변으로
이 기준으로 보면 한국 해수욕장의 과거 문제는 분명하다. 자연을 팔아서는 안 되는데, 우리는 한동안 자연에 가격표를 붙였다. 백사장 자체를 상업 구역처럼 나누고, 좋은 자리는 먼저 차지한 사람이 임대하듯 쓰고, 뒤늦게 온 피서객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이 구조에서는 여행자가 다시 오지 않는다. 반대로 좋은 해변은 처음부터 문턱이 낮아야 한다. 바다를 보는 일, 모래사장을 걷는 일, 아이가 파도를 만지는 일, 해 질 무렵 해안선을 따라 걷는 일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 돈을 받으려면 그다음이어야 한다. 깨끗한 샤워장, 안전한 구조 시스템, 맛있는 음식, 좋은 숙소, 매력적인 카페, 수준 높은 레저 프로그램이 소비를 만들어야 한다.
다행히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올해 해수욕장 개장을 앞두고 바가지요금과 알박기 행위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파라솔, 샤워장, 튜브 같은 대여물품의 표준가격을 지자체 누리집 등에 공시하고, 표준가격을 어기는 위탁 운영자에게는 시정 명령과 향후 위탁계약 제한 같은 불이익을 주는 방식이다. 지정되지 않은 장소에 텐트나 취사용품을 설치하거나 차량을 장기간 세워두는 이른바 알박기 행위도 집중 단속 대상이 됐다. 해수욕장이 다시 선택받으려면 이 조치는 단속 이벤트가 아니라 운영의 기본값이 되어야 한다.
안전관리도 달라지고 있다. 해수욕장은 낭만의 공간이지만 동시에 사고 위험이 높은 공간이다. 이안류, 해파리, 음주 입수, 야간 물놀이, 수상레저 구역 혼재는 모두 관리가 필요한 문제다. 안전관리요원 배치, 구명조끼 대여, 유해생물 안내, 방지막 설치, 물놀이 구역과 수상레저 구역 분리 같은 조치는 여행자의 신뢰를 좌우한다. 세계적인 해변은 풍경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안전 시스템이 있어야 가족 여행객이 다시 온다.

양양 서핑이 보여준 체류형 해변의 가능성
한국 해수욕장의 가장 큰 가능성은 다양성에 있다. 동해는 맑고 깊은 물빛과 일출, 서핑, 항구 여행이 강하다. 서해는 갯벌, 낙조, 섬 여행, 가족 체험에 강하다. 남해는 섬과 리아스식 해안, 어촌마을, 해상 케이블카, 해양레저가 어울린다. 제주 해변은 이국적인 물빛과 오름, 카페, 숙박 인프라가 결합된다. 특히 양양 서핑 해변은 한국 해수욕장이 물놀이 중심의 피서지를 넘어 서핑, 카페, 숙박, 야간 소비가 결합된 체류형 해양레저 공간으로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오토캠핑장, 반려동물 동반 여행, 해변 트레킹, 지역 축제, 로컬 미식까지 붙으면 한국 해수욕장은 더 이상 여름 한철 물놀이장에 머물 이유가 없다.

명파해변부터 시작하는 대한민국 해수욕장 100선
강원 고성 명파해변은 이 변화의 출발점으로 상징성이 크다. 명파해변은 동해안 최북단에 자리한 조용한 해변으로, 통일전망대 길목에 있어 고성 북부 여행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주변은 대형 리조트형 해변과 달리 작고 아담하며, 백사장과 기암괴석, 명파천이 어우러져 가족 단위 여행객에게 맞는 차분한 분위기를 지닌다. 여기에 오토캠핑장과 돔하우스 같은 체류 시설이 더해지면서 단순한 해수욕장이 아니라 바다 앞에서 하룻밤 머무는 여행지로 읽힌다. 명파해변은 대형 상권의 화려함보다 한국 해변이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모델에 가깝다.
앞으로 한국 해수욕장 소개는 유명 해변 몇 곳을 반복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해운대와 경포, 대천만 말해서는 부족하다. 명파해변처럼 조용한 최북단 해변, 고성의 아야진과 송지호, 양양의 서핑 해변, 부산 송정과 다대포, 완도의 신지명사십리, 서천 춘장대, 보령 대천, 태안 만리포, 제주 협재와 함덕, 남해 상주은모래비치까지 각 해변은 저마다 다른 여행 이유를 갖고 있다. 누구는 아이와 얕은 바다를 찾고, 누구는 캠핑을 원하며, 누구는 서핑을 배우고, 누구는 바다 앞 카페와 산책로를 원한다. 한국 해수욕장을 다시 살리는 길은 모든 해변을 같은 방식으로 홍보하는 것이 아니라, 각 해변의 성격을 정확히 나누어 소개하는 데 있다.
해수욕장은 싸구려 피서지가 아니라 국민 관광 자산이다
해수욕장은 싸구려 피서지가 아니다. 제대로 운영하면 가장 강력한 국민 관광 자산이다. 입장료를 받지 않아도 지역은 돈을 벌 수 있고, 모래사장을 팔지 않아도 숙박과 음식, 체험과 교통에서 부가가치가 만들어질 수 있다. 바가지를 없애면 상권이 죽는 것이 아니라 신뢰가 생긴다. 알박기를 치우면 캠핑이 죽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캠핑장이 살아난다. 표준가격제를 지키면 재미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가족 여행객이 안심하고 돌아온다.
고환율 시대의 국내 해변 여행은 일시적인 대체재가 아니라 한국 관광이 다시 붙잡아야 할 기본이다. 바다는 이미 있다. 필요한 것은 운영의 품격이고, 여행자를 다시 오게 만드는 콘텐츠다. 세계적인 해변이 보여준 답은 단순하다. 자연은 열어두고, 서비스로 승부해야 한다. 한국 해수욕장이 그 원칙을 지킨다면, 올여름의 선택은 해외가 아니라 다시 우리 바다가 될 수 있다. 이제 여행레저신문은 강원 고성 명파해변을 시작으로, 한국 해수욕장의 새로운 가능성을 하나씩 짚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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