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레저신문 | 김정호 기자
정부가 지난 6월 30일부터 디지털노마드 비자를 정식 제도로 전환했다. 소득 기준을 낮추고 최대 체류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렸으며, 만 18~34세 외국인이 비수도권이나 인구감소·관심지역에 머물면 기존 약 1억 원이던 소득 문턱을 약 5241만 원까지 낮춰 적용한다.
정책의 방향은 디지털노마드를 단순한 장기 관광객이 아니라 지방도시에 머물며 소비하고 관계를 만드는 새로운 생활인구로 활용하겠다는 데 있다. 그러나 시범운영 기간에 비자를 받은 외국인들의 실제 체류지는 수도권에 집중됐다. 2026년 5월 현재 국내 등록·체류자 398명 가운데 340명, 약 85%가 서울·경기·인천에 거주하며 비수도권 체류자는 58명에 그친다.
인터넷만 연결된다고 디지털노마드가 아무 도시나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체류지는 공항과 철도역으로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는지, 장기주택과 업무공간을 쉽게 구할 수 있는지, 음식과 의료·교통이 편리한지, 업무가 끝난 뒤 여행과 여가·운동·취미를 즐길 수 있는지까지 종합적으로 따져 결정한다.
비자의 문턱을 낮추는 것은 한국에 들어오는 길을 넓힐 뿐 지방도시에 머물 이유까지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이번 제도 개편이 지방관광과 지방경제의 변화로 이어지려면 외국인이 그곳에서 일하고 이동하며 여행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주거와 업무공간, 교통과 의료, 외국어 생활서비스와 커뮤니티를 하나의 생활권으로 연결해야 한다.
2년 5개월간 743명 발급, 현재 체류자는 398명
한국은 2024년 1월 해외기업에 소속돼 원격근무가 가능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디지털노마드, 이른바 워케이션 비자를 시범 도입했다. 신청자는 동일 업종에서 1년 이상 근무하고 있어야 하며 일정한 소득과 의료보험 가입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국내에서 별도의 취업이나 영리활동을 하는 것은 제한된다.
2024년 1월부터 2026년 5월까지 2년 5개월 동안 비자를 발급받은 외국인은 모두 743명이다. 2026년 5월 현재 외국인등록을 마치고 국내에 체류 중인 사람은 398명이며, 이 가운데 278명, 약 70%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국적자다. 연령별로는 30대가 206명으로 약 52%, 40대가 74명으로 약 19%를 차지한다.
발급 규모만 놓고 보면 아직 지방경제나 인구구조에 뚜렷한 변화를 만들 단계는 아니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이들이 어디에서 생활하고 있는가다. 현재 체류자 가운데 85%가 수도권에 몰렸다는 사실은 장소의 제약 없이 일할 수 있는 사람들도 생활의 편의성과 이동성을 갖춘 도시를 선택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서울은 주거비가 비싸고 혼잡하지만 국제공항과 고속철도, 대중교통과 의료기관, 다양한 음식과 문화생활, 외국어 서비스와 외국인 커뮤니티가 한 생활권 안에 촘촘하게 모여 있다. 긴급한 일정이 생겨 국내외 다른 도시로 이동할 때에도 선택할 수 있는 교통편이 많다.
반면 지방도시는 자연환경이 뛰어나고 숙박비가 저렴하더라도 외국인이 몇 달 동안 생활할 집을 구하기 어렵고 공항이나 철도역까지 이동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업무가 끝난 뒤 즐길 여가와 취미 활동이 부족하거나 의료·행정서비스를 이용할 때마다 언어의 장벽을 겪어야 한다면 장기 체류지로 선택받기 어렵다.

인터넷은 기본조건일 뿐 체류지를 결정하지 않는다
디지털노마드에게 빠르고 안정적인 인터넷은 지방도시의 특별한 경쟁력이 아니라 일을 하기 위한 최소조건이다. 인터넷이 잘된다는 이유만으로 그곳에서 몇 달 동안 살아야 할 이유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평일에는 조용한 좌석과 화상회의실, 모니터와 프린터, 충분한 전원과 보안이 필요하다. 미국이나 유럽 기업과 일하면 한국의 늦은 밤이나 새벽에 회의해야 할 수도 있으므로 업무공간이 일반 사무실처럼 오후 6시에 문을 닫아서는 이용하기 어렵다.
