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레저신문 ㅣ 김정호기자
부산을 바다의 도시로만 기억하면 금정산을 놓치기 쉽다. 해운대와 광안리, 영도와 송정이 부산의 수평선을 보여준다면, 금정산은 부산이라는 도시가 어디에 기대어 서 있는지를 보여주는 산이다. 금정구와 북구, 동래구 일대에 걸쳐 솟은 이 산은 도심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능선에 오르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숲은 깊고, 바위는 크며, 성곽은 산등성이를 따라 길게 이어진다.
금정산의 주봉은 해발 801.5m 고당봉이다. 높이만 놓고 보면 설악산이나 지리산과 비교할 산은 아니지만, 산행의 밀도는 결코 가볍지 않다. 범어사 숲길을 지나 북문에 닿고, 다시 금샘과 고당봉으로 오르는 동안 사찰, 성곽, 화강암 지형, 도시 조망이 차례로 등장한다. 부산 도심에서 지하철과 버스로 접근할 수 있는 산행지 가운데 이만큼 역사와 지질, 조망이 한 길 위에 겹쳐지는 곳은 드물다.
화강암이 만든 부산의 뿌리, 금정산
금정산을 특별하게 만드는 첫 번째 축은 화강암이다. 이 일대는 약 7천만 년 전 지하 깊은 곳에서 마그마가 식어 굳은 화강암이 오랜 지질 작용을 거쳐 드러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바위가 비바람에 깎이고 갈라지면서 토르, 나마, 인셀베르그, 블록스트림 같은 독특한 화강암 풍화지형을 만들었고, 고당봉과 금샘 주변에서는 그 지질학적 특징이 비교적 선명하게 보인다.

18.845km 성곽길, 금정산성의 존재감
두 번째 축은 금정산성이다. 금정산성은 사적 제215호로 지정된 산성이며, 전체 길이가 약 18.845km에 이르는 국내 최대급 산성이다. 성곽은 능선과 계곡을 따라 길게 이어지고, 동문·서문·남문·북문과 망루, 성벽이 산세와 맞물려 있다. 금정산을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정상 하나를 찍는 일이 아니라, 부산 북쪽 산줄기 위에 남은 방어의 기억을 따라 걷는 일이기도 하다.
범어사에서 북문으로, 산행은 숲길에서 시작된다
산행의 대표 출발지는 범어사다. 범어사는 금정산 동쪽 자락에 자리한 부산의 대표 사찰로, 도시철도 1호선 범어사역에서 90번 버스로 환승하면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사찰 경내를 지나 북문 방향으로 들어서면 산행은 곧장 숲길로 바뀐다. 초여름에는 나무 그늘이 길을 덮고, 장마 전후에는 계곡 물소리가 더해져 부산 도심과 멀리 떨어진 산중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준다.
범어사에서 북문까지는 금정산 초행자도 가장 많이 선택하는 구간이다. 길은 꾸준히 오르지만 지나치게 험하지 않고, 중간중간 사찰 암자와 숲길이 이어져 산행 리듬을 잡기 좋다. 북문에 닿으면 금정산성의 존재감이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낮은 성벽과 투박한 성문은 화려하지 않지만, 그래서 오히려 산성과 산이 하나였던 시간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금샘과 고당봉, 전설과 지질이 만나는 정상부
북문에서 고당봉으로 향하는 길은 금정산 산행의 하이라이트다. 정상부가 가까워질수록 바위가 커지고 경사가 살아나며, 일부 구간은 계단과 암릉을 지난다. 안전시설이 설치된 곳이 많지만 비가 온 뒤에는 바위가 미끄러울 수 있어 접지력 좋은 등산화가 필요하다. 이 구간에서 잠시 발길을 돌려 금샘을 찾으면 금정산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품은 장소도 만날 수 있다.
금샘은 바위 위에 물이 고이는 독특한 지형으로 알려져 있다. 전설 속에서는 금빛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내려와 놀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실제로는 화강암이 오랜 풍화작용을 거치며 만든 자연 지형으로 읽힌다. 금정산이 단순한 등산지가 아니라 국가지질공원으로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걷는 길 위에서 전설과 지질학이 한 장면으로 겹쳐진다.
고당봉 정상에 오르면 부산의 방향감각이 달라진다. 동쪽으로는 부산 도심과 바다 쪽 시야가 열리고, 서쪽으로는 낙동강 물줄기와 김해평야 방향이 들어온다. 날이 맑은 날에는 도시와 강, 바다와 산성이 한 시야 안에 겹쳐지며, 부산이 항구도시이면서 동시에 산의 도시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금정산의 조망은 압도적인 고산 풍경이라기보다, 대도시를 품은 산이 보여주는 넓은 파노라마에 가깝다.
추천 코스와 여행 정보
금정산 산행은 체력과 시간에 따라 다양하게 조정할 수 있다. 가장 대중적인 코스는 범어사에서 북문, 금샘, 고당봉을 거쳐 다시 범어사로 내려오는 원점회귀형이다. 성곽길을 더 길게 걷고 싶다면 북문에서 원효봉, 의상봉, 동문 방향으로 이어가면 되고, 산행 뒤 금정산성마을로 내려가 파전과 막걸리, 도토리묵으로 마무리하는 일정도 가능하다. 다만 성곽길 전체를 욕심내면 이동거리가 길어지므로 초행자는 구간을 나누는 편이 좋다.
금정산의 장점은 접근성이다. 부산 도시철도 1호선 범어사역에서 버스로 범어사 매표소 인근까지 이동할 수 있고, 온천장역 방면에서는 산성마을과 금정산성 일대로 접근하는 버스 노선도 활용할 수 있다. 자가용 이용자는 범어사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으나 주말과 단풍철에는 혼잡할 수 있어 이른 출발이 유리하다.
방문 시기는 사계절 모두 좋지만, 초여름 금정산은 신록과 바위, 성곽의 대비가 선명하다. 한낮에는 기온이 빠르게 오를 수 있으므로 물과 모자, 얇은 바람막이를 준비하고, 장마철 전후에는 미끄럼 사고에 주의해야 한다. 고당봉 직전 바위 구간과 계단 구간은 사진을 찍기 좋은 지점이지만, 동시에 발을 헛디디기 쉬운 곳이므로 무리한 촬영은 피하는 편이 안전하다.
금정산은 부산 여행의 결을 바꿔주는 산이다. 바다와 야경, 먹거리 중심으로 흘러가는 부산 일정에 하루 산행을 더하면 도시는 훨씬 입체적으로 보인다. 범어사의 고요한 숲에서 시작해 금정산성의 성곽을 지나고, 금샘의 바위와 고당봉의 조망을 마주한 뒤 산성마을에서 산행을 마무리하는 길은 부산이 가진 또 하나의 얼굴이다. 해발 801.5m의 산이지만, 그 안에 담긴 시간은 훨씬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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