한 달 이상 머무는 사람에게는 숙박시설의 전망이나 조식보다 주방과 냉장고, 세탁기, 우편과 택배를 받을 주소가 더 중요할 수 있다. 휴대전화 개통과 결제·송금, 외국어 임대계약, 병원 예약과 처방, 쓰레기 배출처럼 관광객에게 잘 보이지 않는 일상의 문제가 체류 만족도를 좌우한다.
업무가 끝난 뒤의 생활도 중요하다. 가까운 곳에서 식사하고 운동하며 공연과 전시를 보고, 해변과 산·문화유산을 여행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디지털노마드와 지방도시 주민을 만나고 스포츠나 문화·취미 활동에 참여할 기회도 필요하다.
관광객에게 좋은 도시는 짧은 시간 안에 보고 즐길 것이 많은 도시다. 디지털노마드에게 좋은 도시는 일을 계속하면서 이동하고, 먹고, 쉬고, 여행하며 불편하지 않게 살아갈 수 있는 도시다. 일과 이동, 주거와 음식, 의료와 행정, 관광과 여가, 취미와 인간관계가 하나의 생활권 안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게 연결돼 있는지가 중요하다.
긴급할 때 움직이고 이동 중에도 일할 수 있어야 한다
디지털노마드는 정해진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을 뿐 업무와 일정에 따라 계속 움직인다. 갑작스러운 대면회의나 고객 미팅, 장비와 서류 수령, 출국 일정이 생기면 공항과 철도역으로 신속하게 이동해야 한다. 특정 장소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은 이동할 일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이동하면서도 업무를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지방도시에서 장기 체류하려면 고속철도역과 공항, 고속버스터미널까지의 접근성이 좋아야 한다. 교통시설이 있다는 사실보다 숙소에서 얼마나 빠르게 갈 수 있는지, 이른 아침과 늦은 밤에도 이용할 교통수단이 있는지가 중요하다. 숙소와 업무공간, 역과 터미널, 음식점과 의료기관을 연결하는 대중교통과 택시·렌터카·공유차량도 충분해야 한다.
역과 공항, 버스터미널 주변에는 잠시라도 사무실처럼 이용할 공간이 필요하다. 예약 없이 노트북을 열 수 있는 좌석과 빠른 와이파이, 충전시설, 화상회의와 통화를 위한 방음부스, 짐을 보관할 장소가 갖춰져야 한다. 호텔 로비와 라운지, 카페와 도서관도 이동 중 업무를 이어가는 임시 사무실 역할을 할 수 있다.
지방도시의 이동 인프라는 관광객을 목적지까지 실어 나르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장기 체류자가 필요할 때 신속하게 움직이고 이동하는 날에도 업무를 중단하지 않도록 교통시간표와 업무공간, 안내정보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
청년이 비수도권에 머물면 소득요건 절반
시범운영 당시에는 연령과 체류지역에 관계없이 전년도 한국 1인당 국민총소득의 2배를 소득요건으로 적용했다. 2025년 1인당 GNI 5241만 원을 기준으로 하면 연소득 약 1억483만 원이 필요했다.
정식 제도에서는 신청자의 나이와 체류지역에 따라 기준을 네 단계로 나눴다. 만 18~34세 외국인은 수도권에 체류하면 GNI의 1.5배인 약 7862만 원, 비수도권이나 인구감소·관심지역에 체류하면 GNI의 1배인 약 5241만 원을 충족해야 한다.
만 35세 이상은 수도권 체류 시 GNI의 2배인 약 1억483만 원, 비수도권이나 인구감소·관심지역 체류 시 GNI의 1.5배인 약 7862만 원이 적용된다. 가족을 동반하면 수도권은 나이와 관계없이 GNI의 2배, 비수도권과 인구감소·관심지역은 1.5배를 적용한다. 최초 체류기간은 1년이며 1년씩 연장해 최장 3년까지 머물 수 있다.
비수도권 우대를 받으려면 한 달 이상의 임대차계약서나 워케이션 특화시설·숙소 예약확인서 등 해당 지방도시에 체류할 예정임을 입증하는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한 달짜리 숙소 예약만으로 1년 동안 실제로 그곳에서 생활한다고 볼 수는 없다. 주소만 비수도권에 두고 생활과 소비의 대부분을 수도권에서 하는 사례가 생기지 않도록 실제 체류기간과 주소 변경, 지방도시 소비효과를 확인할 운영기준도 필요하다.
디지털노마드는 장기 관광객보다 임시 주민에 가깝다
지방자치단체가 디지털노마드를 장기 관광객으로만 바라보면 정책은 숙박비 지원과 관광지 입장권, 카페 할인권을 제공하는 수준에 머물기 쉽다. 그러나 이들은 휴가를 보내기 위해 온 사람이 아니라 체류기간에도 매일 업무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월세와 관리비를 내고 장을 보며 음식점과 세탁소, 미용실, 병원과 운동시설을 이용한다. 유명 관광지보다 숙소 주변의 동네 식당과 상점에 더 자주 갈 수도 있다. 해외에서 얻은 소득을 지방도시의 주거와 음식, 교통, 관광과 생활서비스에 반복적으로 지출한다는 점에서 일반 관광객과 소비 방식도 다르다.
지방자치단체가 관광 프로그램만 만들고 장기주택과 이동수단, 의료·행정서비스와 업무환경을 개인에게 맡겨놓는다면 오래 머물기 어렵다. 숙박 지원이 끝나거나 생활의 불편이 반복되면 서울이나 해외의 다른 도시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지방도시는 관광객을 위한 방문 프로그램이 아니라 일정 기간 실제 주민처럼 살아갈 수 있는 체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지방의 경쟁 상대는 서울만이 아니다
한국 지방도시의 경쟁 상대는 서울과 부산, 제주에 그치지 않는다. 태국 치앙마이와 인도네시아 발리, 베트남 다낭, 일본 후쿠오카, 포르투갈 리스본처럼 장기숙소와 업무공간, 관광과 여가, 국제적인 커뮤니티를 이미 갖춘 해외 도시들과도 경쟁해야 한다.
디지털노마드는 온라인을 통해 각 도시의 월세와 물가, 인터넷 환경, 공항 접근성과 교통, 치안과 날씨, 음식과 의료, 외국어 소통, 문화생활과 비자 조건을 비교한다. 자연이 아름답거나 숙박비가 저렴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장기 체류지를 바꾸지는 않는다.
후쿠오카의 사례에서 주목할 점도 코워킹스페이스 한 곳이 아니다. 국제공항과 도심이 가깝고 철도와 항공으로 일본과 아시아의 다른 도시로 이동하기 쉬우며, 음식과 쇼핑·문화생활, 스타트업과 국제 커뮤니티가 함께 작동한다는 점이다.
한국 지방도시도 업무시설 하나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도착해 숙소를 찾고, 일하고, 이동하고, 사람을 만나며 주변을 여행하는 전 과정을 연결해야 한다.

모든 지방도시가 같은 워케이션센터를 만들 필요는 없다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비슷한 워케이션센터를 짓고 숙박비와 관광지 이용료를 지원하면 시설은 늘어도 특정 도시를 선택해야 할 이유는 약해진다. 모든 지방도시가 ‘숙소+책상+관광지 할인’이라는 같은 상품을 만들 필요는 없다.
부산은 국제항공과 항만, 대도시 생활과 해변, 국제행사를 결합할 수 있다. 제주는 자연과 장기휴양, 아웃도어와 창작자·스타트업 커뮤니티를 연계할 수 있다. 강원 산악·해안도시는 스포츠와 자연, 집중업무를 묶고, 경주는 문화유산과 창작·연구형 체류, 전주와 안동은 음식과 전통생활, 지역문화 학습을 앞세울 수 있다.
다만 관광자원만 앞세워서는 안 된다. 바다와 산이 아름다워도 밤에 화상회의를 할 공간이 없고 병원이나 철도역까지 이동하기 어렵다면 장기 체류는 힘들다. 그 지방도시에서 한 달을 살아야 할 이유와 실제로 한 달 동안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동시에 마련돼야 한다.
성과는 발급 건수보다 체류일수와 소비로 측정해야 한다
정책 성과를 비자 발급 건수와 등록 주소지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어느 지방도시에 몇 명이 머물렀는지, 평균 체류기간은 얼마인지, 숙박과 음식·교통·관광·생활서비스에 얼마를 지출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지방 업체를 얼마나 이용했고 주민과 어떤 관계를 만들었는지, 체류가 끝난 뒤 다시 방문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추천했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비수도권 우대 기준을 적용받은 사람이 주말과 여가시간의 대부분을 서울에서 보내고 소비한다면 지방경제 효과는 제한적이다.
반대로 100명이라도 한 지방도시에 두세 달씩 머물며 월세와 식비, 교통과 운동·문화생활에 지속적으로 지출한다면 짧게 방문하는 관광객 수천 명과는 다른 효과를 만들 수 있다. 디지털노마드의 가치는 관광 비수기와 평일에도 머물며 관광지가 아닌 동네의 음식점과 상점, 운동시설과 생활서비스를 이용한다는 데 있다.
비자 발급 이후를 책임질 체계가 필요하다
디지털노마드 비자는 법무부가 운영하는 출입국·체류제도다. 그러나 외국인이 실제로 지방도시를 선택하고 그곳에서 생활하도록 만드는 일은 법무부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 지방자치단체와 지역관광조직, 숙박업체와 코워킹 운영사, 교통기관과 의료·외국인 지원기관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지방자치단체 내부에서도 관광부서뿐 아니라 주거와 교통, 경제, 의료와 국제교류 부서가 참여해야 한다.
비자를 받은 외국인이 지방도시별 장기숙소 가격과 업무공간 운영시간, 공항·철도 접근성, 대중교통과 의료, 외국어 지원, 관광·여가 프로그램과 커뮤니티 일정을 한곳에서 비교하고 예약할 수 있는 공식 플랫폼도 필요하다. 공항과 역에서 숙소로 이동하고 외국인등록과 주소 신고, 병원과 생활서비스 이용을 돕는 정착 안내와 외국어 지원 창구도 마련해야 한다.
비자는 문을 열지만 머물 이유까지 만들지는 않는다
정부가 디지털노마드 비자의 소득 문턱을 낮추고 비수도권 체류자에게 혜택을 준 것은 지방도시 체류를 늘리기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체류자의 약 85%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는 사실은 비자 조건과 실제 도시 선택 사이에 큰 간격이 있음을 보여준다.
디지털노마드는 인터넷이 연결된 빈방을 찾아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다. 안정적으로 일하고 필요할 때 신속하게 이동하며, 적절한 집과 음식을 찾고, 여행과 여가·운동·취미를 즐기며,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지방도시를 선택한다.
지방도시가 디지털노마드를 장기 체류자로 받아들이려면 장기주택과 늦은 시간에도 이용할 수 있는 업무공간, 공항·철도와 연결된 교통, 의료와 외국어 생활서비스, 지방 고유의 관광·레저 자원과 커뮤니티를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어야 한다.
디지털노마드 비자가 지방소멸을 해결하는 만능열쇠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이 줄어드는 지방도시에 새로운 생활인구를 불러들이고 관광을 며칠의 방문에서 몇 달의 생활로 확장하는 하나의 수단은 될 수 있다.
비자는 지방도시로 들어가는 문을 열었다. 이제 지방도시는 일하고 이동하며 여행하고 살아갈 만한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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